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애 중앙SUNDAY 편집국장
생성형 AI에 두루 물었다. “서구 민주주의 국가에서 같은 시기 대법관, 또는 헌법재판소가 있는 나라의 경우 대법관·헌법재판관(헌법재판관·대법관)으로 부부가 동시 재직한 사례가 있나.”
능청스럽게 이름을 댄 AI도 있었지만 결국 “오류였다”고 실토했다. 이들의 답변을 종합하면 “공식적인 사례를 찾지 못했다”였다. 실제 미국엔 없었다. 영국도 그러하다. 대법원·헌법재판소가 있는 독일도 그리 보였다.
새 대법관 두고 법원·청와대 갈등
부부 동시 '최고법관' 전례 없어
제3의 카드로 타협하는 게 어떤가
상식적이다. ‘정신적·육체적·경제적으로 결합된 생활·경제 공동체’(대법원 판례)인 부부가 극소수의 최고 의사결정 합의체에 동시에 일원이 된다는 게 적절하다고 보기 어려워서다. 필연적으로 이해충돌과 편향성 문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공정할 뿐만 아니라 공정해 보여야 한다’는 법언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다양성·형평성 문제도 있다. 수 명 또는 수십 명에 불과한 최고 법관의 인선은 정치·이념·파벌 등을 고려한 고도의 정치 행위다. 그걸 한 부부에게 몰아준다? 현명하지 않다.
이 어려운 일이, 현재 대법관 인선 난의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다. 다들 알다시피 대법관은 대법원장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현실에선 3자 특히 대통령·대법원장이 물밑에서 조율한다. 둘의 의견이 일치하면 일사천리인데 아니면 갈등한다. 진보 성향의 이용훈 대법원장이 “(이명박) 청와대에서 요구하는 카드를 그대로 받는다는 건 대법원장의 제청권, 나아가 사법권 독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대법원, 이의 있습니다』)며 반발했던 일이 있다.
지금도 데드록 상태다. 지난달 3일 퇴임한 노태악 대법관의 후임 제청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후보 자체는 1월 21일 추려졌다. 김민기(사법연수원 26기, 여)·박순영(25기, 여)·손봉기(22기)·윤성식(24기) 판사다. 이 과정을 잘 아는 법조인은 이런 배경을 전했다.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1월 2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2026년 신년인사회에 참석해 조희대 대법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대법원장이 생각한 사람이 있었다. 청와대에선 안 된다는 취지로 반응했다. 대신 ‘여성인 김 판사, 아니면 박 판사까지 수용하겠다’고 했다. 대법원장이 받아들이지 않았다. 청와대에선 임명 거부로 갈 수밖에 없다고 했다. 대법원장이 박 판사 쪽으로 움직였으나 청와대가 ‘김 판사로 해야 한다’고 했다. 받아라, 못 받겠다 그러길 한 달 반이다.”
논란을 키운 건 김 판사의 남편이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란 점이다. 둘 다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공교롭게 이재명 대통령이 지금껏 임명한 헌법재판관(소장 포함)이 2명인데 한 명이 오 재판관이고, 최초로 임명하고 싶어 하는 대법관이 김 판사다. 부부 모두 아무리 능력 있다 한들 과하다. 더군다나 사실상 ‘4심제’가 된 마당 아닌가. 대법원·헌재에 부부를 둔다? 부인이 한 판결을 남편이 보면 문제고, 그걸 이유로 기피하면 동료 재판관들에게 민폐다. 만일 판결이 다시 대법원으로 돌아온다면?
이용훈 대법원장 시절을 다시 거론하는 게 좋겠다. 말 그대로 ‘난형난제(難兄難弟)’로 불린 엘리트 판사 이상훈·이광범의 얘기다. 둘 다 대법관감이라고 했다. 당시 대법원장 비서실장이 이광범 판사에게 사직을 권했다고 한다. “형제가 법원에 함께 있으면 이상훈이 대법관 되기 어렵다. 형을 위해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 아우가 사의를 밝힌 지 보름여 만에 형은 대법관 후보로 제청됐다.
이런 ‘상식’이 이번엔 작동하지 않았다. 같은 법조인이 이렇게 설명했다. “법원 내에서 우리법연구회나 국제인권법연구회는 별다른 활동을 안 한다. 최근 활동력이 센 곳은 ‘현대사회와 성범죄 연구회'(현성연)다. 거기서 김 판사를 1순위로 올린 것으로 안다.”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 대법원장도, 청와대도 한 발씩 물러나야 한다. 청와대는 특히 풀을 넓힐 필요가 있다. 인선한(할) 최고 법관 3명 중 2명이 부부라니. 참고로 이명박 청와대와 이용훈 대법원장은 ‘제3의 카드’로 타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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