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유럽·일본이 유가발 공급 충격에 일제히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긴축의 부담은 투자보다 소비에 먼저 집중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한국은 반도체 수출과 설비투자가 경기 하단을 지지하겠지만 고유가와 고금리 탓에 소비 회복은 더딜 것으로 전망됐다.
25일 신한투자증권이 발간한 '주요국 긴축 강화, 충격은 차별적'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국 중앙은행들은 10월에는 추가 인상보다 기존 긴축 효과를 확인하는 관망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
중동의 지정학적 긴장과 원유 공급 우려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선 가운데 미국 연방준비제도와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은 9월 각각 기준금리를 0.25%포인트(p) 인상했다. 영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3.75%로 동결했지만 인상 의견을 낸 위원은 종전 2명에서 3명으로 늘었다.
미 연준의 정책금리는 연 3.75~4.00%, 유럽중앙은행은 2.50%가 됐다. 일본은행도 금리를 1.25%로 올리면서 199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신한투자증권
◆ AI 투자는 버티고 소비는 위축
보고서는 고금리에도 주요국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지 않는 배경으로 인공지능 관련 투자를 꼽았다. 반도체 등 부품에 집중됐던 AI 투자가 데이터센터 건설과 전력·냉각 설비 등 전통 산업으로 확산하면서 기업 투자를 떠받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가계는 고유가와 고금리, 둔화한 고용의 영향을 동시에 받고 있다. 대규모 해고와 같은 경기 급락 신호는 아직 뚜렷하지 않지만 임금 상승률이 물가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면서 소비심리와 실질 구매력이 약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통화정책의 관건은 국제유가 상승이 서비스 가격과 임금으로 번지는 '2차 파급' 여부다. 유가 충격이 제한적일 경우 연준과 유럽중앙은행 등은 10월 추가 인상을 미루고 경제지표를 확인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국가별 충격도 차별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유럽은 제조업 회복에도 겨울철 가스 재고 부족이 부담이고, 일본은 전기·가스 보조금 종료와 엔화 약세가 소비를 제약할 수 있다. 중국은 첨단 제조업과 수출이 선전하고 있지만 부동산 투자와 내수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90%에 가까운 인도는 고유가가 무역수지와 물가를 동시에 압박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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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반도체·설비투자가 방어
한국 경제에서는 수출과 소비의 온도 차가 뚜렷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8월 수출은 전년 동월보다 68.7% 증가해 3개월 연속 900억달러를 웃돌았다. 반도체와 컴퓨터 등 AI 관련 품목에 더해 철강과 기계 수출도 개선됐다.
7월 설비투자는 전월보다 7.5% 늘었지만 소매판매는 2.4% 감소했다. 반도체 수출과 기업 투자가 경기 회복을 이끄는 동안 가계 소비는 금리와 유가 부담에 눌린 모습이다.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시장 전망치는 3.4%까지 높아졌지만 민간소비 증가율 전망치는 2.1%로 소폭 낮아졌다.
신한투자증권은 한국은행이 직전 두 차례 연속 금리를 올린 만큼 10월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기준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수출 호조로 성장세는 유지되고 있지만 소비에서 비롯된 물가 압력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아 추가 인상을 서두를 필요가 낮다는 판단이다.
원·달러 환율은 최근 상승분을 되돌리며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대규모 무역수지 흑자와 수출기업의 달러 매도가 원화 강세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국민연금의 환헤지 축소와 배럴당 100달러를 웃도는 유가는 원화 강세 폭을 제한하는 요인으로 꼽혔다.
신한투자증권은 "추가적인 지정학적 충격이 발생하지 않는다면 주요국 통화정책은 기존 긴축 효과를 점검하는 관망 구간에 들어설 것"이라며 "금리 인상 부담은 투자보다 소비에 집중될 전망"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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