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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기고] 통영 길 위에서, 과거와 현재의 숨결을 길어 올리다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마주하는 풍경은 언제나 정겹고 따스하다. 하지만, 교과서 활자를 좇는 일상적인 교실이라는 공간은, 때로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데 작은 가림막이 되기도 한다.

[기고] 통영 길 위에서, 과거와 현재의 숨결을 길어 올리다

매일 아침 교실 문을 열고 마주하는 풍경은 언제나 정겹고 따스하다. 하지만, 교과서 활자를 좇는 일상적인 교실이라는 공간은, 때로는 아이들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는 데 작은 가림막이 되기도 한다.

그러던 중 13일 우리 학교 학생 30명과 함께 교실 문을 박차고 나와 통영의 푸른 바람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경남도교육청 후원과 경남도민일보 주최로 마련된 ‘2026 우리 고장 역사문화탐방’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신청서를 냈던 아이들 손에는 교과서 대신 필기구와 설렘이 들려 있었다.

여정의 첫 발걸음이었던 충렬사 앞 나지막한 정자 아래는 “역사란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한 에드워드 카가 말한 그 대화의 첫 장이었다. 정자에 옹기종기 걸터앉아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을 맞으며 충무공 이순신 장군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출발할 때만 해도 장난기 가득하던 아이들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400여 년 전 이 바다를 지키고자 목숨을 바쳤던 조상의 숭고한 희생이 아이들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 잡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옛 기억은 과거 기록을 현재 아이들 삶 속으로 데려왔고, 활자로만 떠돌던 역사는 비로소 생명을 얻어 숨쉬기 시작했다.

충렬사를 나와 명정동 골목길을 자박자박 걸었다. 시인 백석이 통영의 여인 ‘난(蘭)’을 그리워하며 뜨거운 시를 써 내려갔던 길이자,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이 매일 아침 바다 냄새를 맡으며 오르내리던 등굣길이었다. 골목 담벼락에 새겨진 백석의 시비를 손가락으로 집어가며 읊조리는 아이들 목소리가 골목 안을 부드럽게 채웠다. 교실 안에서는 그토록 지루해하던 문학 작품이, 그들이 실제로 살아가고 발 디디는 고향의 길 위에서 살아 숨 쉬는 노래가 되는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발걸음을 국보 제305호 세병관으로 옮겼다. 탁 트인 대청마루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니 삼도수군통제영의 웅장한 위용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세병관 마루 위로 통영 앞바다의 시원한 갯바람이 불어왔다. 세병(洗兵)이라는 이름은 은하수를 끌어와 전쟁의 무기를 씻어내고 다시는 이 땅에 피 흘리는 전쟁이 없기를 바라는 평화의 염원이 담겨 있다. 치열했던 국방 요충지였던 이곳이, 이제는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평화의 가치를 가르치는 훌륭한 역사 현장이 됐다.

끝으로 박경리 기념관과 묘소를 찾아 통영이 품어낸 거장과 한국문학 숨결을 깊이 들이마셨다. 기념관 뒤편, 푸른 통영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작가 묘소로 향하는 오솔길을 올랐다. 묘소 앞에 서서 작가가 남긴 문장들을 조용히 읽어 내려가는 아이들의 눈빛은 아침보다 한결 깊어져 있었다. 그 속에서 우리 고장이 배출한 거장의 정신이 아이들 가슴속에 단단한 자양분으로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신했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한 학생이 내게 조용히 말했다. “선생님, 매일 지나다니던 세병관과 충렬사였는데, 통영이 생각보다 정말 멋진 곳이었네요.” 그 짧은 한마디에 하루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다. 아이들 마음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씨앗을 심어준 하루였다. 소중한 기회를 준 경상남도교육청과 경남도민일보에 깊은 감사를 전한다. 또한, 이날 세병관 마루에서 흘린 땀방울과 박경리 묘소의 고요함 속에서 길어 올린 배움의 기쁨이, 아이들이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따뜻하고 품격 있는 시민으로 성장하는 데 든든한 이정표가 되기를 소망한다.

/김성민 통영 동원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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