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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공식 밖의 여자들 ②'전진소녀' 이아진] 소녀 목수의 꿈은?

굉음과 흙먼지가 난무하는 거친 공사판에서, 8㎏짜리 툴 벨트를 매고 20㎏이 넘는 합판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목수가 있다. 열여덟 살에 현장에 뛰어든 ‘빌더’ 이아진이다.

[공식 밖의 여자들 ②'전진소녀' 이아진] 소녀 목수의 꿈은?

굉음과 흙먼지가 난무하는 거친 공사판에서, 8㎏짜리 툴 벨트를 매고 20㎏이 넘는 합판을 번쩍번쩍 들어올리는 목수가 있다. 열여덟 살에 현장에 뛰어든 ‘빌더’ 이아진이다. 앳된 얼굴과 상반되는 능숙한 폼으로 쾅쾅 못을 박고, 세단을 끌듯 매끄럽게 굴삭기를 운전하는 스물다섯 그녀는 암묵적으로 정해놓은 인생의 루트와 직업적 편견에도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꿈을 향해 놀라울 정도로 ‘전진’하는 그녀를 만났다.

한국에서 태어난 여자들이 ‘감히’ 공식을 벗어나면 어떻게 될까? 놀랍게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들이 공식을 벗어나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반대로 엄청난 변화가 시작된다. 전통적인 ‘젠더 롤(gender role)’에서 벗어나 새로운 ‘롤 모델(role model)’이 된 여자들, 리스크를 무기처럼 쥐고 맹렬히 전진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목수 막내였던 아버지를 따라 처음 현장에 나간 날, 허허벌판 위에 그어진 한 줄의 선으로부터 집이 시작되는 과정을 보며 이아진은 이 일에 완전히 매료됐다. 맨땅이 집이 되는 장면이 신기했고, 흘린 땀만큼 결과가 눈에 보이는 이 일이 좋았다고. ‘하루만 더’, ‘하루만 더’ 하던 시간이 쌓여 어느덧 8년. 무급으로 현장을 뛰던 ‘깍두기’는 이제 일당 20만원을 받는 어엿한 고참이 됐고, 아버지는 동료가 됐다.

이아진은 인테리어·가구·형틀 등으로 세분화된 목수의 세계에서 시공의 전 과정을 책임지는 ‘빌더 목수’다. 도면을 해석하고 자재를 산출해 뼈대를 세우고 마감까지 맡는다. 그야말로 집의 시작과 끝을 모두 책임지는 기술자다.

12년의 교육 과정을 거쳐 치열한 입시를 통과하고, 근사한 대학에 들어가 맥 풀린 듯 놀다가, 다시 도살장에 끌려가듯 취업시장으로 향하는 익숙한 경로. 그 궤도에서 벗어나면 쉽게 이방인으로 분류되는 사회에서, 그는 기꺼이 몇 번의 이탈을 감행했다. 명확한 꿈 없이 남을 따라가는 삶이야말로 실패보다 더 이상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몸으로 부딪히며 하고 싶은 일들을 다 해본 그는, 분명한 목표를 세운 뒤 다시 학교로 돌아갔다. 현장에서 배운 ‘건설’을 바탕으로 지금은 공간과 사람을 잇는 ‘건축’을 공부하는 건축학도가 됐다. 어떻게 짓는지를 넘어 왜 짓는지를 고민하며, 스스로 질문하고 사유하는 목수이자 건축가로 나아가는 중이다.

열네 살에 호주로 유학을 떠나 열여덟 살에 자퇴를 결심했죠. 한국으로 돌아온 이유가 궁금해요.

고등학교 졸업이 가까워질수록 회의감과 압박감이 커졌어요. 어떤 대학에 가야 할지, 무엇을 전공해야 할지 고민은 많았지만 확신이 없었죠. 미술을 공부했기 때문에 관련 학과를 준비하긴 했지만,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주변에서는 일단 좋은 대학에 들어가라고 하는데 방향 없이 진학하는 건 맞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1년 정도 고민한 끝에 한국으로 돌아가 직접 사회를 경험해보기로 결심했어요.

한국은 유독 ‘틀’이 강한 사회잖아요. 그 틀을 벗어난 채 돌아오는 게 두렵진 않았나요?

어려서 오히려 두렵지 않았던 것 같아요. 부모님도 하고 싶은 게 생기거나 궁금한 게 있으면 일단 해보라고 지지해주셨거든요. 뭐든 도전해보는 게 저한텐 당연한 일이었죠. 물론 자퇴는 저에게도 큰 결정이었어요. 다만 이 상태로 대학에 가면 결국 다시 자퇴할 것 같았어요. 성인이 된 뒤에 방황하는 것보다 지금 의문이 생겼을 때 답을 찾아보는 게 낫겠다 싶었죠.

보통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로 나가는데, 반대로 사회를 먼저 경험한 뒤 대학 생활을 한 거네요.

학교에서 내내 ‘이 길이 맞나’ 고민하기보다 사회를 경험하며 내가 무엇에 흥미를 느끼는지 먼저 확인해보는 게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요? 목표를 세운 뒤 학교에 가니까 훨씬 능동적으로 배울 수 있게 됐죠. 질문도 거침없이 하고, 교수님들과도 더 많이 소통하고요. 그래서 제가 가져갈 수 있는 것도 많아졌다고 느껴요. 방향성이 분명하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저도 그게 제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학교랑 현장은 어떻게 다른가요?

현장에서는 말 그대로 ‘건설’을 배웠어요. 어떻게 시공하고 공정을 맞출지, 실무적으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일이 중요했죠. 반면 대학에서는 설계보다는 건축을 통해 세상을 관찰하는 법을 배워요. 사회에 어떤 공간이 필요한지, 건축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어떤 사회적 이슈를 풀 수 있을지 등등이요.

# ‘노가다’ 아니고 기술직

한계와 편견 속에서 ‘프라이드’를 되찾는 힘

집을 짓는 일만큼 성취감이 분명한 직업이 또 있을까. 이아진은 지금까지 스무 채가 넘는 집을 자신의 손으로 직접 완공했다. 어렵거나 잘 풀리지 않는 부분이 있으면 새벽이라도 다시 현장으로 나갔고, 무거운 자재를 들기 위해 꾸준히 체력과 근력을 길렀으며,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며 전문성도 쌓았다. 이 일을 사랑하는 만큼, 그만한 노력을 기울였다.

다만 사회는 아직까지도 그를 종종 ‘어린 여자애’로 바라본다. 그가 현장에서 익숙해져야 했던 것은 툴을 다루는 법이나 공정만이 아니었다. “아가씨가 여기서 뭘 해”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넘기는 법도 함께 배워야 했다. 엄연한 기술직을 ‘막노동’이나 ‘노가다’로 폄하하는 시선도 여전하다. 그러나 그는 이제 그런 말에 일일이 반응하지 않는다. 대신 명랑하게 그리고 맹렬하게 앞만 보고 걸어간다.

최근 블루칼라 직종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것 같아요. 고소득이라는 장점도 있고요.

사실은 맞죠. 굉장히 정직한 일이잖아요. 배운 기술을 내가 몸으로 구현해내면 그에 맞는 보수를 받는 거니까요. 예전에는 현장에 젊은 사람이 거의 없었어요. 여자는 더더욱요. 그런데 요즘은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의 경계가 예전만큼 뚜렷하지 않아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해요. 직업을 위계로 나누기보다 선택의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는 거니까요.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편견이나 한계를 느낀 순간은 없었나요?

“아가씨가 뭘 제대로 하겠어”, “어린데 오래 하겠어?” 같은 말을 자주 들었죠. 처음에는 일일이 설명하려고 했어요. “저 정말 진심이고, 제대로 할 거라고요.” 그런데 그냥 말로 설득하기보다 어디까지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게 낫겠더라고요. 시간이 쌓이면 제가 걸어온 길이 보일 테고, 그게 제 노력을 증명해줄 거라고 믿었어요.

그런 현장에서 어떻게 적응하고자 노력했나요?

같이 일하는 분들이 대부분 아버지뻘이세요. 눈동냥, 귀동냥을 정말 많이 했죠. 눈치 보는 법도 자연스럽게 배웠고요. 모르면 솔직하게 알려달라고 했어요. 배운 건 다 기억해뒀다가 밤에 혼자 가서 플래시를 켜고 계산해보고, 사수들이 한 작업과 제 작업을 비교해보기도 하고요. 그러다 보니 “아유 쪼그만 게 뭘 할 수 있겠어”에서 “아진이가 미리 준비 좀 해줘”라는 말을 듣게 됐죠(웃음).

SNS와 방송 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콘텐츠 때문에 한다’는 오해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그게 제일 속상했어요. 저는 꿈을 향해 가는 과정을 기록한 건데, 그걸 통째로 부정하는 말처럼 느껴졌거든요. 사람을 허무하게 만들잖아요. 계속 증명하려다 보니 어느 순간 제 목표보다 타인의 반응을 더 신경 쓰고 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즐거워야 할 일이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고요. 그래서 관심 껐어요.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 때문에 제 에너지를 쓰지 말자고요.

여전히 기술직을 폄하하는 시선이 많잖아요. 직업에 대한 자부심은 어떻게 지키나요?

가장 먼저 복장을 바꿨어요. 처음에는 추리닝에 밀짚모자, 등산화를 신고 일했거든요. 그런데 미디어를 통해 직업이 소비되다 보니 ‘노가다’라는 말로 가볍게 치부되는 경우가 많았어요. 해외 목수들은 굉장히 프로페셔널하게 일하거든요. 각자의 장비가 있고, 안전화와 보호구를 포함해 제대로 갖춰 입죠. 그 모습을 보면서 나부터 스스로를 존중하며 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보여주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그렇게 갖춰 입으면 제 태도가 바뀌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의사가 가운을 입고, 요리사가 셰프복을 입듯이 현장에서는 준비된 기술자로 서고 싶었어요.

이 일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순간은 언제인지 궁금해요.

집이 완성됐을 때죠. 공사 중에는 늘 긴장 상태에 있어요. 실수하면 안 되니까 압박도 크고요. 작업할 때는 긴장이 많이 돼서 밥도 잘 안 들어가요(웃음). 모든 공정이 끝나고 건축주가 집을 보고 좋아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제야 뿌듯함이 밀려와요. 공사 중에 현장에서 마주칠 때도 기대하는 눈빛을 보면 더 잘하고 싶어지고요.

# 사람의 공간, 사람의 건축

그가 이토록 맹목적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2020년 <인간극장>에서 아버지와 함께 집을 짓는 ‘소녀 목수’로 처음 얼굴을 알린 이아진. 20대 초에만 에세이 <아이엠>과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두 권을 펴냈고, SNS를 통해 자신의 작업과 생각을 꾸준히 기록해오고 있다. 현재는 구독자 15만 명을 보유한 유튜브 채널 ‘전진소녀의 성장일기’를 운영하며,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물론 건축을 콘텐츠화해 쉽고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이렇게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이유에는 자신처럼 통상적인 궤도에서 벗어난 이들이 용기를 얻었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동시에 스스로를 위해서이기도 하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더는 어떤 직업도 영원하리라 장담할 수 없는 세상, 건축 역시 예외는 아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렇게 확신한다. 집은 결국 사람이 사는 공간이고, 그런 공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집을 짓는 일 역시 오래토록 사람의 몫일 거라고.

처음 현장에 나갔을 때와 지금을 비교하면 어떤 점이 가장 달라졌나요?

제 태도요. 처음에는 그냥 집이 어떻게 지어지는지 보는 것만으로도 배운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공정 전체가 보이더라고요. 이 작업이 끝나야 다음 작업이 들어가고, 이걸 먼저 해야 일정이 밀리지 않는다는 계산이 생겼죠. 자재 산출이나 부재 측정도 직접 해보면서 책임감도 커졌고요.

최근 미국 대학원 진학을 고민 중이라고 들었어요. 목수이자 건축가로서의 목표는 뭔가요?

요즘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예요(웃음). 그래도 건축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인재들이 모이는 무대가 미국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이왕 도전한다면 그런 곳에서 공부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제 최종 목표는 ‘건축 어벤저스 팀’을 만드는 거예요. 건축가뿐 아니라 각자의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사람들을 모아서 여행하듯 건축 프로젝트를 하는 거죠. 손길이 필요한 학교나 집, 더 나아가 마을까지 만들어보고 싶어요. 제 인생의 최종 종착지예요.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큰 무기는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감정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요즘은 AI가 설계도 해내는 시대잖아요. 데이터 기반으로 더 효율적인 설계안이 나올 수도 있겠죠. 그래도 건축가가 필요한 이유는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감정으로 해석해 공간으로 풀어내는 일이라고 믿어요. 저는 제 감정을 숨기지 않고 표현하는 데 두려움이 없어요. 그 습관이 건축에서도 강점이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을 할 때 가장 ‘나답다’고 느끼나요.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건축을 할 때예요. 가장 외롭지 않은 순간도 그때고요. 물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죠. 그래도 그 시간이 결과물로 남고, 실제 공간이 되어 누군가에게 쓰인다고 생각하면 내가 보낸 시간이 헛되지 않았구나 싶어요. 부족한 점은 많지만 그 순간만큼은 제가 가장 저답고, 가장 빛난다고 느끼죠.

마지막으로, 도전을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요?

우리는 생각보다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아요. 주변의 시선이나 말이 두려워서 주춤하죠. 저도 그랬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나는 지금 누구의 허락을 기다리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 괜찮다고 말해줘야 시작할 건가 싶더라고요. 도전하는 데 허락은 필요 없잖아요. 해보고 싶은 게 있다면, 그냥 해보는 게 맞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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