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리스크에 유가·환율 동반 상승···물가 상방압력 확대
경기 둔화 우려 겹치며 금리 인상·인하 모두 부담
채권시장 “연내 인상” 반영···한은, 일단 '관망 모드'
정책 초점, 금리보다 '불확실성 관리'로 이동···방어 국면 진입
[시사저널e=김태영 기자]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7회 연속 동결하며 통화정책의 무게중심을 '판단'에서 '관망'으로 옮겼다. 중동발 유가 급등과 환율 불안으로 물가 상방 압력이 커지는 반면, 경기 둔화 우려도 동시에 확대되면서 금리 인상과 인하 모두 선택하기 어려운 국면에 진입했다.
시장은 이미 연내 인상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지만 한국은행은 불확실성 해소 전까지 속도 조절에 나선 모습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10일 통화정책방향 결정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연 2.50%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기준금리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7회 연속 동결됐다. 이번 결정은 금융통화위원 7명 전원 찬성으로 이뤄졌다.
이번 동결은 시장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금융투자협회 조사에서 채권시장 참여자의 93%가 동결을 전망했다. 다만 직전 조사보다 동결 응답 비율이 낮아진 것은 중동 사태 이후 고유가·고환율로 물가 상승 압력이 확대되며 금리 인상 가능성이 일부 반영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통화정책방향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 사진=한국은행
정책 판단을 어렵게 만든 핵심은 '엇갈린 신호'다. 국제유가 상승과 달러 강세로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를 중심으로 높은 변동성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금리를 인하할 경우 물가와 환율 불안을 자극할 수 있다. 반대로 금리를 인상하면 경기 둔화 압력을 키울 수밖에 없다. 통화정책이 어느 한쪽을 선택하기 어려운 전형적인 '복합 딜레마' 구간에 들어선 셈이다.
실제 물가 흐름은 다시 상방 압력을 받고 있다.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년 동월 대비 2.2%로 전월보다 확대됐고 석유류 가격은 9.9% 급등하며 물가를 끌어올렸다. 수입물가 상승이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반영되는 점을 고려하면 향후 물가 부담은 더 커질 가능성이 있다.
환율 변동성도 금융안정 측면에서 부담 요인이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대를 넘나들며 급등락을 반복하고 있다. 미국과 이란 간 휴전 소식에 일시적으로 하락했지만 협상 불확실성이 지속되며 다시 반등하는 등 시장 불안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모습이다.
1500원을 뚫은 원·달러 환율은 지난달 31일 주간 종가 기준 1530.1원까지 급등하는 등 높은 레벨을 이어갔다. 지난 8일에는 미국과 이란이 2주간 휴전 후 협상에 나선다는 소식에 33.6원 급락해 1470.6원까지 내렸으나, 전날 하루 만에 다시 1482.5원까지 올랐다가 이날 재차 1470원 중반 선에서 움직이는 등 높은 변동성을 나타내고 있다.
성장 경로 역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반도체를 중심으로 한 수출 회복세는 이어지고 있지만 비IT 부문은 여전히 부진하다. 실제로 2월 IT 수출은 큰 폭 증가한 반면 비IT 수출은 감소세를 보였다.
여기에 중동발 에너지 가격 상승이 장기화할 경우 성장 하방 압력은 더욱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 주요 기관들도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주택시장과 가계부채도 통화정책 변수로 남아 있다. 서울 아파트 가격은 상승세가 둔화되는 흐름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상승 기조를 유지하고 있어 추세적 안정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4월 첫째 주(4월 6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직전 주 대비 평균 0.10% 상승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세는 2월 첫째 주 이후 7주 연속 둔화해 0.05%까지 낮아졌다가 지난 2주간 확대돼 0.12%까지 오른 뒤 3주 만에 다시 축소됐다.
한국부동산원 관계자는 "관망 분위기로 거래가 주춤하는 지역과 역세권·대단지, 재건축 추진 단지 중심으로 상승 흐름을 보이는 지역이 혼재하며 서울 지역 전체적으로 상승했다"고 말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10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후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한국은행
시장에서는 앞으로 중동사태에 따른 인플레이션 흐름이 강해지면서 한국은행이 연내 기준금리를 높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채권시장에서는 연말까지 3회(0.25%포인트 인상 기준) 이상의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이 이미 반영된 흐름이다. 국고채 3년물 금리는 직전 금통위가 열렸던 2월 26일 3.062%에 비해 이달 9일(3.338%)은 0.276%포인트가량 높았다.
조용구 신영증권 연구원은 "한국은행은 7월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며 연말 기준금리는 3.00% 수준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4월 중 지정학적 리스크가 완화될 경우 추가 인상은 유보될 여지도 있다. 반대로 근원물가와 기대인플레이션이 악화하면 7월을 포함해 두 차례 인상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섣불리 기준금리 인상에 나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최근 유가 상승 여파로 경기 둔화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할 경우 재정정책의 경기 보완 효과를 제약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정부는 26조2000억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했으며 올해 국내총생산(GDP)을 0.2%포인트 끌어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준우 하나증권 연구원은 "OECD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등 아메리카 지역과 비교할 때 물가 상승 효과는 약 1.4배 수준이지만, 성장률 둔화 폭은 두 배에 달한다"며 "정부의 부양책이 유가 상승 여파를 모두 상쇄하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인상해 그 효과를 제약할 가능성은 작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1월 통화정책방향 의결문 전문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4월 통화정책방향>
금융통화위원회는 다음 통화정책방향 결정시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를 현재의 2.50% 수준에서 유지하여 통화정책을 운용하기로 하였다. 중동전쟁으로 물가의 상방압력 및 성장의 하방압력이 함께 증대되고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상황에서 향후 중동사태 관련 불확실성이 높은 만큼, 현재의 기준금리 수준을 유지하면서 사태의 추이와 파급영향을 좀 더 점검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하였다.
세계경제는 그간 인공지능(AI) 관련 투자 및 주요국의 재정 확대 등으로 비교적 양호한 성장세를 이어왔으나, 중동전쟁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 및 공급 차질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약화되고 인플레이션은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위험회피심리가 강화되면서 주요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었다. 장기 국채금리가 인플레이션 확대 우려 및 이에 따른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변화로 큰 폭 상승한 가운데 미 달러화는 강세로 전환되고 주가가 크게 하락하였다. 다만 미국·이란 간 임시휴전 이후에는 이러한 흐름이 일부 되돌려지는 모습이다. 앞으로 세계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은 중동사태의 전개양상, 주요국 통화·재정정책 및 통상환경 변화, AI 투자 흐름 등에 영향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경제는 수출 호조와 소비 회복에 힘입어 개선세를 지속하였고 고용도 취업자수 증가 흐름을 이어갔지만, 중동사태 이후에는 경제심리가 약화되고 일부 업종에서 생산차질이 발생하는 등 성장의 하방압력이 증대되는 모습이다. 앞으로 국내경제는 반도체 수출 호조 및 추경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가격 상승 및 공급 차질의 영향으로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둔화되면서, 금년 성장률이 지난 2월 전망치(2.0%)를 하회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이러한 성장경로는 중동사태 전개상황 및 통상환경 변화, 반도체 경기 및 내수 회복 흐름 등에 크게 영향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내 물가를 보면, 3월 중 소비자물가 상승률(2.2%)은 석유류가격이 큰 폭 상승하면서 전월보다 높아졌으나, 근원물가(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 상승률(2.2%)은 개인서비스 가격 오름폭 둔화 등으로 소폭 낮아졌다. 단기 기대인플레이션율(일반인, 2.7%)은 전월보다 소폭 상승하였다. 앞으로 물가상승률은 국제유가 상승의 영향으로 상방압력이 크게 확대되겠지만 정부의 물가안정 대책이 이를 일부 완화하면서 2%대 중후반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금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 2월 전망치(2.2%)를 상당폭 상회할 것으로, 근원물가 상승률도 당초 전망(2.1%)보다 다소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향후 물가경로는 국제유가 및 환율 움직임, 정부 물가안정 대책의 효과, 비용상승의 파급 정도 등과 관련한 불확실성이 매우 높은 상황이다.
금융·외환시장에서는 주요 가격변수의 변동성이 크게 확대되었다. 원·달러 환율은 중동전쟁에 따른 미 달러화 강세와 외국인 주식 순매도 등으로 1500원대로 높아졌다가 미국·이란 간 임시휴전 이후 하락하였다. 국고채금리는 국내외 인플레이션 우려 및 이에 따른 통화정책에 대한 기대 변화로 큰 폭 상승하였다가 하락하였고,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오던 주가도 조정받다가 일부 반등하는 등 큰 폭으로 등락하였다. 가계대출은 정부의 거시건전성정책 강화 기조 지속으로 낮은 증가세를 이어갔으며, 수도권 주택가격은 정부 대책 등의 영향으로 오름세가 둔화되고 가격상승 기대도 약화되었지만 추세적 안정 여부는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금융통화위원회는 앞으로 성장세를 점검하면서 중기적 시계에서 물가상승률이 목표수준에서 안정될 수 있도록 하는 한편 금융안정에 유의하여 통화정책을 운용해 나갈 것이다. 국내경제는 중동전쟁으로 물가의 상방위험과 성장의 하방위험이 모두 증대된 가운데 전망의 불확실성도 매우 높은 상황이다. 금융안정 측면에서는 환율 변동성 확대의 영향에 유의하는 한편 수도권 주택가격 및 가계부채의 안정 흐름이 지속될지 계속 살펴볼 필요가 있다. 따라서 향후 통화정책은 중동전쟁 등 대내외 여건 변화와 이에 따른 물가 및 성장 흐름, 금융안정 상황 등을 면밀히 점검하면서 결정해 나갈 것이다.
금번 기준금리 동결 결정에 대해서는 금융통화위원 7명 모두 찬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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