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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국익이란 무엇인가[오찬호의 틈새]

가짜라고 해서 AI가 만든 조작영상이라도 되는 줄 알았더니, 2년 전 이스라엘 군이 팔레스타인 무장 대원을 사살한 뒤 시신을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 담겨 있었다. 이게 소년을 고문하고...

국익이란 무엇인가[오찬호의 틈새]

[오찬호의 틈새] 그들은 왜 '기도에 대한 응답'이라고 했을까

내게 최영 장군은 황금 보기를 돌같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 한 줄로 기억했고, '최영 장군의 말씀 받들자'라고 흥얼거리며 노래도 불렀다. 제주에서는 다르게 기억되고 있음을 전혀 몰랐다. 삼별초를 제주에서 완전히 진압한 여몽연합군의 몽골인들은 제주를 목장의 섬으로 바꾸면서 100년간 직접 통치했다. 그리고 원나라가 명나라에 중원의 지배권을 뺏겼을 때도 명 황제에게 말을 바치는 걸 거부했는데, 이게 '목호(牧胡)의 난'(1374년)이다.

에 최영 장군이 전함 314척과 병력 2만5600명으로 이 난을 한 달 만에 진압했다고 명확히 기록돼 있다. 그래서 악을 응징한 정의로운 일처럼 해석될 여지가 다분하지만 설마 목호만 진압했겠는가. 한 세기 동안 얽히고 얽힐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제주도 사람들을 잔인하게 처형했다. 정확히는, 그렇게 추정할 뿐이다. 제주 향토사학자들은 목호의 난을 '고려판 4·3 사건'이라 부를 정도지만 제주도 사람 몇 명이 죽었는지 모른다. 기록은 없고 오직 전해지는 이야기만 있기 때문이다. (4·3으로 비유하는 이유에는, 명나라에게 고려가 누구 편인지를 보여주려는 다급함이 미국에게 완전히 무결한 자유주의 국가로 인정받으려는 이승만의 조급함과 같음을 강조하려는 측면도 있다.)

연구를 통해 역사가 복원될 수도 있지만 한 번도 분위기조차 없었다. 교과서에 한두 줄 정도로 가볍게 기록된 게 전부인 섬의 역사, 그리고 나쁜 놈을 물리쳤다고 알려진 승리의 역사 그 이면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불과 78년 전이었던 제주 4.3의 의미도 갖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훼손하는 이들도 있는데, 알지도 못하는 652년 전의 국가폭력의 진실이 드러나겠는가. 그러니 '당시 제주도 사람 절반이 죽었다'라는 말이 떠돌 수 있는 거다. 나도 시도 때도 없이 그렇게 말한다. 답답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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