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우 인하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과학기술은 하나의 단어처럼 쓰인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부총리를 겸하는 구조만 보더라도 정부가 과학과 기술을 국가 발전의 핵심 축으로 삼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실제로도 우리는 오랫동안 과학기술이라는 이름 아래 두 영역을 묶어 이해해 왔다. 산업화의 길목에서 이 용어는 매우 실용적이었다. 과학은 기술을 뒷받침하고 기술은 산업을 성장시키는 선순환의 고리로 작동했다.
그러나 이 익숙한 결합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한지 냉정하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산업화 시대에 형성된 과학기술이라는 개념은 본질적으로 기술 중심적이다. 과학은 기술 발전을 위한 도구로 기능했고 국가 정책 역시 이에 맞춰 설계됐다. 그 결과 행정, 산업, 교육 전반에서 과학은 독립적인 탐구 영역이 아니라 기술을 지원하는 기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런 구조 속에서 기초과학은 언제나 후순위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흥미로운 점은 주요 선진국에서 이처럼 과학과 기술을 하나로 묶어 다루는 사례가 드물다는 사실이다. 미국은 국립과학재단이 과학정책과 연구비 지급을 담당하고 있고 일본은 문부과학성에서 과학을 담당하고 있다. 이 두 나라에서 과학기술은 없고 단지 독립된 과학만 존재한다. 기술은 에너지부나 경제산업성 등 독립된 부처에서 다룬다.
우리나라는 산업 발전의 역사적 특수성 때문에 과학기술이란 용어를 사용해 왔다. 과학은 과학대로 기술은 기술대로 각기 다른 정책과 체계 속에서 발전해야 함에도 기술에 종속된 과학 정책을 펴왔다. 선진국에서 과학을 독립적으로 취급하는 이유는 과학을 단순한 수단이 아니라 지식 창출 그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기술 중심의 사고에 머물러 있다. 특히 지난 10여 년간의 흐름을 보면 그 경향은 더욱 뚜렷해진다. 나노기술, 빅데이터, 블록체인, 메타버스, 반도체, 인공지능까지 유행하는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정부는 관련분야의 인력 양성을 명분으로 대규모 지원에 나섰다. 대학은 이에 발맞춰 관련 학과를 신설하고 새로운 첨단학과의 정원을 확대했다. 대학교의 정원은 고정돼 있어 결국 기초과학과 기초학문의 정원은 줄어들고 첨단학과의 정원은 항상 늘어났다. 그 결과 특정 분야 인력은 과잉 공급될 정도로 늘어났지만 기초과학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문제는 기술의 유행 주기가 점점 짧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3~4년만 지나도 산업의 중심 기술이 바뀌는 시대에 특정 기술에 맞춰 양성된 인력은 금세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한때 나노 학과에서 많은 인재를 교육했지만 이제 나노 학과는 폐과 수준이다. 유행 기술에 때라 그때마다 새로운 학과를 만들고 또 다른 인력을 길러내는 방식이 과연 지속 가능할까.
오히려 지금 필요한 것은 기초를 튼튼히 하는 것이다. 빠르게 변하는 기술 환경에 대응하기 위해 특정 기술에 종속된 인재가 아니라 어떤 변화에도 적응할 수 있는 탄탄한 기초를 갖춘 인재가 필요하다. 그 기초는 다름 아닌 과학 특히 기초과학에서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여전히 ‘과학기술을 지원한다’라는 말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한다.
사회 전반의 인식 또한 기술 개발 자체를 과학으로 오해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제는 분명히 변화해야 할 때이다. 과학은 기술의 하위 개념이 아니다. 과학은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인간의 이해를 확장하는 독립된 영역이다. 기술은 그 성과를 활용하는 하나의 방식일 뿐이다. 따라서 정책 역시 달라져야 한다. 과학과 기술을 무조건 묶기보다 과학을 독립적인 축으로 세우고 기초과학을 장기적으로 육성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단기적 성과에 집착하는 지원 방식에서 벗어나 시간과 실패를 견디는 연구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산업화 시대의 성공 공식을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자리는 ‘빠른 추격’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요구하는 단계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언제나 기초과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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