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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금강칼럼] 몸에서 시작된 연극 - 마임의 존재성과 기초예술로서의 가치, 일상의 신체 언어

예술이 시작되었던 시간을 찾는다면 누군가는 동굴 벽화를 이야기하고, 노래와 제의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은 태초에 존재했던 몸일 것이다.

[금강칼럼] 몸에서 시작된 연극 - 마임의 존재성과 기초예술로서의 가치, 일상의 신체 언어

예술이 시작되었던 시간을 찾는다면 누군가는 동굴 벽화를 이야기하고, 노래와 제의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가장 오래된 예술은 태초에 존재했던 몸일 것이다. 말이 생기기 전, 문자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인간은 몸짓으로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고, 움직임으로 사냥과 노동의 경험을 공유했다. 몸은 인류 최초의 언어였고, 마임은 그 언어를 가장 오래도록 간직해 온 예술이다. 그 본질을 들여다보면 특정 장르를 넘어 인간 존재와 삶의 방식에 관한 이야기와 가깝게 맞닿아 있다.

마임(Mime)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미메시스(Mimesis)”에서 시작된다. 미메시스는 ‘모방하다’, ‘재현’, ‘표현하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간을 “모방하는 존재”라고 설명했듯이, 인간은 세상을 관찰하고 그것을 몸과 행동으로 재현하면서 배운다. 아이들이 어른의 행동을 따라 하며 성장하는 것 역시 일종의 미메시스인 것이다. 마임은 이러한 인간의 본능을 예술로 발전시킨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연극의 시작은 배우의 몸이었다. 무대 장치도 없고 대사도 없던 시절, 인간은 몸짓과 움직임으로 사냥을 재현하고 공동체의 기억을 공유했다. 언어 이전에 몸이 있었고, 이야기 이전에 움직임이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신체 표현인 마임은 하나의 공연 장르라기보다는 연극의 가장 오래된 뿌리이자 기초예술이다. 오늘날 마임은 종종 거리 공연이나 무언극의 한 형태로만 이해되기도 한다. 그러나 마임의 본질을 ‘침묵’에만 국한할 것이 아니라, 신체를 통해 인간의 존재와 세계를 표현하는 근원적인 언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연극의 거장 콘스탄틴 스타니슬랍스키는 “배우의 몸은 창작의 도구”라고 말했다. 또한 현대 마임의 창시자 에티엔 드크루는 “배우는 자신의 몸으로 생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관객은 배우의 말을 듣기 전에 자세를 본다. 걸음걸이를 보고, 시선을 보고, 호흡을 본다. 긴장된 몸은 대사보다 먼저 불안을 전달하고, 열린 몸은 말보다 먼저 신뢰를 전달한다. 결국 연극에서 몸은 보조 수단이 아니라 가장 먼저 작동하는 언어가 되기 때문이다.

마임은 왜 기초예술인가.

음악을 배우기 위해 음계를 익히듯, 미술을 배우기 위해 데생을 공부하듯, 연극 역시 기본적인 신체 언어의 문법이 필요하다. 20세기 이후 연극은 큰 변화를 맞이하며 대사 중심의 사실주의 연극에서 벗어났고, 몸과 이미지, 공간을 활용하는 새로운 형식들이 등장하면서 신체연극(Physical Theatre)이 탄생했다. 마임의 다양한 표현 방식과 서사 형식이 더해지면서 신체연극은 대사를 중심에 두기보다는 몸의 움직임, 이미지, 오브제, 리듬, 공간을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며 현대연극의 방향을 폭넓게 열어주었다.

신체연극이 마임으로부터 가져온 것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몸으로 사고하는 방식’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특정 장르의 기술을 넘어 모든 공연예술의 기본 역량이 되었다. 세계 유수의 연극학교들은 지금도 마임과 움직임 훈련을 배우 교육의 핵심 과정으로 채택하며, 아티스트들이 동시대 예술의 지평을 열 수 있도록 창작 활동을 지원한다.

이에 따라 많은 연출가와 배우들은 몸이 가진 본래의 힘을 회복하려는 시도로 마임, 댄스 시어터, 서커스, 오브제극, 거리극, 퍼포먼스 아트 등을 포괄하는 확장된 개념을 실험하며 공연의 새로운 ‘이즘(ism)’을 만들어내고 있다. 마임과 신체연극은 공연 무대뿐만 아니라 예술 교육 현장, 치유 프로그램, 지역 공동체 활동, 축제와 거리 예술, 일상의 공감, 기업의 소통 훈련 등 다양한 분야에서 기초예술로서 가치를 더해주고 있다. 그 것은 인공지능 시대에도 대체할 수 없는, 신체 표현이 주는 인간의 본질적인 소통 방식을 다루기 때문이다. 언어가 달라도 몸은 통하고, 국적이 달라도 움직임은 전달된다. 세대가 달라도 감정은 공유된다. 이것이 표현 언어가 가진 가장 강력한 사회적 가치이며, 몸은 사라지지 않는 예술이다.

수많은 정보와 이미지가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의 시선을 스쳐 지나간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존재와 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귀 기울이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몸은 기억한다.

몸은 말한다.

그리고 몸은 생각한다.

예술은 그 몸의 언어를 세상과 연결하는 가장 아름다운 번역이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기술과 더 많은 정보에 앞서, 잊고 지냈던 몸의 감각을 다시 깨우고 일상의 움직임 속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이다. 걸음 하나, 숨결 하나, 타인과 마주하는 시선 하나에도 인간다움의 본질은 여전히 살아 있기에. 자신의 몸을 인식하는 순간, 지금 이곳에 살아 있음을 느끼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무엇이 소중한 것인지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 이해는 예술의 시작이자 삶의 시작이며, 인간이 자신과 세계를 만나는 가장 깊고 근원적인 출발점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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