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학 시니어 강사·前 대한노인회 수원팔달구지회장
대한민국이 사상 첫 ‘1인당 국내총생산(GDP) 4만달러’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는 뉴스가 들린다. 정부는 지난 7월 ‘세계 수출 4강,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달러 시대’를 지향하는 경제비전을 선포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의 도움을 받던 국가에서 도움을 주는 국가로 성장하는 사이 대한민국은 65세 이상 인구가 전체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달라진 경제적 위상과 사회 수준·문화에 맞춰 이제는 경제지원 중심의 노인문화·복지 정책에도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
대표적인 노인 문화·복지정책의 하나인 경로당의 경우를 보자. 2024년 기준 전국 6만9천개소에 이르는 수치는 접근성 측면에서는 우수한 수준이다. 하지만 2023년 보건복지부 조사에 따르면 65세 이상 노인의 경로당 이용률은 10.1%로 매우 저조하다. 같은해 경기복지재단의 보고서를 보면 경기도 내 이용률은 9.2%로 더 낮다. 이용자 비중이 80대 이상 고령층 비중이 커지고, 이용자 수가 감소하고 있다. 이는 60대~70대 초반의 베이비붐 세대 중심의 ‘신노년층’이 회원제라는 폐쇄적인 운영과 프로그램·즐길거리 부족 등의 이유로 경로당을 기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세대는 앞선 노년세대에 비해 학력이 높고 좀 더 윤택한 문화·경제생활을 경험했으며 개인주의적 성향 등이 맞물리면서 다른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에 맞춘 새로운 세대 통합형 문화복지복합공간으로의 전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각 세대별 신체·건강을 지키고, 정신·정서적 안정을 도모하고, 사회적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는 공간과 다양한 프로그램 등이 요구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카페와 갖은 시설이 갖춰진 다목적 공간이 필요하다. 회원제가 아닌 자유롭게 드나들면서 지인이나 새로운 사람들과의 토론·대화 공간이나 디지털, 음악, 독서, 여행, 학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호주에는 ‘RSL(Returned and Services League) 클럽’이라는 복지·레저클럽이 있다. 원래는 제대군인과 가족,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공간이었으나 현재 일반인도 이용 가능한 복합클럽으로 식사·바·스포츠 관람·탁구·볼링 시설·게임룸 등 다양한 시설을 갖추고 모임 장소로도 활용된다. 회원은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다.
또한 독일과 오스트리아에는 독특한 전통인 ‘슈탐티쉬(Stammtisch)’가 있다. ‘단골 손님을 위한 예약된 테이블’이라는 의미로 사람들 간의 유대와 소통을 강화하는 사교·모임 문화다. 이는 노인들이 집안에만 머물지 않고 익숙한 장소에서 사람들과 정기적으로 만나 소통·교류하는 공간이라 할 수 있겠다. 일본의 노인문화는 지역사회 중심의 활동 참여와 평생교육, 예술·체육(전시·음악회·연극·영화·역사탐방) 등 여가활동을 통해 정서적 안정과 사회적 연결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두고 있다.
더불어 재능나눔을 통한 자립과 인생 2모작 일터이자 봉사·참여를 이끄는 프로그램 및 공간도 필요하다. 노인 각자의 재능과 전문성을 살려 지역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아이들 돌봄공백을 메워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실제 서울 반포동이나 화성 동탄의 경로당에선 이름을 ‘시니어라운지’, ‘시니어클럽’ 등으로 바꾸고 스크린파크골프장을 운영하거나 안마기를 비치하거나 바둑·서예·영어를 가르치는 ‘열린 공간’으로 탈바꿈해 인근 주민·초등생·학부모들의 이용이 늘고 노인들의 만족도도 높다고 한다.
대단지 아파트처럼 단지 내 피트니스센터, 북카페, 실내골프장 등 다양한 시설이 갖춰진 곳과 달리 동네 경로당은 공간 규모나 시설 노후화 등의 제약으로 복합문화복지공간으로의 신속한 전환이 어려운 편이다. 이런 경우 지역의 행정복지센터, 도서관, 박물관, 스포츠센터 등 공공기관·시설 또는 비어있는 지하철 역사내 상가나 민간시설 등을 활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만 하다.
이제 노인문화·복지의 패러다임을 시대에 맞춰 ‘보호’에서 ‘참여’로, ‘부양’에서 ‘활동적 노화(Active Ageing)’로 바꿔야 한다. 배움이 이어지고, 세대가 함께하고, 지역사회 속에서 역할을 찾는 노인문화·복지가 확대·정착된다면 초고령사회는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이병학 시니어 강사·前 대한노인회 수원팔달구지회장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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