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욕민국(禁慾民國)'
미래 계획서 파트너 존재 상실
정서적 결여 따른 성생활 정체
함께하는 시간 고통으로 변질
경멸 고착화 시 이혼 확률 90%
‘성, 영어로 섹스(SEX)’라는 단어를 꺼내면 분위기가 굳는다. 10명 중 9명은 시선을 피한다. 말을 꺼낸 사람은 금세 자극만 좇는 사람으로 분류된다. 인간은 번식을 택해 영생을 이어왔다. 그런데 한국 사회에서 성은 다른 언어로 불린다. 범죄, 수치, 자극. 저출산 해법은 정책에 집중돼 있다. 돈, 집, 시간. 왜 만나지 않는지, 왜 이어지지 않는지에 대한 질문은 보이지 않는다. 극단으로 흐른 성 인식, 위축된 여성과 남성, 서로를 경계하는 분위기. 여성경제신문이 묻는다. 우리는 언제부터 서로를 피하기 시작했을까. 껍질을 벗기면 구조가 드러난다.
# 결혼 7년 차 A씨는 최근 아내와 함께하는 미래 대신 홀로 떠나는 여행을 꿈꾼다. 퇴근 후 마주 앉은 저녁 식사 자리조차 숨 막히는 의무감에 시달리며 의도적으로 귀가 시간을 늦춘다. 한때 뜨거웠던 신체적 친밀감은 사라진 지 오래다. 이제는 아내의 사소한 습관이나 말투만 보아도 깊은 혐오감과 경멸이 앞서는 '부정적 감정 압도' 상태에 빠져 관계의 종말을 직감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처럼 미래 계획에서의 배제, 친밀감의 완전한 결여, 동행 시간의 회피, 그리고 상대에 대한 경멸 고착화가 나타난다면 심각한 관계 단절의 징후라고 경고한다.
핵심 요약 (Key Takeaways)
미래 설계의 단절: 일상적 대화나 장기적 계획에서 파트너의 존재가 배제되는 현상은 관계의 심리적 종료를 의미하는 가장 명확한 지표.
신체적 고립의 고착화: 외부 스트레스와 무관하게 상대에 대한 정서적 호감 자체가 소멸하며 발생하는 성생활 정체는 단순 권태기를 넘어선 위험 신호.
공유 시간의 고통화: 함께하는 시간을 기쁨이 아닌 의무적 고통으로 인식하고 의도적으로 회피하게 되는 단계는 관계 유지 에너지가 고갈되었음을 시사.
경멸적 인지 체계 형성: 파트너의 모든 언행을 부정적으로 해석하는 '부정적 감정 압도'와 경멸이 고착화될 경우, 자발적 노력만으로는 관계 회복이 극히 희박.
회복과 결단의 이분법: 전문가 상담을 통한 관계 재구축의 가능성은 열려 있으나, 혐오감이 의사소통으로 해소되지 않는다면 각자의 길을 찾는 것이 합리적 대안.
결혼 7년 차 A씨의 사례처럼 미래 계획에서 배우자를 배제하고 신체적 친밀감이 사라진 채 경멸의 감정이 고착화됐다면 이는 위험 신호다. 옥시토신 수용체 변이 등 생물학적 요인과 뇌의 ‘자기 참조적 가공’ 기능 변화는 관계 단절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한다. 전문가들은 경멸이 이혼의 핵심 지표인 만큼 냉정한 판단과 결단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챗GPT 제작 이미지
연인이나 부부 관계에서 연애 초기의 열정이 식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회복 불가능한 관계 단절을 암시하는 징후들이 있다. 미국 재향군인부에서 의료 지원 담당자로 근무하며 미국 리젠트대 심리학 박사 카렌 워싱턴의 <부부 권태기 심리학> 연구를 19일 여성경제신문이 뜯어봤다.
카렌 워싱턴은 논문에서 "연애 초기의 이른바 '허니문기'가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다"며 "시간이 지나면 상대의 결점을 직시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서로 양보하지 못하고 골이 깊어지는 상황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근본적인 가치관의 차이가 상대를 보는 시각을 바꾸고 긍정적 감정을 서서히 소멸시킨다"고 지적했다.
'관계 단절을 암시하는 4가지 징후'는 다음과 같다.
△ 미래 계획에 파트너가 존재하지 않는다 일상이나 미래의 계획 속에서 파트너의 존재감이 상실되는 단계다. 워싱턴은 "마음이 관계에서 완전히 떠나버린 명확한 징후"라고 설명했다. 다른 사람과 보내는 미래를 상상하거나 상대방의 근황 및 두 사람의 관계 자체에 대해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무관심이 자리 잡았다면 심각한 위험 신호다.
△ 친밀감 결여로 인한 성생활 정체 업무 스트레스 등 외부 요인에 의한 일시적인 섹스리스와는 구별된다. 관계가 끝을 향해 갈 때 신체적 교류도 함께 단절되는 경향이 짙다. 상대방에 대한 호감이 사라지면서 친밀해지고 싶다는 신체적·정서적 욕구 자체가 상실된 상태다.
△ 함께 보내는 시간의 회피 파트너와 마주하는 시간이 평안이나 기쁨이 아닌 고통과 의무로 변질된 상태다. 상대의 얼굴을 보는 것조차 우울하게 느껴진다면 관계를 유지할 에너지가 고갈됐음을 의미한다. 전문가들은 이 단계에서 부부 상담이나 진지한 대화를 통해 회복 가능성 여부를 냉정하게 파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단절의 징후는 미래 계획에서의 배제, 정서적 섹스리스, 동행 회피, 경멸의 고착화다. 이는 옥시토신 수용체 변이와 뇌의 ‘자기 참조적 가공’ 변화 등 생물학적·신경학적 근거를 동반한다. 특히 경멸은 이혼을 90% 이상 예측하는 핵심 지표로, 회복 노력이 무의미할 경우 각자의 길을 찾는 것이 합리적이다. /구글 제미나이 캔바스 제작 인포그래픽
△ 상대를 향한 경멸 감정의 고착화 관계 문제에 지쳐 상대방의 결점만 눈에 들어오는 이른바 부정적 감정 압도 상태에 빠진 경우다. 상대의 일거수일투족에 한숨을 쉬거나 혐오감을 느낀다면 관계 회복은 매우 어렵다.
부부간의 친밀감 결여와 성생활 정체는 생물학적 기제의 차이에서 기인할 수 있다. 스웨덴 카롤린스카 연구소(Karolinska Institutet)의 하세 월룸(Hasse Walum) 교수팀이 2012년 <생물 정신의학지(Biological Psychiatry)>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옥시토신 수용체 유전자(OXTR) 내 특정 부위(rs7632287)에 변이가 있는 여성은 파트너와의 유대감 점수가 낮고 결혼 생활의 위기를 겪을 확률이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았다.
2019년 예일 대학교 보건대학원 조안 모닌(Joan K. Monin) 교수팀이 <플로스 원(PLOS ONE)>에 게재한 연구에서도 OXTR 유전자의 특정 변이(rs53576의 GG형)를 보유한 부부가 그렇지 않은 부부에 비해 훨씬 높은 결혼 만족도와 보안감을 유지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상대를 향한 신체적·정서적 욕구의 상실이 호르몬 수용체의 생물학적 민감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경멸'의 감정이 유발하는 자율신경계 과각성과 부정적 인지 고착
상대를 향한 경멸이 관계 회복을 어렵게 만드는 이유는 신체적 '투쟁-도피' 반응을 유도하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관계 전문가 존 가트먼(John Gottman) 박사가 이끄는 가트먼 연구소(Gottman Institute)의 장기 임상 연구 데이터에 따르면, 파트너가 경멸의 신호(비웃음, 눈 굴리기 등)를 보낼 때 상대방의 심박수는 급격히 상승하며 자율신경계가 과각성 상태에 빠진다.
부부 관계의 종말은 파트너를 ‘타인’으로 재분류하는 뇌의 인지적 변화에서 시작된다. 상대를 향한 혐오와 경멸이 ‘부정적 감정 압도’ 상태로 굳어지면 이성적 소통이 불가능해지며, 이는 신체적·정서적 고립으로 직결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과학적 위험 신호가 감지될 때 관계 유지 여부에 대한 냉정한 결단이 필요하다고 제언한다. /구글 제미나이 캔바스 제작 이미지
이러한 생리적 각성이 반복되면 뇌의 전두엽 기능이 일시적으로 저하되어 이성적인 소통이 불가능해지며, 결국 상대의 모든 행동을 악의적으로 해석하는 '부정적 감정 압도(NSO)' 상태가 뇌 회로에 고착화된다.
이 연구는 <가족 심리학 저널(Journal of Family Psychology)> 등 다수의 학술지를 통해 경멸이 이혼을 예측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90% 이상의 정확도)임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미래 계획에서의 배제와 '자기 참조적 가공' 뇌 영역의 기능적 변화
미래 계획에서 파트너가 사라지는 현상은 뇌가 파트너를 더 이상 '나의 일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신경학적 신호다. 미국 빙엄턴 대학교(Binghamton University) 리처드 맷슨(Richard Mattson) 교수팀이 2019년 **<가족 심리학 저널>**에 발표한 연구와 관련 신경과학적 해석에 따르면, 친밀한 관계일 때 활성화되는 뇌의 '자기 참조적 가공(Self-referential processing)' 영역인 내측 전전두엽 피질(mPFC)이 관계 단절 단계에서는 변화를 보인다.
심리적으로 멀어진 파트너는 뇌 내에서 '자기(Self)'의 영역에서 '타인(Other)'의 영역으로 재분류된다. 이는 뇌가 인지적 차원에서 파트너를 본인의 삶과 생존 시뮬레이션에서 삭제했음을 의미하며, 전문가들이 이를 '마음이 관계에서 완전히 떠나버린 명확한 징후'로 규정하는 과학적 근거가 된다.
전문가들은 위와 같은 징후가 나타나더라도 양측에 노력할 의지가 있다면 전문가 상담 등을 통해 관계 재구축이 가능하다고 제언한다. 카렌 워싱턴 교수는 "다만 의사소통으로도 혐오감이 지워지지 않고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각자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섹스리스= 질병 등의 이유 없이 부부나 연인이 한 달 이상 성관계를 갖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부정적 감정 압도= 파트너의 긍정적이거나 중립적인 행동마저 부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여성경제신문 김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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