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가림막 너머 굳은 타워크레인
전자파·소음 공포에 파행된 설명회
법적 기준 ‘만족’ vs 주민 입장은 ‘불안’
공사가 중단된 독산동 데이터센터 현장 / 송진우 기자
서울 금천구 독산동의 한 골목 끝, 4m 높이의 가림막 너머로 올라가다 만 철골과 멈춰 선 타워크레인이 회색 하늘 아래 그대로 굳어 있다. 한때 굴착기와 레미콘 차량이 쉴 새 없이 드나들던 현장은 이제 공사 장비만 먼지를 뒤집어쓴 채 세워져 있고 인도에는 ‘전기먹는 하마 데이터센터’라고 적힌 현수막 등이 줄지어 매달려 있다. 주민들의 고성이 오가던 설명회가 끝난 지 며칠이 지났지만, 현장 주변 공기는 여전히 싸늘한 긴장감으로 가득하다.
공사가 중단된 독산동 데이터센터 현장 / 송진우 기자
공사 중단된 독산동 데이터센터
서울 금천구 독산동 724-4번지에서 추진 중이던 5MW급 소형 데이터센터 신축 공사가 현재 중단된 상태다. 지하 1층·지상 8층, 약 60m 높이로 2027년 준공을 목표로 지난해 10월 착공에 들어갔지만, 올해 초부터 불거진 거센 주민 반발과 민원 속에 더 이상 공정이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금천구청은 다수의 민원이 접수된 뒤 공사장 안전점검을 실시했고 그 결과를 토대로 “관련 법령 검토를 위해 공사를 중지한 상태”라고 공식 입장을 밝힌적이 있다. 구는 향후 전자파·소음·화재 위험성 등 주민 우려 사항을 포함해 인허가 과정과 안전기준 충족 여부를 종합적으로 다시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이었다.
데이터센터 반대하는 현수막 / 송진우 기자
갈라진 시각, 격해진 주민 반발
독산동 데이터센터는 주거지와 불과 70~100m 남짓 떨어진 입지, 24시간 가동되는 서버와 냉각설비로 인한 전자파·소음·화재 위험성 논란 속에 ‘대표적인 위해시설’이라는 낙인이 찍힌 상태다. 인근에는 금나래초등학교와 다수의 어린이집,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어 “아이들 머리 위로 전자파를 쏘는 시설”이라는 극단적인 표현까지 주민 입에서 나온다.
실제 주민들은 금천구의회 ‘의회에 바란다’ 게시판과 각종 설명회에서 “상시 고압 전력이 흐르는 설비에서 발생하는 전자파가 장기적으로 건강에 어떤 영향을 줄지 아무도 장담 못 한다”, “24시간 울리는 냉각기 소음과 열풍이 이미 포화 상태인 주거 환경을 더 망가뜨릴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인근 주민은 “집 앞 100m도 안 되는 곳에, 아파트 20층 높이 건물을 전자파·화재 위험이 있는 데이터센터로 채우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아이들 학교까지 줄지어 있는 동네 한복판을 실험장으로 만들겠다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사가 중단된 독산동 데이터센터 현장 / 송진우 기자
구청·사업자 “법적 기준 충족”
사업자는 이 시설이 5MW급의 비교적 소규모 데이터센터이며, 22.9kV 수전과 설비 배치 기준상 국제기준(ICNIRP)과 WHO가 권고하는 전자파 노출한도보다 한참 낮은 수준으로 설계돼 있다고 강조한다. 주민 측이 독자적으로 정리한 자료에서도 WHO 권고치 2000mG, ICNIRP 기준 833mG에 비해 주거지 예상 노출은 10~30mG 수준에 불과하다는 시뮬레이션 결과가 제시돼 있지만, 주민들은 “수치보다 불안이 더 크다”며 받아들이지 않는 분위기다.
송진우 기자
소음과 열 문제를 둘러싼 공방도 계속된다. 주민 측 설명자료는 20MW급 AI 데이터센터를 가정한 냉각·소음 시나리오를 제시하며 “전력 과부하와 저주파 소음, 열섬 현상으로 인근 생활환경이 장기적으로 악화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업자는 “실제 설계용량은 5MW급으로, 방음·방진 설비를 갖추면 인근 주거지에서 체감하는 소음은 야간 기준 환경기준(45~55dB) 이내”라고 맞선다.
금천구청은 “건축허가 과정에서 법정 기준을 검토해 허가를 내줬다”는 점을 재차 강조하면서도, 최근 민원이 집중된 이후에는 “주민 우려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한발 물러선 스탠스를 취하고 있다. 구는 지난 8일 구청 대강당에서 주민설명회 및 토론회를 열었지만, 700명 안팎의 주민들이 몰려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파행으로 끝났다.
금천구청 전경 / 송진우 기자
설명회 파행과 멈춰선 공사 현장
이달 8일 열린 설명회·토론회는 독산동 데이터센터 논란이 어디까지 격화됐는지 그대로 보여줬다. 금천구와 사업자 측이 전자파, 소음, 화재 대비 등 기술자료와 시뮬레이션 결과를 설명하려 했지만, “주민 몰래 허가했다”, “결과는 이미 정해놓고 들러리 세우는 자리 아니냐”는 항의가 쏟아지며 정상적인 진행이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설명회에 참석했던 한 주민은 “설계나 수치가 아무리 안전하다고 해도, 왜 처음부터 주민들에게 알리지도 않고 허가부터 내줬는지에 대한 답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주민은 “우리는 기술자나 공무원이 아니고, 결국 ‘우리 집 앞에 위험할 수 있는 공장 같은 건물이 하나 더 생긴다’는 사실이 문제”라며 “그 불안을 누가 책임질 수 있느냐”고 따졌다.
설명회 다음 날, 공사 현장은 사실상 ‘멈춤’ 상태에 들어갔다. 이미 지반공사와 일부 구조물 공정이 진행된 상태지만, 구청의 점검과 추가 검토 방침 이후 장비 가동은 멈췄고, 현장 관계자와의 통화에서는 “추가 지침이 나올 때까지 대기 중”이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국민의힘 현수막 / 송진우 기자
정치·지역 갈등으로 번지는 논란
논란은 지역 정치권으로도 번졌다. 금천구 국민의힘 당협과 일부 구의원들은 “지하철 지상 구간 소음으로 수십 년간 고통받아온 주민들에게 또 다른 피해시설을 들이밀었다”며 데이터센터 신축 허가의 즉각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주민 몰래 허가했다”는 비판과 함께 “지방선거 쟁점으로 삼겠다”는 경고도 나온다. 반면, AI·클라우드 산업 확산 속에 수도권 데이터센터 수요가 급증한 상황에서, 이미 허가가 난 사업을 뒤집는 것은 행정 신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현재 금천구는 추가 주민설명회 개최, 외부 전문가 검증, 사업자 보완대책 제출 등을 포함한 후속 절차를 검토 중이지만, 구체적인 재개 시점이나 사업 방향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 없다”는 입장이다. 데이터센터가 AI 시대의 핵심 인프라라는 점과, 그 인프라를 떠안게 된 주민들의 불안과 분노 사이에서, 독산동의 멈춰 선 공사 현장은 당분간은 ‘기약 없는 정지’ 상태를 이어갈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금천구청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독산동 데이터센터 착공은 법적인 문제는 없지만 주민들 우려에 매우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금천구 주민들을 위해 적극적인 행정 업무를 지원하겠다”고 전했다.
금천구청 현수막 / 송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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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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