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광장의 분노를 제도권으로 이끄는 이성, 국조위원장의 무거운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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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진 (대전대 법행정학부 교수, 전 대전연구원장)
정치는 감정이 아닌 이성으로 움직일 때 비로소 국민의 삶을 바꾸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 성과를 낸다. 최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청문회 과정에서 불거진 투표율 잠정 집계 오류를 목격한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이를 대하는 정치권 일각과 광장의 목소리는 냉정한 진상규명보다 '조작'과 '부정선거'라는 극단적인 단어를 앞세우며 정쟁의 불씨를 지피는 데 몰두하고 있다.
지지층의 거친 분노에 편승해 목소리를 높이고 인기를 얻는 정치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쉬운 길이다. 반면, 그 분노를 냉철하게 정제하여 제도권 안에서 실증적인 법적·행정적 해법으로 바꿔내는 정치는 외롭고 고된 길이다.
지금 윤상현 국정조사위원장이 감내하고 있는 비판 여론이 바로 후자의 길을 걷는 리더가 마주한 숙명이다.
현재 윤 위원장에게 쏟아지는 당내외의 비난은 국정조사의 본질과 전략적 접근법을 오해한 데서 비롯된다. 우리가 냉정하게 짚어야 할 사실은 선관위가 저지른 과오의 성격이다.
마감 시각 이후 시간대별 투표자 수의 통계적 오기가 발생한 것은 철저히 규명하고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단죄해야 할 선관위의 '치명적인 행정 부실'이자 전산 관리의 '무능'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계 입력 오류가 유권자가 직접 찍은 실물 투표지를 수작업으로 분류하고 심사하는 최종 득표수 자체를 고의로 조작한 '조작 범죄'로 자동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잠정 집계의 부실을 곧바로 부정선거로 단정하는 것은 징검다리 없이 강을 건너려는 명백한 논리적 비약이다.
만약 확실한 물증 없이 추정을 사실인 양 선동했다가, 추후 정밀 조사와 검증에서 고의적 조작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그 뒷감당은 누가 할 것인가. 선관위가 저지른 실제적인 무능과 행정 부실 책임마저 '음모론의 무죄'라는 면죄부로 둔갑시키는 최악의 정치적 역풍을 맞게 될 뿐이다.
윤 위원장이 치우침 없이 중심을 잡으려는 이유는 선관위를 두둔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선관위의 부실을 가장 뼈아프고 빈틈없이 타격할 수 있는 법리적 기반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한 고도의 전략적 판단이다.
의혹을 해소하고 상대를 굴복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고함이나 구호가 아니라 오직 '팩트'와 '증거'다. 광장의 목소리는 윤 위원장이 의혹을 덮으려 한다고 비난하지만, 실상은 전혀 다르다.
윤 위원장은 말뿐인 음모론과 무의미한 소모전을 종식하기 위해 가장 실증적인 해법을 추진하고 있다. 현재 올림픽공원에 보관 중인 247만여 장의 실물 투표지를 국민 앞에 투명하게 펼쳐놓고, 개표상황표와 일일이 대조하는 '공개 재검표'와 국정조사 기간 연장을 주도하고 있는 이가 바로 윤 위원장이다.
이는 감정과 의혹 제기에만 머무는 이들과 달리, 제도의 틀 안에서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검증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책임감의 발로다.
지도자의 진짜 자격은 눈앞의 지지층이 보내는 환호에 취하는 것이 아니라, 진영 전체가 빠질 수 있는 정당성의 함정을 선제적으로 차단하는 결단력에 있다. 섣부른 부정선거설로 선거 제도 전체의 정당성을 뿌리째 부정한다면, 그 결과는 고스란히 자해 행위로 돌아온다.
그 선거를 통해 정당하게 선택받은 여당 소속 자치단체장들과 국회의원들의 정치적 존재 의의와 정통성까지 스스로 무너뜨리는 모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정치는 승리할 수 없으며, 결국 보수 진영 전체를 고립시키는 공멸의 길로 이끌 뿐이다.
당내의 거친 비난과 압박 속에서도 윤 위원장이 위원장으로서 엄격한 균형을 유지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당을 '광장의 선동'과 명확히 분리하고, 대한민국을 '법치와 제도의 틀' 위에서 구출해 내야 한다는 중진 정치인의 무게감 때문이다.
헌법기관인 국회가 거리의 흥분된 목소리에 휘둘려 사법적 판단을 내리기 시작하면 의회민주주의는 실종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중의 분노를 동력 삼아 정쟁의 덩치만 키우는 선동가가 아니다.
철저한 팩트 체크를 통해 선관위의 행정 무능을 통렬히 심판하고, 무너진 선거 제도의 신뢰를 이성적으로 회복하려는 윤상현 위원장의 '책임 리더십'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파괴가 아니라 보완이며, 선동이 아니라 진실이다.
김영진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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