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설화 따라 걷는 전남의 마을
2026년 07월 21일(화) 19:10
나주 완사천에는 왕건과 버들낭자 설화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버들잎 띄운 물 한 바가지에서 시작된 고려 건국 설화가 지금도 영산강 물길 곁에 남아 있다.
오래된 마을에는 저마다 이야기가 남아 있다. 누군가는 금가락지가 떨어진 명당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도술을 익힌 도사와 동굴법당 전설을 전해준다. 또 다른 곳에는 버들잎 띄운 물 한 바가지에서 시작된 고려 건국 설화가 남아 있다. 지리산 자락과 산중 절집, 영산강 물길을 따라 이어지는 전남의 마을들은 그렇게 오랜 시간을 품은 채 지금도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구례 오미마을, 금환락지 설화와 운조루
구례군 토지면 오미마을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지리산 노고단에 내려온 선녀가 섬진강 물에 머리를 감으려다 손가락의 금가락지를 떨어뜨렸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그 자리를 ‘금환락지(金環落地)’라 불렀다. 하늘의 기운과 복이 머무는 명당이라는 뜻이다. 토지면이라는 지명 역시 ‘가락지를 토해낸 땅’이라는 뜻의 ‘토지(吐指)’에서 비롯됐다는 해석이 전해진다.
오미마을로 들어서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섬진강 물길이 마을 아래를 감싸고 돌담 너머로 낮은 한옥 지붕들이 이어진다.
구례 오미마을의 운조루 전경. 조선 후기 양반가 고택의 단정한 풍경이 인상적이다.
여름 햇살 아래, 유난히 단정하고 깊은 집 한 채가 모습을 드러낸다. 조선 후기 양반가 고택 운조루(雲鳥樓)다. ‘구름 속의 새가 사는 누각’이라는 뜻의 운조루는 1776년 류이주가 세운 집이다. 풍수와 천문, 지리에 밝았던 그는 7년에 걸쳐 이 집을 완성했다. 기록에 따르면 처음에는 비바람이 심해 사람이 살기 어려운 터라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류이주는 “하늘이 이 땅을 아껴두었다”며 끝내 집을 세웠다고 한다. 이후 운조루는 구례를 대표하는 명문가이자 지역 문화의 중심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운조루 역시 특별한 이야기를 품고 있다. 사람들은 이 자리를 금거북이가 진흙 속에 묻혀 있다는 뜻의 ‘금구몰니(金龜沒泥)’ 명당이라 불렀다. 실제로 집터를 닦기 위해 땅을 파던 중 어린아이 머리 크기의 돌거북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솟을대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니 마당 한켠에 붉게 익어가는 앵두가 초여름을 알리고 있었다.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가 ㄷ자와 ㅁ자 구조로 배치돼 있고 넓은 마당과 대청이 시원하게 이어진다. 솟대를 주제로 한 전시도 함께 열리고 있었다.
운조루 솟을대문 옆에 놓인 ‘타인능해(他人能解)’ 뒤주. 어려운 이웃 누구나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던 나눔의 정신이 담겨 있다.
운조루를 가장 오래 기억하게 만드는 것은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나무 뒤주 하나다. ‘누구라도 열어 쌀을 가져갈 수 있다’는 뜻이다. 운조루 사람들은 이 뒤주에 쌀을 채워두고 끼니가 어려운 이웃들이 언제든 와서 쌀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운조루 유물전시관에는 시간이 켜켜이 기록돼 있다. 류씨가에 남겨진 생활일기와 농가일기, 시문 기록들이 소개돼 있다. 대한제국 말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농촌의 변화와 생활상, 시대 분위기가 세밀하게 담겼다. 오래된 집 한 채가 지역의 역사책 역할까지 하고 있는 셈이다.
구례 오미마을 곡전재. 금가락지 형상을 담은 담장 구조가 특징인 한옥으로, 풍수 명당 설화가 건축에 녹아 있다.
운조루 아래쪽에 자리한 곡전재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1929년에 지어진 살림집으로 금가락지 형상을 담은 담장 구조가 인상적이다. 풍수 명당 이야기를 실제 건축으로 풀어낸 공간처럼 느껴진다.
◇담양 연동사, 동굴법당과 전우치 설화
금성산 자락 깊은 곳, 담양 연동사에는 지금도 도사 전우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조선시대 실존인물이자 도술로 이름난 인물이지만 정사(正史)에 기록된 바가 없어 정확한 생애를 파악할 수는 없다. 다만, 담양에서는 사람들을 홀리던 도사가 아니라 산속 절집에서 신비한 술법을 익히며 수행하던 인물로 전해진다.
연동사 동굴법당. 전우치가 수행하며 도술을 익혔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공간으로, 자연 암벽 아래 작은 불상들이 놓여 있다.
연동사는 고려시대 이전부터 존재했던 오래된 사찰로 전해진다. 전우치 전설과 함께 동굴법당, 노천법당, 지장보살입상, 삼층석탑 등 볼거리가 많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고려 문종 때 예부상서를 지낸 이영간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절에서 술을 담가 익혀두면 누군가 몰래 와 훔쳐 마셨는데, 범인은 다름 아닌 늙은 살쾡이였다. 이영간이 살쾡이를 잡자 살려달라며 신기한 술법 책을 건넸고 이후 이영간이 남다른 능력을 갖게 됐다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황당한 이야기 같지만 산속 절집과 도술, 신비한 존재가 함께 등장하는 전설은 연동사에 얽힌 설화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바위 절벽 아래 자리한 연동사 노천법당 기자
연동사 동굴법당 안내판에는 전우치가 이곳에 업둥이로 들어와 수행하던 중 여우를 살려주고 도술을 배웠다는 전설이 적혀 있다. 스님들이 빚던 곡차 ‘제세팔선주’를 훔쳐먹던 여우를 잡았지만 죽이지 않고 놓아주었고, 그 은혜로 술법과 도술을 익혔다는 내용이다. 흔히 전우치 하면 장난기 많고 자유분방한 도사의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지만, 연동사에 남은 전우치는 자연과 동굴, 술과 수행이 함께 어우러진 남도의 산중 인물에 가깝다.
절은 금성산성 아래 깊은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는데 곳곳에 커다란 암벽과 동굴이 남아 있다. 동굴법당은 이름 그대로 바위 동굴 안에 법당을 만든 공간이다. 바위 아래 촛불이 놓여 있고 작은 불상들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연동사는 한동안 폐사 상태로 남아 있었다. 정유재란 이후 400년 가까이 절터만 남아 있었는데, 1990년대 원행 스님이 들어와 절을 다시 일으켰다. 스님은 동굴에서 수행하며 극락보전과 노천법당을 만들고 흩어진 석탑 부재를 모아 절을 복원했다. 지금은 선행 스님이 맡고 있다.
담양 연동사지 지장보살입상. 거대한 암벽 아래 자리한 고려시대 석불이다.
바위 절벽 아래 자리한 노천법당에는 고려시대 지장보살과 삼층석탑이 놓여 있는데 풍경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야외 수행처 처럼 느껴진다.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찾은 노천법당 앞에 하얀 연등이 내걸려 있다. 불교에서 하얀 연등은 순수·지혜·깨끗함을 상징하며 부처의 순결한 가르침과 마음의 완전한 깨달음을 의미한다.
절 곳곳에는 원행 스님의 흔적도 남아 있다. 직접 빚은 나한상과 달마도, 자연을 살린 조경과 오죽숲까지 연동사 전체가 하나의 수행 공간처럼 꾸며져 있다. 전기가 부족해 극락보전 뒤편에는 자연 채광을 위한 통유리가 설치돼 있고, 요사채 지붕에는 대나무와 산죽이 얹혀 있다. 화려하거나 거대한 절은 아니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깊은 분위기를 만든다.
◇나주 완사천, 버들낭자 고려 건국 설화
영산강 물길은 오래전부터 사람과 물자, 이야기가 드나들던 길이었다. 후삼국 시대 왕건 역시 이 강을 따라 나주에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지금의 영산포와 완사천 일대에는 고려 건국과 연결되는 오래된 설화가 남아 있다.
돌담으로 정비된 나주 완사천.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으로 알려져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나주시청 인근 도로변에 자리한 완사천이다. 지금은 돌담으로 정비된 모습이지만, 본래는 사람들이 쪽박으로 물을 떠 마시던 작은 옹달샘이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무리 가뭄이 들어도 마르지 않는 샘으로 알려져 있으며, 1986년 전남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고려를 세우기 전 왕건은 영산강을 따라 배를 타고 여러 차례 나주를 찾았다. 당시 후백제 견훤 세력과 치열하게 맞서던 왕건에게 나주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왕건은 완사천에서 한 처녀를 만나게 된다. 목이 말라 물을 청한 왕건에게 처녀는 바가지에 물을 담아 건넸다. 물 위에는 버들잎이 띄워져 있었다. 이유를 묻자 처녀는 급하게 물을 마시면 체할 수 있어 버들잎을 띄웠다고 답했다. 상대를 배려하는 총명함과 침착함에 왕건은 깊은 인상을 받았고, 훗날 그녀와 인연을 맺게 된다.
나주 ‘왕건과 버들낭자 고샅길’ 벽화. 말을 탄 왕건과 버들잎 띄운 물을 건네는 장면 등이 골목 담장에 그려져 있다.
설화 속 처녀는 바로 나주 오씨인 장화왕후로 전해진다. 훗날 고려 태조 왕건의 제2비가 됐고, 두 사람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 고려 2대 왕 혜종이다.
완사천 주변에는 이런 이야기를 보여주는 흔적들이 남아 있다. 왕건과 장화왕후의 만남을 형상화한 조형물과 장화왕후 유적비가 세워져 있고, ‘왕건 버들낭자 고샅길’ 벽화에는 당시 설화 장면들이 담겨 있다. 말을 탄 왕건과 버들잎 띄운 물을 건네는 처녀의 모습이 골목 담장 곳곳에 이어지며 오래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한다.
이 일대에는 흥룡사와 혜종사라는 사당이 있었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흥룡사는 장화왕후의 오씨 가문 터에 세워졌으며, 혜종사는 조선 중기까지 혜종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고 전해진다. 설화로 시작된 이야기가 지역의 역사와 기억 속에 오랫동안 남아 있었던 셈이다.
/글=이보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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