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회

[권영설 칼럼 넥스트 스타일] 경영도 문제 해결의 연속…희망도 거기에...

AI 디자인 시스템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디지털 접점을 강화한 나이키의 가설 수정은 그들을 다시 확고한 선두 자리에 올려놓았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역시 패션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환경 파괴라는 도덕적...

[권영설 칼럼 넥스트 스타일] 경영도 문제 해결의 연속…희망도 거기에...

“칼 포퍼가 던진 지적 탐구의 화두

오류 고치며 진리에 다가서는 여정

비관 속에서 희망의 증거를 찾고

내일을 위해 오늘 문제를 풀어야”

오스트리아 출신의 과학철학자이자 자유주의자인 칼 포퍼는 저서 『삶은 문제 해결의 연속이다(All life is problem solving)』를 통해 인류의 진보를 날카롭게 정의했다. 그에게 삶이란 끊임없이 닥쳐오는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오류를 수정하며 더 나은 가설을 세워가는 지적 투쟁의 장이다.

포퍼의 반증주의를 설명할 때 흔히 인용되는 예시가 바로 끓는 물의 온도다. 우리는 보통 물은 100°C에서 끓는다는 명제를 절대적인 사실로 믿는다. 그러나 높은 산에 올라가 물을 끓여보면 사실이 아님이 드러난다. 이때 산 위에서의 경험은 기존 명제를 파괴하는 실패가 아니라, 새로운 반증의 기회가 된다. 이를 통해 명제는 “물은 해면과 같은 1기압 상태에서 100°C에 끓는다”는 더 정교하고 진리에 가까운 문장으로 수정된다. 진보란 이처럼 완벽한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오류를 발견하고 가설을 끊임없이 다듬어가는 과정이다.

이러한 포퍼의 통찰은 전통과 혁신이 충돌하는 섬유·패션 산업 리더들이 진지하게 곱씹어볼 잠언이다. 경영자에게 닥친 위기는 절망의 신호가 아니라, 더 나은 가설을 세우라는 강력한 요구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직시하고, 본질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새로운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일이다.

이미지 칼 포퍼 캐리커춰 이미지=제미나이(나노바나나) 생성

2010년대 중반, 글로벌 스포츠웨어 업계의 강자 나이키는 성장의 한계라는 벽에 부딪혔다. 당시 나이키를 지탱하던 가설은 신발 회사는 대형  유통 채널을 통해 제품을 팔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거대 플랫폼의 잠식과 소비자 취향의 파편화는 이 가설을 보기 좋게 반증했다. 유통 채널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더 이상 소비자와 직접 소통할 수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때 나이키는 대담한 가설 수정을 단행했다. “우리는 신발 회사가 아니라 디지털 테크 기업이다”라는 선언이었다. 2019년 11월 아마존과의 협력을 전격 종료하고, 2020년 IT 전문 경영인 존 도나호를 CEO로 영입하며 추진한 디지털 전환(D2C)은 패션업계의 상식을 뒤엎는 문제 해결 방식이었다. 그들은 자체 앱을 통해 3억 명 이상의 회원 데이터를 직접 수집하며, 시장의 새로운 변수를 장악했다. AI 디자인 시스템으로 수요를 예측하고 디지털 접점을 강화한 나이키의 가설 수정은 그들을 다시 확고한 선두 자리에 올려놓았다.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역시 패션 산업의 고질적인 문제인 환경 파괴라는 도덕적 모순에 정면으로 부딪혔다. 기존 경영의 명제는 성장을 위해서는 환경을 어느 정도 희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지구는 우리의 유일한 주주’라는 선언과 함께 이 해묵은 가설이 틀렸음을 증명하기로 했다.

그들은 판매와 소유를 분리하는 역설적인 전략을 택했다. 2011년 블랙프라이데이에 내건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라는 광고는 무조건적인 소비 대신 이미 가진 옷을 오래 입으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2013년부터 시작된 원웨어(Worn Wear) 프로그램은 고객의 옷을 평생 무상 수선해줌으로써, 기업이 매출을 포기하면 망한다는 기존 가설을 반증했다. 오히려 소비자들은 그들의 철학에 열광하며 강력한 팬덤을 형성했다. 기술적으로도 최근 스타트업 서크(Circ)와 협력하여 혼방 원단을 화학적으로 분리해내는 성과를 거두며, 순환 경제라는 더 높은 차원의 진리에 다가서고 있다.

이 사례들은 모두 절망적인 상황을 해결해야 할 문제로 정의하고, 기존 문법을 해체해 새로운 가설을 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칼 포퍼는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으나, 우리가 미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영자란 바로 그 알 수 없는 미래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 위해 혁신이라는 도구로 오늘의 오류를 수정해가는 사람이다.

경영도 문제 해결의 연속이며, 그 고통스러운 과정은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더 나은 세상이 가능하다는 희망을 준다. 우리 산업의 위기 역시 어쩌면 우리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위대한 가설을 기다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산 위에서 물이 끓지 않는다고 절망할 것이 아니라, 기압이라는 새로운 변수를 발견한 것에 기뻐해야 한다. 그 문제가 곧 우리가 찾는 희망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

Tag

이 기사 공유하기
페이스북X

이 기사를 추천합니다

i

댓글

0

후 댓글을 작성할 수 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이 기사에 첫 의견을 남겨보세요.

댓글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