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서울대병원 외과 장진영 과장
역량 수련 '시금석' 외과술기센터 개소
저수가·사법리스크에 위협받는 수련
"고군분투 외과에 정당한 대우 있길"
1월 개소한 서울대병원 외과술기교육센터에서 훈련 중인 외과 전공의. 서울대병원 외과 교수들의 노력으로 마련했다(사진 제공: 서울대병원).
"수술 날짜를 잡으면 환자들이 꼭 묻습니다. '교수님이 직접 하시는 거 맞죠?' 전공의가 수술장에 들어갈 기회가 이렇게 점점 줄고 있습니다."
수십 년 전 외과 선배들이 술기 연마를 위해 돼지 도축장을 찾아다니며 장기를 얻어오던 시절이 있었다. 열악한 환경에서도 '수술할 줄 아는 의사'를 길러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만든 외과의 역사다. 그러나 이제 선배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는 '도제식 수련'마저 설 자리가 위태롭다. 저수가와 법적 책임 부담이 진료와 교육이 공존해야 할 '수련병원'을 무너뜨리고 있다.
서울대병원 외과 과장인 장진영 교수는 최근 청년의사와 만난 자리에서 현재 외과 수련 위기를 "경험의 절대적 부족"이라 진단했다. 외과 수련 기간이 3년제로 전환된 후 교수들 사이에 "전공의 수술 기량이 과거보다 떨어질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했다"며 "전공의들이 주로 맡았던 개복 수술의 배를 열고 닫는 과정조차 복강경과 로봇 수술 도입으로 사라지는 추세"라고 했다.
장 교수에 따르면, 고령화와 외상 사고 증가로 외과계 수술 수요는 매년 5~7% 증가하고 있다. 반면, 3년제 전환 후 전공의의 수술 참여 기회는 평균 30~40% 감소했다.
'여유' 없는 외과…수련 대책 손수 찾은 교수들
서울대병원 외과 장진영 교수는 역량 중심 수련 중요성을 강조했다(사진 제공: 서울대병원).
전공의에게 충분한 기회를 줄 '여유'가 외과에는 허락되지 않는다. 미국처럼 전공의가 집도의를 맡고 교수가 어시스트하는 교육 수술을 하려면, 한국에서는 교수 한 명이 새벽부터 야간까지 꼬박 수술실에 서야 한다. "수술 수가가 미국의 20분의 1에 불과"한 한국에서는 "그래야 우리 과 수술실을 지킬 명분이 생기고 병원이 유지되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교육하는 수술'은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 전공의들은 필수 술기를 다 익히지 못한 채 병원 밖으로 나가야 한다.
서울대병원 외과술기교육센터(Surgical Simulation & Innovation Laboratory, SSIL)는 이같은 위기를 타개하고자 교수들이 마련한 자구책이다. 수억원대 로봇 시뮬레이터를 도입하고자 교수들이 저마다 갹출하고 후원자를 찾았다. 현재 예약제로 운영하는 로봇·복강경 수술 시뮬레이터와 내시경 시뮬레이터를 비롯해 초음파 장비와 혈관 문합 훈련 장비 등 다양한 첨단 교육 장비를 갖췄다. 40여명의 외과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밤낮없이 센터를 드나들며 "젓가락질하듯" 기구를 손에 익히고 있다.
교육은 철저히 역량 중심으로 진행된다. 장 교수는 "대장·맹장·담낭·위 수술 등 10개 가까운 모듈이 마련돼 있다. 시뮬레이터 훈련 중 기구끼리의 충돌, 과도한 힘의 사용, 바늘의 각도 등을 인공지능(AI)이 분석해 점수화한다"며 "목표치인 90점 이상을 달성하고 교수들의 평가를 통과하면 실제 환자 수술에 단계적으로 참여할 기회를 얻게 된다"고 했다.
시뮬레이션 교육으로 찾은 '수술의 즐거움'
전공의들은 시뮬레이션 교육으로 집도의로서 자신감과 실력을 찾게 됐다(사진 제공: 서울대병원).
전공의들이 체감하는 시뮬레이션 교육 효과는 상당하다. 한 전공의는 "복강경 기구를 처음 만져보면 바늘을 잡는 것조차 힘들다. 바늘도 못 잡는 상태로 환자에게 다가갈 수는 없지 않나"라며 "시뮬레이터로 복강경 특유의 어색한 원근감을 미리 익히고 들어가면 수술장 어시스트의 질이 달라진다"고 말했다.
엄격한 시뮬레이션 훈련을 거쳐 처음 메스를 쥐는 순간, 전공의들은 "두려움과 벅참을 동시에 느낀다"고 했다. 충수절제술로 처음 집도에 참여한 전공의는 "교수님이 뒤에 계시지만, 혹시 내가 잘못해서 문제가 생길까 봐 덜덜 떨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 떨림은 이내 "수술의 기쁨과 보람"으로 바뀌었다.
그는 "한번 수술을 끝내면 '내 환자'에 대한 애착이 엄청나게 커진다. 식사는 잘 하는지 한 번이라도 더 보러 간다. 당직 때 밤새워 지켜본 환자가 다음 날 거짓말처럼 회복한 모습을 보면 뿌듯하다. 그 벅찬 순간으로 또 한 달을 버티며 산다"고 했다.
"외과에 정당한 대우를…자긍심 되찾고파"
장진영 교수는 외과가 정당한 대우를 받는 환경이 조속히 마련돼야 한다고 했다(사진 제공: 서울대병원).
그러나 고된 수련을 마쳐도 장래는 밝지 않다. 외과술기교육센터에서 만난 전공의들은 필수의료 지원자를 늘리기 위한 최우선 조건으로 '적절한 보상 체계'를 꼽았다. "술기를 연마하는 즐거움"과 "사람을 살리는 보람"만으로는 험난한 외과 의사의 길을 걷기 어렵다고 했다.
대학병원 교수들도 마찬가지다. 장 교수는 "응급·외상 수술을 담당하는 50대 교수가 인력을 못 뽑아 이틀에 한 번씩 당직을 서는 현실에서 사명감은 소진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 때문에 외과계는 수술 인프라 유지를 위해 교수가 병원을 지키는 '대기시간'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요청하고 있다.
장 교수는 "정당한 수가 체계란 단순히 '우리 월급을 올려달라'는 요구가 아니다. 적절한 인력을 배치해 인력 갈아넣기식 구조를 깨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 더해 교육수련 지도 과정에 대한 평가·보상 체계도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현장의 문제의식에 비해 제도 개선은 더디다.
이렇게 "여유 없는" 외과에 의료사고 법적 부담은 더 치명적이다. 밤새워 환자를 살리려 애써도 결과가 나쁘면 처벌 대상이 된다. 장 교수는 "우리 전공의들은 중환자실 집중 커리큘럼을 먼저 요구할 정도로 직업윤리가 투철하다. 하지만 그렇게 애써도 경찰서에 불려 가 죄인 취급받는 게 외과 처지다. 본인은 견뎌도 가족이 괴로워하니, 결국 진로를 바꾸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사명감에 기대 인력을 갈아 넣는 기형적인 상황이 하루빨리 끝나야 한다. 전공의 교육수련의 본질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필요하다"며 "모쪼록 서울대병원 외과술기교육센터가 한 병원의 작은 '고육지책'에 그치지 않고, 역량 중심 수련의 시금석이 됐으면 한다. 외과 의사들이 긍지를 갖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란다 "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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