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끝에서 마주하는 붉은 열매
[박길선의 애그테크, 농부 옆자리에 앉다 20]
농사는 매 순간 선택의 연속이다.
어떤 종자를 고를지, 언제 물을 줄지 결정해야 하지만, 가장 결정적인 선택은 ‘올해 무엇을 심을 것인가’이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씨앗을 넣는 마지막 결정은 농부의 몫이다. 기후 위기와 불확실성이 농촌을 덮칠수록 많은 농부의 선택이 하나의 점, 즉 토마토로 수렴하고 있다. 농부들이 기꺼이 토마토를 심는 이면에는 깊고 현실적인 통찰이 숨어 있다.
♤오이가 무너질 때, 토마토는 견뎌낸다
여름철 주력 작물을 오이에서 토마토로 전환하는 농가를 찾는 것은 이제 어렵지 않다. 오이는 기온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급격히 무너진다. 고온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병해에도 속수무책이다.
반면 토마토는 상대적으로 ‘강단’이 있다. 고온 회복력이 좋고 과피가 단단해 병해충에 견디는 힘도 우수하다. 물론 토마토 농사가 쉽다는 뜻은 아니지만, 관리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를 돌려준다는 믿음이 있다. 기후가 날뛰는 시대에 이 ‘믿을 수 있는 선택지’는 곧 생존과 직결되는 신뢰의 자산이다.
불확실한 기후 시대를 살아가는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측 가능성'이다. 관리한 만큼 정직하게 결과를 돌려준다는 신뢰, 그 선택의 끝에 언제나 붉은 토마토가 있다. [촬영 히포팜텍]
♤인간의 손길이 빚어낸 ‘예측이 가능한 식물’
수백 년 동안 인류는 토마토를 재배하기 쉽게 개량해 왔고, 그 과정에서 토마토는 인간이 설계한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유전자에 각인했다. 그래서 토마토는 현대의 첨단 기술과 완벽한 호흡을 자랑한다. 환경을 조절하면 반응하고, 빛을 바꾸면 생장이 달라진다. 데이터를 쌓으면 수확량까지 예측할 수 있다. 스마트팜과 실내 수직 농장에서 토마토가 결코 빠지지 않는 이유다.
태양 대신 인공 광원을 쓰고 시스템으로 하루를 만드는 환경에서도 토마토는 묵묵히 자라난다. 빛의 세기를 조절해 ‘최적의 하루’를 선물하면 어김없이 붉은 열매를 맺는다. 토마토는 기술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증거물이자 농부에게는 실패의 공포를 낮춰주는 파트너가 되었다.
♤기록이 무너진 시대,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
“20년 농사 기록이 이제는 맞지 않는다.”라는 농장주의 말처럼, 과거의 경험은 더 이상 미래를 보장하지 않는다. 농부는 이제 운명에 맡기거나, 아니면 환경을 스스로 통제해야 한다. 토마토는 농부에게 그 두 번째 길, 즉 ‘환경 제어 농업’으로 들어가는 문을 열어준다.
한 달간 우리는 토마토를 통해 농업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살폈다. 토마토는 단순히 식재료가 아니라 기후 위기를 넘기 위해 인류가 연마해 온 기술의 총체이자 농부의 마지막 신뢰가 담긴 보루다.
인간의 손길과 첨단 기술이 빚어낸 정직한 결실. 데이터와 과학적인 광원 기술로 재배된 토마토는 농부에게 실패의 공포를 낮춰주는 믿음직한 파트너가 된다. [촬영 히포팜텍]
토마토를 심는 것은 미래 농업의 한 조각을 심는 것과 같다. 히포팜텍의 빛 아래서 익어가는 저 열매들은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농업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묵묵히 웅변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토마토라는 매개체를 통해 다가올 미래를 재배하고 있다.
[박길선은 독일연방화훼협회(FDF)의 플로리스트 자격과 독일상공회의소(HK)의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자격을 취득하고, 2015년과 2016년 인천기능경기대회에서 우수상을 받았다. 플로리스트 마이스터로서 꽃과 식물의 언어를 먼저 배운 뒤, 첨단농업의 현장을 꾸준히 관찰해 왔으며, 특별히 농부의 옆자리에 앉아 식물과 기술, 그리고 소비자라는 다원의 가치를 기록해 나간다. 현재 ㈜팜텍에서 글로벌 마케팅에 역점을 두고 식물조명과 재배 환경 기술 등 애그테크 분야의 경영과 기획을 총괄한다. hippofar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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