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시대에 공급부족 사태로 고공질주하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가 이란전쟁이라는 돌발 변수를 맞아 휘청이고 있다. 양사 모두 개전 이래 10%대 하락했다. 반도체는 글로벌 경제에 큰 영향을 받는 경기 민감주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연합뉴스. 재판매 및 DB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회사의 주가는 과거 유사한 상황에서와는 달리 폭락 일변도를 달리지 않았다. 일종의 널뛰기 장세를 보였다. 하루 이틀 폭락하면 다음 하루 이틀은 또 다시 급등하다가 지난 주말에는 소강국면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널뛰기 장세는 강력한 저력의 신호로 해석된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나드는 불확실성 속에서도 반도체 기업 주가는 이미 바닥을 다진 것처럼 보인다. 이같은 흐름을 굳히려는 관측은 유력한 투자자들로부터 나왔다.
우선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가 지난 11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목표가를 기존 20만5000원에서 26만원으로, 120만원에서 135만원으로 각각 상향 조정했다. 전쟁이라는 악재가 폭발적 A수요 증가라는 대세를 바꾸지는 못할 것이라는 분석이었다. 골드만삭스는 목표 주가 상향의 근거로 두 가지를 제시했다. 우선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공급부족으로 이들 메모리 반도체의 가격 전망치를 올렸다 둘째, 메모리 가격인상에 따라 양사의 이익 전망치를 또 올렸다. 올해 영업이익의 경우 삼성전자는 181조원에서 239조원으로, SK하이닉스는 169조원에서 202조원으로 각각 올렸다.
지난 13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18만 3천5백원과 91만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이달 들어 15.24%와 14. 23%나 각각 하락한 수치이다. 전쟁의 공포에 휘둘린 시장 분위기 속에서 그동안 고공행진에 따른 차익 실현 욕구가 커진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차익 실현의 핵심 주체는 외국인이다. 이달 들어 외국인과 기관투자가는 삼성전자 7조6049억원, 1조2867억원을 각각 순매도했다. SK하이닉스도 각각 3조172억원, 4886억원을 각각 순 매도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이들의 매도 물량을 고스란히 받아내면서 주가 폭락을 저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인은 지난 9일부터 13일까지 삼성전자 2조7172억원, SK하이닉스 1조3770억원어치를 매수했다. 폭락장에서 저가 매수에 나선 것이다.
즉 그동안 반도체 주식을 팔아치운 외국인인 골드만삭스가 앞장서서 목표 주가를 올린 것이다. 골드만삭스의 전망에 따르면 양사의 주가 상승여력은 아직 충분하다. 18만 3천5백원인 삼성전자는 26만원까지 오른다고 치면, 41.7% 정도 상승 여력이 있다. 91만원인 SK하이닉스 목표 주가는 135만원이므로 40.6% 정도 더 오를 수 있다.
국내외 주요 증권사들도 최근 유사한 주가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한마디로 반도체 기업의 주가 상승 전망에 관한 한 예외가 없다.
맥쿼리증권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목표가를 24만원에서 34만원, 그리고 112만원에서 170만원으로 각각 올렸다.
KB증권은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기존 24만원에서 32만원으로, SK하이닉스 목표주가는 140만원에서 170만원으로 높여 잡았다. 다올투자증권은 삼성전자는 24만5천원에서 29만원으로, SK하이닉스는 120만원에서 160만원으로 목표 주가를 올렸다. 주요 증권사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삼성전자는 최고 34만원, SK하이닉스는 최고 170만원으로 목표 주가를 상향 조정한 것이다.
반도체 기업 주가에 대해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인 것은 AI시대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이 갈수록 심화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반도체기업 펀더멘털에 미치는 영향력이 제한적이라는 게 시장의 판단이라고 볼 수 있다.
김동원 KB증권 리서치본부장은 삼성전자에 대해 "현재 D램과 낸드 수요는 빠르게 증가하는 반면 공급 확대는 내년까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메모리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엔비디아로의 프리미엄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출하가 본격화하는 점도 실적 개선에 긍정적 요인"이라고 꼽았다. 메모리 시장의 공급부족 사태 지속에 , 6세대 HBM4시장 본격 진출이 삼성전자의 실적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킬 것이라는 해석이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에 대해 "D램 매출 내 서버 D램 비중은 지난해 40%를 넘어선 데 이어 올해는 50%에 달할 것"이라며 “실적 추정치가 지속 상향 조정됨에 따라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 부담이 낮아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지난 1분기 73%였던 D램 영업이익률은 연간 76% 수준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치도 제시했다.
올해 연말 ‘배당 잭팟’에 대한 기대감도 삼성전자 주가를 견인할 주요 변수로 꼽힌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패닉셀을 겪으며 삼성전자 주가가 하락했고, 종전 시점을 예측하기 어려워 불확실성은 상존한다"면서 "메모리 업황의 선행 지표는 여전히 견고하다. 주가에 대한 가격 매력도와 배당 수익률이 유의미하게 높아졌다"고 강조했다.
오는 18일 삼성전자 정기 주주총회에서 ‘특별 배당’이 결정될 가능성이 주목되고 있다. 특별 배당은 연말 정기 배당 이외에 주주환원 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되는 ‘보너스 배당’이다. 삼성전자의 가파른 실적 개선과 이재용 회장의 강력한 주주환원 의지를 감안할 때 근거로, 올해 총 배당금이 주당 8000원에 달할 수 있다는 전망이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 ‘시즌1’을 시작으로 3년 단위 주주환원 정책을 운영해 왔다. 3년 동안 발생한 잉여현금흐름(FCF)의 50%를 주주에게 돌려주는 제도이다. 영업이익 중 설비 투자나 인수·합병(M&A) 비용 등을 제외하고 남은 ‘회사 자금’의 절반을 배당한다는 것이다. 이는 420만명의 소액주주가 환호할 일이지만 이재용 회장과 같은 자본가나 외국인, 기관투자가들에게도 큰 이득이 된다. ‘배당 잭팟’은 모든 주주에게 현금 선물을 줄뿐만 아니라 주가 상승여력을 키우는 요소이다. 기업에게 배당 확대는 그야말로 님도 보고 뽕도 따는 경영전략이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올해 삼성전자는 잉여현금흐름(FCF) 60조원 이상을 바탕으로 특별 주주환원이 가능할 것”이라며 정부의 배당소득 분리과세 요건인 배당성향 25%를 충족한다고 가정할 경우 삼성전자 주당 배당금이 8110원 수준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13일 종가 18만4000원 기준으로 배당수익률은 약 4.4%에 달한다.
김록호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 12일 삼성전자 목표주가를 30만원으로 상향 조정하며 “올해 예상되는 주주환원 재원 93조원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에 활용한다고 가정하면, 주당 배당금은 전년 대비 388% 늘어난 8135원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올해 영업이익 전망치가 과장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러나 올해 이들 반도체 기업의 영업이익이 폭등할 것이라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1,2분기 영업이익 증가세가 벌써 무섭다.
삼성전자는 연결 기준 2025년 영업이익이 43조6011억원이다. 이는 2024년 대비 33.2% 증가한 금액이다. 그런데 KB증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배 증가한 40조원으로 추정된다. 2분기 영업이익은 51조원이다. 전년 대비 11배 증가한 수치이다. 1,2분기 영업이익을 합치면 91조원이다. 골드만삭스의 올해 삼성전자 영업이익 전망치는 181조원에서 239조원으로 올랐다. 현재 추세라면 불가능한 수치는 아니라는 게 시장의 분위기이다.
이란전쟁이 반도체 기업의 장기 펀더멘털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시장의 판단에는 근본적으로 거시경제적 배경이 작동하고 있다. 중동발 지정학적 충돌은 단기적으로 국제유가 상승과 금융시장 변동성을 키우지만, 동시에 미국과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흐름까지 꺾지는 못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AI 경쟁의 핵심은 데이터센터와 클라우드 인프라 확충이며, 이 과정에서 고대역폭메모리(HBM)와 서버용 D램 수요는 구조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지정학적 불안이 커질수록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오히려 기술 패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AI 투자를 유지하거나 확대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란전쟁이 단기적인 시장 충격을 유발할 수는 있지만, AI 인프라 확대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메모리 반도체 수요 자체를 흔들 가능성은 제한적이라는 게 시장의 판단이다.
양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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