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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귀를 열면 세상이 보인다

요즘은 말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시대다.

귀를 열면 세상이 보인다

[충청산책] 김법혜 스님·철학박사·민족통일불교중앙협의회 의장

요즘은 말이 부족해서 문제가 아니라 말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시대다.

아침에 눈을 뜨면 휴대전화부터 찾는다, 밤늦까지 수많은 뉴스와 영상. 댓글과 이야기가 쏟아진다. 누군가는 이것이 옳다고 하고 다른 누군가는 정반대로 말을 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정보는 넘쳐나는데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이해는 오히려 줄어 들고 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이야기만 듣는다. 나와 생각이 다르면 틀렸다고 여기고 때로는 상대를 이해하기보다 먼저 비난한다. 많이 듣는 시대에 우리는 왜 서로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

옛사람들은 일찍이 두루 듣는 것의 중요성을 알았다. 한쪽의 말만 들으면 판단이 치우칠 수 있지만 여러 사람의 말을 듣고 살피면 사물의 이치를 보다 밝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단순한 이치다. 그러나 실천하기는 쉽지 않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하기 때문이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면 다른 사람의 말이 틀리게 들리고. 내가 믿고 싶은 이야기는 사실인지 확인하기도 전에 믿어버린다.

특히 요즘처럼 정보가 빠르게 퍼지는 시대에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 누군가에게 들은 이야기를 확인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게 전하고 그것이 다시 누군가의 입을 거치면서 사실처럼 굳어지는 경우가 있다.

말은 가벼워 보이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무거운 흔적을 남긴다. 한마디의 말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반대로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줄 수도 있다. 그래서 남의 이야기를 들을 때는 한 번쯤 멈추어 생각해야 한다. 정말 그런 것일까? 내가 들은 것이 전부일까? 그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또 다른 이야기가 있지는 않을까? 이렇게 한 번만 더 생각해도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진다.

불교에서는 남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피라고 가르친다. 남의 허물을 찾는 일보다 내 마음속의 편견과 집착을 돌아보는 일이 먼저라는 뜻이다.

세상을 바꾸는 일도 어쩌면 여기에서 시작되는지 모른다.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내 생각과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단정하지 않는 것. 그리고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마음 한구석에 남겨두는 것. 그것이 바로 겸손이고 지혜다.

우리는 말하기 위해 입은 하나지만 듣기 위해 귀는 두 개를 가지고 있다. 어쩌면 이것이 자연이 우리에게 주신 작은 가르침인지도 모른다. 말하기보다 많이 들으라는 뜻일 것이다.

가정에서도 그렇다. 부부가 서로의 말을 조금만 더 들어주면 다툼이 줄어 들고, 부모가 자녀의 말을 귀담아 들으면 세대의 벽도 조금씩 낮아진다. 사회도 다르지 않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상대방의 말을 들을 수 있을 때 갈등은 대화가 되고 대화는 이해가 된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더 큰 지혜일 때가 있다. 세상이 시끄러울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목소리가 아니다.

조금 더 깊이 듣는 귀와 한 번 더 생각하는 마음이다. 오늘 내가 만나는 사람의 말을 조금 천천히 들어보자. 나와 생각이 다르더라도 귀를 닫지 말자. 그 사람의 말 속에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진실이 있을지도 모른다. 한쪽의 말만 들으면 세상은 좁아진다. 두루 들으면 세상이 넓어진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들으면 사람이 보이고 사람을 이해하면 세상이 보인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 바로 그 작은 겸손에서 지혜가 시작 된다.

오늘은 말 한마디를 줄이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더 들어보자. 귀를 열면 사람이 보이고 마음을 열면 세상이 밝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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