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전경. 한경DB
국민연금의 국내 부동산 신규 투자가 사실상 멈춰 섰다. 부동산투자실의 지휘부 공백이 장기화하면서 새 출자사업은 운용사 모집조차 시작하지 못했고, 이미 진행 중인 출자사업도 최종 심사를 앞두고 중단됐다. 시장 조정기를 겨냥해 준비한 1조원대 투자 계획이 잇달아 차질을 빚으면서 운용업계의 혼란도 커지고 있다.
22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당초 지난 7월 국내 부동산 논코어 대출형(Non-Core Debt) 펀드 운용사 모집에 나설 계획이었지만 9월 하순인 현재까지 관련 공고를 내지 못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3월 발표한 연간 위탁운용사 선정계획에서 7월 모집을 시작해 9월 최종 선정을 마치겠다고 밝혔다. 2개 운용사를 선정해 각각 최대 3000억원씩 총 6000억원을 출자하는 사업이다.
논코어 대출형 펀드는 우량 부동산에 선순위 대출을 제공하는 코어 대출보다 높은 위험을 감수하는 대신 더 높은 수익을 추구하는 전략이다. 개발사업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브리지론, 부실채권(NPL) 등이 주요 투자 대상이다. 금융회사들의 대출 공급이 위축되거나 부동산 가격 조정으로 자금 수요가 커지는 시기에 투자 기회가 늘어나는 전략으로 꼽힌다.
업계에서는 출자 지연의 배경으로 국민연금 부동산투자실의 장기화한 지휘부 공백을 지적한다. 부동산투자실 수석급 운용역이 내부 감사로 업무에서 배제된 이후 두 달 넘게 자리가 사실상 비어 있어서다. 인프라투자실장이 업무를 대신 맡고 있지만 기존 자산 관리와 달리 신규 출자처럼 주요 투자 판단이 필요한 사안은 의사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은 상황인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 운용사 선정에 들어간 6000억원 규모 국내 부동산 오퍼튜니스틱 펀드도 절차가 멈춰 있다. 국민연금은 지난 6월 말 현대인베스트먼트자산운용, 미래에셋자산운용, 캐피탈랜드투자운용, 코람코자산신탁 등 4곳을 쇼트리스트로 선정했지만 이후 예정됐던 최종 대면심사를 진행하지 못했다. 당초 7월 말 2개 운용사를 최종 선정할 계획이었다. 논코어 대출형까지 합치면 올해 예정된 1조2000억원 규모 신규 출자가 나란히 차질을 빚고 있는 것이다.
운용업계에서는 국민연금이 국내 부동산 투자를 다시 늘리던 시점에 출자 일정이 멈춘 점을 우려하고 있다. 국민연금은 2024년 약 5년 만에 국내 부동산 위탁운용사 출자를 재개하고 6000억원 규모 대출펀드를 조성했다. 이후 국내 투자 전략과 운용사 풀을 넓히면서 고금리와 거래 침체로 위축된 부동산 시장에 다시 자금을 공급하기 시작했다.
국민연금의 출자가 늦어지면 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히 출자액 규모에 그치지 않는다. 국민연금이 앵커 투자자로 참여하면 운용사들은 이를 기반으로 공제회와 보험사 등 다른 기관 자금까지 끌어들여 펀드 규모를 키울 수 있다. 출자 일정이 늦어질수록 펀드 결성은 물론 이미 확보한 투자 대상의 인수와 대출 집행 일정까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장 상황도 투자 지연에 대한 아쉬움을 키우고 있다. 지난 3월 말 국내 부동산 PF 대출 연체율은 4.65%로 석 달 새 0.77%포인트 상승했고, 사업성 평가에서 ‘유의’ 또는 ‘부실우려’로 분류된 PF 여신도 16조4000억원에 달했다. 우량 사업장에는 자금이 다시 유입되고 있지만 차환이 어려운 사업장과 NPL 시장에는 여전히 투자 기회가 쌓여 있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특히 논코어 대출형과 오퍼튜니스틱형은 시장 조정기에 PF와 NPL, 저평가 자산을 선별해 높은 수익을 노리는 전략이다. 자금 집행이 수개월씩 늦어지면 국민연금과 운용사 모두 투자 적기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운용사뿐 아니라 한국 부동산 시장에서 투자 기회를 찾는 해외 운용사들도 국민연금의 향후 투자 행보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 부동산 운용업계 관계자는 “국민연금 출자를 기다리며 투자 계획을 짜온 운용사가 적지 않다”며 “일정이 계속 밀리면 투자 기회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민경진 기자 mi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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