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의 재해석…장르의 벽 허문 ‘실험적 글쓰기의 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 캐나다 출신 앤 카슨
시·소설·에세이 넘나든 독창적 문학
고대 그리스 신화 현대적 감각 구현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 등 판매 급증
2026년 10월 11일(일) 19:50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캐나다 출신의 앤 카슨은 경계를 초월한 글쓰기를 해온 작가이자 고전학자, 번역가이다.
소설, 시, 에세이, 비평, 번역, 논문 등 다양한 영역의 글쓰기를 해온 것에서 보듯 카슨은 한 장르의 작가로 규정되지 않는다. 시인이자 작가이며 에세이스트, 번역가, 학자라는 정체성은 전통적인 창작을 해온 작가와는 결이 다른 글을 써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평론가들이 그를 일컬어 ‘실험적 글쓰기의 대가’라고 명명하는 것은 그와 같은 학문의 여정, 글쓰기 이력과 무관치 않다. 지난 2001년 여성 최초 T. S. 엘리엇 상을 수상했으며 2012년 노벨문학상 후보에도 올랐다.
한림원은 이번 노벨상 선정에 대해 “평생 시를 쓰고 번역 작업을 하며 여러 대학에서 강의해왔다”며 “카슨의 문학은 어휘에 대한 문헌학자의 관심과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자 하는 시인의 욕망이 교차하는 지점에 초점을 맞춰왔다”고 언급했다.
한림원의 선정은 한마디로 카슨이 고전을 재해석하고 변주하는 데 있어 독창적이며 탁월한 감성과 역량을 갖춘 작가라는 의미이다.
캐나다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것은 지난 2013년 앨리스 먼로 이후 13년 만이며, 역대 19번째 여성 수상자다.
지난 1950년 온타리오주 토론토에서 태어난 카슨은 대학에서 그리스어를 전공했다. 고교 시절 접한 그리스 고전은 그의 운명을 바꾼 계기가 된다. 기원전 6세기경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그리스의 여성 시인 사포는 카슨의 문학 여정에 강력한 자극을 주었다.
이후 카슨은 토론토대에서 고전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대학 생활은 순탄치 않아 두 차례 대학을 그만두는 곡절도 겪는다. 1981년 고전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이후 논문은 첫 번째 저서 ‘에로스, 달콤씁쓸한’으로 결실을 맺는다.
인간의 사랑과 욕망 등 원초적인 감정을 고대 그리스 문학을 토대로 탐색한 작품이다. 카슨이 고전학자를 넘어 고전과 현대를 자신만의 관점과 글쓰기를 통해 이를 구현하는 작가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2023년 10월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 해변의 자택 앞의 앤 카슨. /연합뉴스
카슨은 이후 맥길대, 에모리대, 프린스턴대, 미시간대, 뉴욕대 등 캐나다와 미국의 대학에서 고전을 가르쳤다. 고전에서 받은 영감은 고스란히 독창적인 글로 전이됐다.
그는 “삶에서 가장 두려운 것이 지루함이고 지루함을 피하는 것이 인생의 과업”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양한 장르의 예술가들과의 작업을 통해 문학의 지평을 넓혀왔는데, 이는 책상머리에서 작품만을 쓰는 일반적인 작가와는 다른 모습이다.
언급한 대로 카슨 작품에 투영된 실험성은 소설, 시, 학문, 비평, 에세이, 문헌 등 다양한 영역을 가로지르는 글쓰기에서 비롯됐다. 1998년 펴낸 ‘빨강의 자서전’은 그의 독창성이 유감없이 발휘된 작품이다.
작품의 도입은 고대 그리스 최초 서정시인 스테시코로스와 그의 작품 ‘게리오네이스’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카슨은 많은 부분이 유실된 부분을 소설로 재구성했는데 ‘시로 된 소설’이라는 부제는 그 같은 저간의 사정에서 붙여졌다.
신화의 헤라클레스는 아내와 아들을 죽인 죄로 인해 12번의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열 번째 미션은 빨강 섬에 사는 빨강 괴물 게리온을 죽인 뒤 그의 빨강 소떼를 훔쳐오는 일이다. 카슨은 영웅담을 ‘피해자’ 게리온의 관점에서 다시 쓴다. 작품 속 게리온은 빨강 날개를 달고 태어난 소년으로 그려진다. 소년은 ‘내적인 면’이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어느 날 운명처럼 헤라클레스를 만난다.
이밖에 대표작으로 ‘휴식시간의 남자들’, ‘녹스’, ‘남편의 아름다움’, ‘레드 닥’ 등을 펴냈다.
한편 노벨상 발표 이후 앤 카슨의 책들이 인기를 끌고 있다. 11일 교보문고에 따르면 8일 오후 8시부터 11일 오전 9시까지 도서 판매량은 수상자 발표 전 평균 판매량보다 약 204배 늘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은 대표작 ‘빨강의 자서전’이다.
/박성천 기자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