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경쟁력 핵심된 과학기술
빠른 발전보다 깊이가 더 중요
수학적 사고가 바탕돼야 가능
▲ 김현민 부산대학교 교수 산업수학센터장
4월21일 과학의 날은 우리 사회가 과학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돌아보는 중요한 계기다. 과학은 더 이상 연구실 안에 머무는 지식이 아니라 국가의 경쟁력과 일상의 변화를 동시에 이끄는 핵심 동력이다. 인공지능, 반도체, 바이오, 에너지 전환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거의 모든 문제는 과학기술과 연결되어 있다.
대한민국의 과학은 분명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루어 왔다. 짧은 시간 안에 세계적 수준의 반도체 산업을 구축했고, 정보통신 기술과 제조업에서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최근에는 인공지능과 바이오 분야에서도 빠르게 존재감을 키워가고 있다. 연구자들의 헌신과 높은 교육열, 그리고 빠른 실행력은 우리 과학기술의 강점이다. 특히 주어진 자원과 시간 안에서 효율적으로 성과를 만들어내는 능력은 국제적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 이면에는 우리가 반드시 직시해야 할 구조적 한계도 존재한다. 여전히 단기 성과 중심의 연구 환경,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 평가 체계, 그리고 기초과학에 대한 장기적 투자 부족은 우리 과학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하는 요소다.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오랜 시간 축적을 필요로 하는 연구보다는 빠른 결과를 요구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으면서, 도전적이고 근본적인 연구는 상대적으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불확실성과 시행착오를 전제로 하는데, 우리는 그 과정을 충분히 존중하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이 바로 수학이다. 흔히 ‘수학은 과학의 언어’라고 말한다. 이는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자연 현상을 이해하고 기술을 설계하며 데이터를 해석하는 모든 과정에서 수학은 구조를 제공하고 의미를 부여한다. 물리학의 법칙은 수식으로 표현되고,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최적화 문제로 구성되며, 금융과 의료 데이터 분석 역시 통계적 모델 위에서 이루어진다. 과학이 질문을 던진다면, 수학은 그 질문을 정제하고 답을 찾을 수 있는 형태로 바꾸는 역할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수학은 여전히 ‘어려운 과목’ ‘시험을 위한 도구’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수학을 통해 세상을 이해하는 경험보다는 정답을 맞히는 과정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한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기술 경쟁력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수학적 사고 없이 과학기술의 깊이를 확보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인공지능 시대에 수학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발견하고, 복잡한 시스템을 모델링하며, 다양한 제약 조건 속에서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과정은 모두 수학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 겉으로 보기에 화려한 기술 뒤에는 보이지 않는 수식과 알고리즘이 존재하며, 그 중심에는 수학이 자리 잡고 있다. 결국 미래 산업의 경쟁력은 기술의 속도가 아니라,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수학적 기반의 깊이에서 결정될 것이다.
과학의 날을 맞아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분명하다. 우리는 얼마나 빠르게 발전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깊이 있는 과학을 하고 있는가이다. 그리고 그 깊이를 만들어내는 토양으로서 수학을 얼마나 존중하고 투자하고 있는가를 함께 물어야 한다. 부산대학교 수학과와 산업수학센터에서 연구와 교육을 이어가며 느끼는 것은 분명하다. 수학은 단순한 학문이 아니라 산업과 사회를 연결하는 중요한 도구이며,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언어이기도 하다. 지역 산업의 문제를 수학적으로 구조화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은 곧 새로운 가치 창출로 이어진다. 이러한 흐름이 축적될 때, 과학은 비로소 연구실을 넘어 사회 전체의 힘이 된다.
과학의 날은 기념일이 아니라 방향을 점검하는 날이어야 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에 만족하기보다 보이지 않는 기초를 다지고, 빠른 결과보다 깊은 이해를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제나 수학이 있어야 한다. 수식 위에서 움직이는 과학기술의 시대에, 우리가 준비해야 할 미래 역시 그 위에서 함께 설계되길 희망해 본다.
김현민 부산대학교 교수 산업수학센터장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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