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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상시론]석유화학, 이중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와 함께 '수출 효자'로 불리며 우리나라를 세계 5대 석유화학 강국으로 만드는 데... 첨단 소재, 반도체 화학, 친환경 고기능 소재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래 전략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변화를 미루는...

[경상시론]석유화학, 이중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전략

중동리스크 일시적 변수 아닌 상수

에너지 수급불안 언제든 반복 가능

산업구조 재편 마지막 기회 삼아야

▲ 허황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우리나라 석유화학 산업은 지난 반세기 동안 국가 경제를 이끌어 온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 왔다. 반도체와 조선, 자동차와 함께 ‘수출 효자’로 불리며 우리나라를 세계 5대 석유화학 강국으로 만드는 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지금, 이 산업은 생존을 걱정해야 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빠져 있다. 위기는 두 갈래에서 덮쳐 왔다. 하나는 중국 석유화학의 빠른 발전이 ‘경쟁자’로 돌아선 것이고, 또 다른 하나의 변수는 서부아시아에서 일어난 전쟁이다.

지난 2월 말, 미국과 이스라엘이 선전포고 없이 이란 수뇌부와 시설을 폭격하면서, 서아시아 전체가 전쟁에 휩싸여 있다. 한 달이 넘도록 서로가 폭탄을 주고받으면서 이제는 이란의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공격도 서슴지 않을 태세다. 전 세계 석유 수송량의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된 지도 한 달을 넘기고 있다. 국지전을 넘어 세계의 에너지 질서까지 흔들리게 된 것이다. 전쟁을 치르며 미국은 세계 에너지 지배력이 사상 최고의 수준으로 올라서게 됐지만 GDP의 6%를 원유 수입에 지출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최대 피해국이 되었다. 우리나라 산업의 심장이 멎기 직전에 와 있는 것이다.

문제는 명확하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중동 원유에 의존하는 산업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원료는 중동에, 시장은 중국에 의존하는 이중 종속 구조는 외부 충격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는 새로운 위기가 아니라, 이미 예고되어 있던 구조적 취약성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다.

더 심각한 것은 대응의 속도와 인식이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상황을 지켜보는 단계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에너지와 산업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이 봉쇄될 가능성이 거론되는 순간, 그것은 곧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생산 차질과 수출 감소로 직결된다. 이 상황에서 점진적 대응이나 선언적 대책은 아무 의미가 없다. 이제는 선택이 아니라 결단의 문제다.

우선, 에너지 공급망의 근본적 재편이 필요하다. 단순한 수입선 다변화 수준을 넘어, 국가 차원의 에너지 안보 전략을 재설계해야 한다. 공급선 확대는 물론, 장기 계약과 전략 비축 시스템을 공격적으로 운용해야 한다. 에너지는 시장이 아니라 안보의 문제다.

둘째, 석유화학 산업의 체질을 바꾸어야 한다. 지금의 범용 제품 중심 구조로는 중국과의 가격 경쟁에서도, 글로벌 공급 과잉 상황에서도 살아남기 어렵다. 첨단 소재, 반도체 화학, 친환경 고기능 소재로의 전환은 더 이상 미래 전략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 변화를 미루는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될 수밖에 없다.

셋째, 에너지 전환을 ‘환경’이 아닌 ‘산업 전략’으로 재정의해야 한다. 수소, 재생에너지, 전기 기반 생산 체계는 선택적 투자가 아니라 필수 인프라다. 이번 사태는 화석 연료 의존이 얼마나 큰 지정학적 리스크인지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넷째, 정부와 기업의 역할 재정립이 시급하다. 정부는 규제 완화와 세제 지원을 넘어, 산업 구조 전환을 강제할 수준의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기업 역시 단기 수익에 매달리는 관성을 버리고, 과감한 구조 개편과 기술 투자에 나서야 한다.

냉정하게 말해, 지금의 위기는 피할 수 없는 충격이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우리가 이 충격을 ‘예외적 사건’으로 착각하는 데 있다. 중동 리스크는 일시적 변수가 아니라 상수이며, 에너지 불안정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

결국 답은 하나다. 위기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위기를 전제로 한 구조로 바꾸는 것이다. 과거 오일쇼크가 우리나라의 산업화를 촉진했듯이, 이번 사태 역시 산업구조를 재편할 마지막 기회가 될 수 있다. 지금 결단하지 않으면, 다음 위기에서는 선택할 기회조차 남지 않을 것이다.

허황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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