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백 듀이교육연구소 소장
◇1896년 시카고의 실험학교, 21세기 대구학교에서 길을 찾다
“교육은 미래를 위한 준비가 아니라 현재의 삶 그 자체여야 한다.” 130여 년 전, 진보 교육의 선구자 존 듀이(John Dewey)가 선언하며 문을 연 ‘듀이 실험학교(Laboratory School)’의 정신이다. 긴 시간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 대구의 공교육 현장에서 듀이의 이상은 국제 바칼로레아(IB)라는 이름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2019년 대구시교육청이 전국 최초로 도입한 IB 프로그램은 본래 1968년 스위스에서 탄생했다. 현재 전 세계 165여 개국 이상이 이 프로그램을 채택한 이유는 명확하다. 불확실한 현대 사회에서 ‘국제적 감각’을 갖추고 스스로 질문하는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 국가 경쟁력을 담보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이기 때문이다. 대구는 이러한 시대적 변화를 선도하며 대한민국 교육 혁신의 새로운 표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중언어 프로그램’ 협약의 쾌거
대구 IB 교육의 가장 눈부신 성과 중 하나는 고등학교 과정(DP)의 핵심 과목을 모국어로 이수하면서도 국제 표준의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IBO(스위스 본사)와 협약을 맺은 것이다. 이는 독일과 일본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이뤄낸 쾌거이다. 영어라는 언어 장벽 때문에 우수한 역량을 가진 학생들이 세계적 수준의 교육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교육의 민주화’를 실현한 기념비적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듀이의 ‘노작활동’과 IB의 ‘탐구활동’: 구성주의의 조우
듀이의 실험학교와 IB 프로그램은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 두 모델 모두 학습자를 수동적인 존재가 아닌, 경험을 통해 스스로 의미를 구성하는 능동적 주체로 보는 ‘구성주의’에 뿌리를 둔다.
듀이가 요리나 목공 같은 실생활 ‘노작(Occupations)’을 통해 지식을 통합했다면, 현대의 IB는 이를 ‘초학문적 주제 탐구’로 진화시켜 교과의 경계를 넘나드는 깊이 있는 배움을 구현한다. 특히 IB는 고도로 구조화된 프레임워크와 루브릭(평가 기준표)을 활용한 객관적 평가를 통해 듀이 실험학교가 가졌던 태생적 한계인 ‘평가의 엄격성’ 문제를 시스템의 힘으로 극복해 냈다.
여기에 대구교육청이 독자 개발한 ‘대구학습법 4GO’은 듀이의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How We Think)』와 『논리학 : 탐구 이론(Logic: The Theory of Inquiry)』에서 제시된 반성적 사고의 원리를 21세기 글로벌 표준과 결합하여 ‘질문밥 3단계’나 ‘7단계 탐구모델’로 한국형 교실 맥락에 맞게 정교화한 독창적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질문을 던지고 가설을 검증하는 ‘질문밥 3단계’와 ‘탐구 7단계’ 모델은 AI 시대에 지식을 전이시키는 고차원적 지적 탐구의 핵심 도구가 될 것이다.
◇‘대구 IB 2.0’을 위한 세 가지 제언
지난 8년간 대구 IB 교육이 이룬 성과는 눈부시며, 참여자 만족도 또한 90% 내외로 매우 높다. 그러나 부정적인 시선들도 있다. 대구 IB와 대구학습법 4GO가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는 몇 가지 과제가 남아 있다.
첫째, 대입 제도와의 실질적 연계이다. IB의 논·서술형 평가가 객관식 수능 체제와 충돌하는 한, 이는 일부를 위한 교육에 머물 우려가 있다. 대구는 IB 선구자로서 그동안 쌓은 평가 노하우를 국가 평가 체제 개편에 반영하도록 정부를 설득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둘째, 교사 지원 시스템의 질적 고도화이다. 교사가 수업 설계와 평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행정 전담 인력을 확충하고, 대학과 연계한 전문적인 평가 지원 체제를 굳건히 구축해야 한다.
셋째, ‘특권 교육’ 인식을 불식시키는 일반화 전략이다. IB의 탐구 철학이 모든 학교에 녹아들 수 있도록 ‘대구학습법’ 보급을 가속화하고, 교육 예산의 투명한 집행을 통해 모든 아이가 공평한 혜택을 누리도록 해야 한다.
대구의 IB 교육은 130년 전 존 듀이가 꿈꿨던 ‘교육민주주의’를 현대적 시스템으로 구현해 낸 가장 정교한 응답이다. 이 혁신의 향기가 대구의 모든 교실로 퍼져나가 우리 아이들이 미래 사회의 주인공으로 당당히 성장할 수 있도록, 대구 시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응원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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