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의 핵심을 요약하여 표현한 인포그래픽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5월 8일 용산국제업무지구에서 "유엔 AI 허브를 용산에 유치하겠다"고 공약했다. '유엔', 'AI', '용산', '허브' 이 네 단어를 겹쳐 쌓으면 누구나 잠깐은 눈이 번쩍인다. 그러나 화려한 외피를 걷어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서울시장이 실제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의 범위, 재정 위기에 빠진 유엔 기구들이 한국에 기대하는 것의 실체, 그리고 공약에 보이지 않는 비용 부담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 공약의 실속은 간판 대비 너무 얇다.
'유치'가 아니라 '입지 경쟁 참여'에 가깝다
유엔 AI 허브는 이재명 정부가 새로 구상한 국가 사업이다. 2026년 3월 총리가 직접 제네바로 날아가 UNDP·ILO·IOM·ITU·WHO·WFP 등 6개 유엔 기구와 협력의향서(LOI)를 체결했고, 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유치위원회까지 출범시켰다.
외교·예산·국가 전략이 맞물린 중앙정부 주도 사업이다. 정원오 후보의 공약을 정확히 표현하면 "서울시장이 유치한다"가 아니라 "이미 진행 중인 국가 사업의 국내 입지를 용산으로 가져오겠다"는 수준이다. '유치'와 '입지 경쟁 참여'는 전혀 다른 말이다.
LOI의 법적 성격도 짚어야 한다. 협력의향서는 MOU보다도 구속력이 낮은 예비 문서다. 유엔 총회의 공식 의결, 참여 기구 간 합의, 호스트 국가 협약 체결이라는 핵심 단계가 모두 남아 있다. 제네바, 싱가포르, 두바이도 경쟁 중이다. 그 예비 문서를 근거로 "용산에 유엔 AI 허브를 유치하겠다"고 선거 현장에서 확정형으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과장이다.
유엔이 한국을 찾는 진짜 이유, 재정 공백의 대안
유엔은 1945년 미국 주도로 창설됐고, 유엔 정규예산의 22%, 평화유지활동(PKO) 분담금의 26.15%를 미국 혼자 감당해온 기구다. 그 미국이 2025~2026년 사이 대규모로 이탈했다.
2025년 1월 WHO 탈퇴 통보, 2월 UNHRC·UNRWA 자금 중단, 7월 UNESCO 공식 탈퇴. 2026년 1월 7일에는 유엔 산하 31개를 포함한 총 66개 국제기구 탈퇴 각서에 서명했다. 미국은 2025년 유엔 정규예산을 한 푼도 내지 않아 체납액이 약 15억 달러(약 2조 1,900억원)에 이른다. 그 결과 유엔 사무총장은 2026년 정기예산을 전년 대비 15.1%, 5억 7,700만 달러 삭감하고 인력도 대거 줄이는 내용의 개정 예산안을 총회에 제출했다.
이 맥락이 중요하다. 경향신문 등이 보도했듯, 유엔 기구들이 한국을 파트너로 택한 첫 번째 이유는 "미국 탈퇴로 인한 자원 부족이고, 한국에 재정적 대안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재정 위기에 처한 유엔 기구들이 한국을 '공여국'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뜻이다. 유치가 성공할수록 한국의 부담은 커지는 구조다.
▐ 미국 이탈 이후 유엔의 재정 현황
지표
내용
미국 정규예산 분담률
22%(상한선), PKO 26.15% — 최대 기여국
미국 체납액
약 15억 달러(약 2조 1,900억원, 2026년 초 기준)
유엔 2026년 정기예산
32억 3,800만 달러 — 전년比 15.1%(5억 7,700만 달러) 삭감
유엔이 한국을 택한 1순위 이유
"미국 탈퇴에 따른 자원 부족 — 재정 대안 확보" (경향신문, 2026.3)
승자의 저주, 비용은 얼마이고 누가 내는가
국제기구 호스트국의 비용 부담은 한국의 전례에서 가늠할 수 있다. 2009년 인천에 유치한 녹색기후기금(GCF)의 경우 초기 인프라·운영 지원으로 1,100억원 이상이 투입됐다. 1999년 서울에 유치한 국제백신연구소(IVI)는 700억원 이상이 들었다. 이들은 단일 기구다. 유엔 AI 허브는 6개 기구의 기능을 통합 운영하는 복합 플랫폼이고, 더구나 재정 위기 상태의 기구들을 포함한다.
기존 사례를 기준으로 추계하면, 초기 부지·인프라 구축에만 최소 5,000억원에서 최대 1조원 이상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고 연간 운영 지원도 수백억 원 규모가 상시 부담으로 남는다. 이 비용을 국비에서 대는지, 서울시 예산에서 내는지, 용산 개발 수익으로 충당하는지 공약은 한 줄도 설명하지 않는다.
기대효과도 냉정하게 따져야 한다. 일부에서는 "연간 100조 AX 시장이 열린다", "8,000조 글로벌 공공 조달 하이패스를 확보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8,000조원은 UN 전체 조달 시장의 총계 추산치일 뿐, 한국 기업이 실제로 얼마를 가져올 수 있는지와는 무관한 숫자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 거버넌스의 의제 설정 권한이 건물이 아니라 인사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어떤 나라가 각 기구의 핵심 포지션에 자국민을 배치하느냐가 의제를 결정한다"는 전문가들의 공통된 진단이다. 한국은 국력 대비 국제기구 고위직 경험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비용을 내고 간판을 달았지만 의제는 남이 정하는 구조, 그것이 인천 GCF의 10년이었다.
▐ 호스트국 비용 사례 및 유엔 AI 허브 추계
기구
유치 연도·장소
초기 정부 지원
국제백신연구소(IVI)
1999년 (서울)
700억원 이상
녹색기후기금(GCF)
2009년 (인천 송도)
1,100억원 이상
유엔 AI 허브(6개 기구 복합)
추진 중
추계 5,000억~1조원 이상
※ 유엔 AI 허브 초기 비용은 GCF·IVI 사례와 6개 기구 복합 운영 규모를 근거로 한 합리적 추계이며, 정부 공식 예산안은 미공개 상태다.
서울시장에게 어울리는 공약이 따로 있다
용산국제업무지구를 살려야 한다는 방향성 자체에는 이견이 없다. 15년 넘게 방치된 45만㎡의 땅을 글로벌 산업 거점으로 바꾸는 것은 누가 당선되더라도 반드시 풀어야 할 과제다. 그러나 그 해법이 국제기구 간판을 먼저 내걸고 내용을 나중에 채우는 방식이어서는 안 된다.
서울시장이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분명히 있다. 용산 부지의 용도지정과 인허가, 도시계획 설계, 민간 기업과의 입주 협약, 교통·주거 등 생활 인프라 구축이 그것이다. 그 권한 안에서 AI 기업 집적지를 만들고, 글로벌 스타트업이 정착할 수 있는 규제 특례와 세제 환경을 설계하는 것이 서울시장 공약의 본령이다. 이 작업은 유엔 간판 없이도 할 수 있고, 오히려 더 빠르고 확실하게 성과를 낼 수 있다.
유엔의 이름값을 빌리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 이름값을 뒷받침할 돈과 외교 역량이 실제로 어디서 오는지를 묻기 시작하면, "용산이 AI 규칙을 만드는 곳이 될 것"이라는 선언은 선거의 언어로는 감동적이어도 정책의 언어로는 아직 멀다.
서울 시민이 바라는 것은 거창한 간판이 아니다. 임기 4년 안에 실제로 더 안전하고 쾌적한 도시환경, 기업이 들어오고, 일자리가 생기고, 그 땅에 불이 켜지는 것이다. 서울시장 후보라면 그 현실적인 로드맵을 먼저 내놓아야 한다.
본인과 캠프 핵심들은 서울 아파트에 살면서 전세난은 빌라·오피스텔·생활형 숙박 시설 등으로
주택 하향평준화
하여 해결한다는, 누구나 쉽게생각 할 수는 있지만 서울 시민이 바라는 비전은 아닌 것처럼, 정원오 후보는 공약에 좀더 많은 진정성과 연구가 필요해 보인다.
칼럼니스트 박대석
박대석 칼럼니스트
참고자료
이데일리·파이낸셜뉴스·뉴스핌 "정원오 용산 유엔 AI 허브 유치 공약" (2026.5.8)
아주경제 "정부, UN AI 허브 유치 추진" (2026.3.10)
경향신문 박태웅 "유엔 AI 허브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2026.3.22)
한국대학신문 사설 "UN AI 허브 유치, 7부능선 넘었다" (2026.4.3)
동방일보 "유엔 대규모 구조조정" (2025.10) / 더나은미래 "트럼프, 66개 국제기구서 발 뺀다" (2026.1.12)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미국의 유네스코 탈퇴 선언" (2025.7) / CFR "Funding the United Nations" (cfr.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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