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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경제전망대] 겨울이 온다

1989년의 일본은 겨울을 모르는 나라처럼 보였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치솟았고, 땅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담보 가치가 오르면 은행은 돈을 더 빌려줬고, 그 돈은 다시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었다.

[경제전망대] 겨울이 온다

주요국 ‘저금리 시대’ 종말 예고

한국도 경제 한파 피하기 힘들어

물가·금융시스템 안정 정책 필요

추위 못 막으면 ‘견딜 힘’ 길러야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1989년의 일본은 겨울을 모르는 나라처럼 보였다. 부동산과 주식 가격이 치솟았고, 땅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팽배했다. 담보 가치가 오르면 은행은 돈을 더 빌려줬고, 그 돈은 다시 자산시장으로 흘러들었다. 그해 마지막 거래일인 12월29일, 닛케이225 지수는 3만8천957까지 올라 당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사이 일본 경제의 계절은 시나브로 바뀌고 있었다. 일본은행은 1989년 5월부터 공정할인율(기준금리)을 2.5%에서 3.25%로 올린 후 이듬해 8월 6%까지 끌어올렸다. 그 여파로 주식시장이 먼저 무너지기 시작했고 부동산 가격도 뒤따라 하락했다. 자산가격이 내려갔음에도 빚은 그대로였다. 기업은 미래를 위한 투자보다 부채 상환에 매달렸고, 은행은 부실채권에 발목 잡혔다. 이후 일본은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늪에 빠졌다. 장기 침체를 기준금리 인상만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시사점은 분명하다. 빚으로 데운 자산시장 호황은 돈의 가격, 즉 금리 기조가 바뀌면 빠르게 식게 된다.

최근 들어 주요국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연이어 인상하고 있다. 중동 전쟁 장기화에 따른 에너지 가격 상승이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상당 기간 지속된 ‘저금리 시대’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다.

금리는 경제의 온도조절기이자 자산가격을 결정하는 할인율이다. 금리가 오르면 미래 이익의 현재 가치는 작아진다. 주택도 입지와 크기가 그대로여도 대출 이자가 늘면 구매자가 감당할 수 있는 부동산 가격은 낮아진다. 여기에 부채가 더해지면 충격은 커진다. 상승기에 수익을 키우던 지렛대가 하락기에는 손실을 증폭한다.

가계는 소비를 줄이고 기업은 투자를 미룬다. 누군가의 지출 축소가 다른 누군가의 소득 감소로 이어지면서 금융의 냉기가 실물경제로 번지게 된다.

한국 경제도 이 한파에서 자유롭지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26년 2분기 말 가계신용 잔액은 약 2천20조원에 달한다. 이처럼 빚이 쌓인 상황에서 대출금리가 점차 오르면 변동금리 대출을 이용하는 가계와 차입 의존도가 높은 자영업자는 이자 부담을 생활비와 사업비에서 직접 감당해야 한다. 건설업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도 금융비용 상승에 분양 부진까지 겹치면 어려움이 커질 수 있다.

반도체 등 일부 수출산업의 온기가 내수 전반으로 충분히 퍼지지 못한다면, 수출 지표와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 사이의 온도차는 더욱 벌어질 수 있다. 한국경제가 살펴야 할 것은 금리의 높이만이 아니라 그 무게를 견디는 가계와 기업의 체력이다.

그렇다고 긴축을 무조건 피할 수는 없다. 금리로 원유 공급을 늘릴 수는 없지만 에너지 충격이 광범위한 가격 인상과 기대인플레이션으로 번지는 것은 막아야 한다. 물가를 방치하면 실질소득이 줄고 저소득층의 부담은 더 커진다.

필요한 것은 물가 안정과 금융시스템 안정을 함께 추구하는 정책이다. 재정도 역할을 명확히 해야 한다. 광범위한 경기 부양은 통화 긴축 효과를 약화시킬 수 있지만, 서민층·청년층·취약계층 보호까지 같은 잣대로 볼 수는 없다. 총수요를 무차별적으로 데우기보다 필요한 곳에 온기를 전달해야 한다.

자산가격을 떠받치는 일과 금융시스템을 지키는 일도 다르다. 회생 가능한 기업은 지원하되 회복하기 어려운 부실은 투명하고 신속하게 정리해야 한다. 가계와 기업 역시 자산가격이 얼마나 오를지 기대하기보다 높은 금리를 얼마나 견딜 수 있는지 진단해야 한다. 바뀐 현실을 직시하고 평가이익보다 현금흐름을, 기대수익보다 상환능력을 먼저 살필 때다.

최근 살갗에 스치는 찬 바람을 보면 정말 차가운 겨울이 다가오는 것 같다. 겨울이 올 때 언제 첫눈이 내릴지 맞히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한국 경제의 지붕을 살피고 땔감을 마련하는 일이다. 겨울이 다가오는 것을 막을 수 없어도 추위를 견딜 힘은 기를 수 있다.

지금은 지난 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그리워할 때가 아니라, 다가올 한파에 대비해 옷깃을 단단히 여밀 때다.

/이장연 인천대 경제학 교수

<※외부인사의 글은 경인일보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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