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부동산 몰리는 ‘빚투 현상’
자산없는 청년층 상대적 박탈감
정부, 위기앞 대응 근본적이어야
‘신뢰 회복’ 담대한 구조개혁 절실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토머스 홉스는 저서 ‘리바이어던’에서 자연 상태의 인간 삶을 ‘고독하고 가난하고 더럽고 잔인하며 짧다’라고 표현했다. 실제로 인류가 ‘빈곤의 덫’에서 벗어나 물질적 풍요를 누린 것은 약 300만년에 달하는 거대한 여정 중 단 200년에 불과하다. 그 풍요는 산업혁명 이후 시작된 자본주의의 전력 질주가 가져온 산물이었다.
그러나 21세기 들어 인류는 ‘저성장과 불평등 확대’라는 거대한 수수께끼에 직면했다. 한편에서는 매일 먹지도 쓰지도 않은 수십억 톤의 음식과 물건을 버릴 만큼 풍요를 누리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하루 2.15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절대 빈곤 인구가 8억명에 달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오랫동안 주류 경제학계에서 불평등은 개인의 노력이나 리스크 감수에 따른 정당한 대가로 치부되거나, 거론하기 부담스러운 ‘방 안의 코끼리’로 여겨졌다. 하지만 오늘날의 불평등은 경제 성장을 저해하고 사회 통합을 위협하는 구조적 위기로 떠올랐다.
한국 역시 이번 여름의 기록적인 폭염처럼 불평등의 고통을 체감하고 있다. 폭염이 기후 위기의 경고음이듯, 분배 지표의 악화는 사회 통합의 경고음이다. 최근 발표된 ‘가계금융복지조사’에 따르면 소득 5분위 배율과 지니계수가 모두 상승하며 소득 격차가 다시 확대되는 양상을 보였다. 여당이 대통령 직속 불평등위원회 설치 및 특별법 발의를 추진하는 배경도 여기에 있다. 불평등 완화 정책을 범정부 차원에서 총괄·조정하고 5년 단위의 기본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구상은 부처 간 장벽을 허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그러나 소득 격차 뒤에 숨은 더 근본적인 모순인 자산 불평등과 소유자 프리미엄(rentier premium)을 직시해야 한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스티글리츠가 지적했듯, 최근 수십 년간 국가 전체의 부는 소득보다 빠르게 늘었으나 실물경제에 이바지하는 생산적 자본이 늘어난 것은 아니다. 지대 추구와 독점 이윤, 토지 및 자산 가치 상승으로 인한 ‘부의 잔여물(wealth residual)’이 급증하면서 자산 소유자와 비소유자 간의 격차는 복리 구조를 타고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억만장자 투자자 워런 버핏이 “비서보다 내 세율이 낮다”라며 부유층 증세를 주장한 것은, 이타심 때문이 아니라 자산 불평등을 방치할 경우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가 무너질 수 있다는 엄중한 경고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가 마주하는 현실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 기업의 역대급 실적과 주가 급등은 반가운 소식이지만, 그 그늘에서는 ‘돈이 돈을 버는’ 자산 격차가 가속화되고 있다. 대출을 껴안고 주식과 부동산으로 몰려드는 빚투 현상은 자산이 없는 청년층에게 깊은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준다. 폭등한 자산 가격은 서민의 주거 안정을 흔들고 수도권과 지방의 양극화를 심화시키며, 청년들의 청사진을 지워버려 사회 전체의 근로 의욕을 꺾고 있다.
위기 앞에서 정부 대응은 근본적이어야 한다. 역대 정권이 불평등 해소를 외쳤음에도 지표가 악화된 까닭은 단기적 재정 지원이나 미봉책에 의존했을 뿐, 불평등을 초래하는 구조와 자산 독점 메커니즘을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를 통한 컨트롤타워 구축은 유용한 출발점이 될 수 있지만, 기구 설치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 브라운대 갤로어 교수가 제언했듯, 포용적 제도 개혁을 통해 생산적 투자로 흐르지 않는 자산 거품을 통제하는 한편 청년층과 자산 소유 소외계층을 위한 교육, 혁신, 자산 형성 지원 등을 병행해야 한다.
불평등은 더 이상 성장의 자연스러운 부산물이 아니다. 한국은 겉으로는 풍요로우나, 마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과 같은 사회적 갈등과 야만 상태에 놓여 있다. 인류가 기나긴 빈곤의 역사 속에서 포용적 제도와 혁신으로 풍요 사회로 도약했듯, 이제는 불평등의 사슬을 끊어내는 정책적 결단을 내려야 할 때다. 끊어진 계층 이동의 바통을 다시 연결하고 공동체적 신뢰를 회복하려는 담대한 구조 개혁이 절실하다. 그렇지 않다면, 전례 없는 폭염으로 고통받듯 머지않아 우리는 가혹한 불평등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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