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청년일보 】 일본 벤처 산업의 상징적 인물이자 '벤처의 어머니'로 불리는 곤노 유리(今野由梨) 다이얼서비스 회장이 지난달 27일 경기 파주시 창업캠퍼스를 찾아 청년 창업가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진행했다.
90세를 바라보는 나이에도 현역으로 활동 중인 곤노 회장은 57년의 경험을 응축한 메시지로 강연 참석자들을 매료시켰다. 이날 강연에는 예비 창업가와 초기 스타트업 관계자 등 100여 명이 참석해 기업가의 통찰을 경청했다.
그는 "세상이 나를 거부한다면, 내가 세상을 위해 필요한 일을 직접 만들면 된다"고 강조하며 기업가 정신의 출발점을 '문제 해결'에 뒀다.
◆ 차별에서 출발한 창업…"길이 없으면 만든다"
곤노 회장의 창업 여정은 일본 경제 성장기 속에서 소외된 개인의 도전으로 시작됐다.
1936년생인 그가 대학을 졸업할 당시,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은 견고했다. 10여 개 기업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채용을 거절당한 경험은 기존 조직에 안주하는 대신 새로운 시장을 직접 만드는 계기가 됐다.
그는 1969년 민간 정보 서비스 기업 '다이얼서비스'를 설립하며 비즈니스라는 거친 들판에 뛰어들었다. 당시 일본에서 여성 창업은 전례를 찾기 힘든 모험이었지만, 그는 "아무도 가지 않은 험난한 덤불 속에 누군가는 먼저 발자국을 남겨 '짐승길'이라도 내야 뒷사람이 걷기 편해진다"는 독보적인 '짐승길(けもの道)' 철학으로 시장을 개척했다.
이러한 철학은 사업 모델에도 고스란히 투영됐다. 1971년 선보인 육아 상담 서비스 '아기 110번'과 이후 도입한 성희롱 상담 핫라인 등은 당시 제도권과 기성 기업들이 포착하지 못했던 사회적 결핍을 비즈니스로 연결한 선구적 사례다. 이는 오늘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소셜 벤처의 초기 모델로 평가받는다.
◆ 파주시 창업캠퍼스, '글로벌 전제'로 설계된 혁신 고속도로
곤노 회장이 이번 방문에서 특히 주목한 지점은 파주시 창업캠퍼스의 고도화된 운영 체계다. 단순한 공간 지원을 넘어, 창업 초기부터 해외 시장 진출을 강제하는 '본 글로벌(Born Global)' 전략이 기관의 DNA에 내재화되어 있다는 분석이다.
현장에서 확인된 파주 창업캠퍼스의 핵심 경쟁력은 구체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에 기반한다.
먼저, 입주 기업들은 중국 최고 명문인 베이징대의 전문 커리큘럼을 통해 현지 시장의 규제 샌드박스, 투자 환경, 소비자 메커니즘을 실전 위주로 학습한다.
또한, 샤오미 레이쥔 회장이 직접 투자한 '광구창업카페' 모델을 이식, 투자와 제조 및 유통이 결합된 현지 창업 인프라와 즉각적으로 연결되는 통로를 확보했다.
아울러 해외 현지 사정에 능통한 전문가들이 일대일로 밀착하여 창업 전략부터 실제 수출 경로 확보까지 전 과정을 지원한다.
여기에 입주 기업 간 자발적 협업을 유도하는 오픈형 네트워킹 공간과 졸업 후에도 이어지는 체계적인 사후관리 프로그램은 파주를 동북아 창업의 핵심 거점으로 만드는 동력이 되고 있다.
◆ "성장의 본질은 나눔"…'고구마 7개'와 마포대교가 남긴 유산
강연에서 청중들의 가장 큰 공감을 이끌어낸 대목은 곤노 회장의 개인적 경험에서 우러나온 '나눔과 생명'의 철학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 전후 식량난 속에서 고구마를 서리하다 들킨 뒤, 주인 아저씨가 오히려 도망간 친구들의 몫까지 포함해 고구마 7개를 손에 쥐여주었던 일화를 소개했다.
곤노 회장은 "그때의 따뜻한 나눔이 평생의 경영 가치관을 형성했다"며 기업의 목적은 이윤을 넘어선 '상생'에 있음을 강조했다.
또한 강연 전날 방문한 마포대교에서의 소회도 전했다. 그는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그 장소에서 역설적으로 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보았다"며 창업이 궁극적으로 사람을 구하고 사회에 공헌하는 방향으로 정렬되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 "이미 길은 열렸다…준비된 인프라 위에서 질주하라"
곤노 회장은 파주시 창업캠퍼스의 인프라를 둘러본 뒤 "이미 세계로 나갈 수 있는 훌륭한 고속도로가 닦여 있다"며 파주 창업 생태계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이는 90세 현역 기업가가 파주의 체계적인 글로벌 네트워크와 실행 기반을 직접 확인한 뒤 내린 긍정적 진단이다.
곤노 회장이 강조한 '짐승길'의 개척 정신은 파주시 창업캠퍼스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혁신과 상생'의 비전과 궤를 같이한다. 파주시 창업캠퍼스는 베이징대와 샤오미 등 글로벌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국내 스타트업의 해외 진출을 지속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먼저 걷는 이의 발자국이 결국 길이 된다'는 곤노 회장의 메시지처럼, 파주가 마련한 혁신의 토대 위에서 대한민국 청년 기업가들이 세계 무대를 향해 어떤 발자취를 남길지 귀추가 주목된다.
【 청년일보=조성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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