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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경상시론]AI시대의 역설, 한국의 미래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풍력과 태양광발전소를 직접 건설하며 자체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초저전력 반도체와 광 기반 AI 연산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는 '더 많은 전기'를 만드는 것이...

[경상시론]AI시대의 역설, 한국의 미래는

인간삶과 산업에 혁신 가져온 AI

엄청난 전력소모·환경문제

야기국가차원의 전략 마련 서둘러야

▲ 허황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인류는 지금 거대한 문명 전환의 문턱에 서 있다. 증기기관이 산업혁명을 열었고, 석유가 20세기 경제를 움직였다면, 21세기를 지배하는 힘은 당연 인공지능(AI)이다. AI는 의료, 국방, 금융, 교육, 제조업을 동시에 바꾸며 인간의 삶과 산업구조를 재편하고 있다. 문제는 이 놀라운 기술이 상상을 초월하는 전력을 소비한다는 사실이다. AI는 눈에 보이지 않는 디지털 기술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양의 전기를 먹는 ‘에너지 산업’에 가깝다.

세계는 이미 이 문제를 체감하고 있다. 초거대 AI 모델 하나를 학습 시키는데 수천 가구가 수개월 사용할 전력이 소요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온다. AI 서버가 몰려 있는 데이터 센터는 작은 도시 하나와 맞먹는 전력을 사용하며 냉각 시스템까지 포함하면 소비량은 더 커진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향후 데이터센터와 AI산업의 전력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AI가 발전할수록 인류는 더 많은 전기를 필요로 하게 되는 역설에 빠진 것이다.

한국의 현실은 더욱 심각하다. 한국은 반도체, 배터리, 자동차, 조선 등 전력 다소비 산업 중심의 국가다. 동시에 세계 최고 수준의 디지털 인프라를 갖춘 AI 경쟁 국가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AI시대의 혜택을 놓칠 수 없는 나라면서도 그 부담을 가장 크게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좁은 국토, 수도권 집중형 전력망, 낮은 재생에너지 비율, 높은 제조업 의존도는 한국을 ‘AI시대의 에너지 딜레마’ 한 가운데로 밀어 넣고 있다.

더 큰 문제는 기후위기다. AI 산업 확대는 필연적으로 전력 생산 증가를 요구하고, 이는 다시 화석 연료 사용 확대로 이어진다. 실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AI 산업 육성을 이유로 석탄과 LNG 발전 확대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진영을 중심으로 탄소중립 정책 후퇴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기후위기 문제는 더 이상 정치적 의견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폭염과 산불, 홍수와 가뭄은 이미 세계 곳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과학자들은 지금의 속도로 온실가스가 증가할 경우 인류가 감당하기 어려운 기후 재난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결국 인류는 ‘AI혁신’과 ‘탄소중립’이라는 두 거대한 충돌 앞에 서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가. 다행히 세계는 이미 새로운 길을 찾기 시작했다. 유럽은 데이터센터의 재생에너지 사용 의무화를 강화하고 있으며, 북유럽 국가들은 차가운 기후를 활용해 냉각 에너지를 줄이고 있다. 핀란드와 스웨덴은 데이터센터 폐열을 지역 난방에 활용하는 시스템까지 구축했다. 미국의 빅테크 기업들은 풍력과 태양광발전소를 직접 건설하며 자체 전력 확보에 나서고 있다. 일본은 초저전력 반도체와 광 기반 AI 연산 기술 개발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세계는 ‘더 많은 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더 적은 에너지’로 ‘더 큰 효율’을 만드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역시 이제 선택해야 한다. 첫째, AI 정책과 에너지 정책을 완전 통합해야한다. 지금처럼 산업 정책과 전력 정책이 따로 움직여서는 AI 시대를 감당할 수 없다. 데이터센터 입지, 송전망 구축, 재생에너지 공급, ESS(에너지 저장장치), 전력 요금 체계까지 하나의 국가 전략으로 묶어야 한다.

둘째, ‘그린 AI’ 기술 개발에 국가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지금까지 AI 경쟁은 누가 더 거대한 모델을 만드느냐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승자는 ‘누가 더 적은 전력으로 더 높은 성능을 구현하느냐’에서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저전력 반도체, 차세대 AI칩, 효율적 알고리즘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국가 생존 전략이 되고 있다.

셋째, 현실적 에너지 믹스를 구축해야 한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기술 수준에서 태양광과 풍력만으로 안정적 전력 공급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결국 일정 수준의 원자력 활용과 재생에너지 확대를 병행하는 현실적 접근이 불가피하다. 중요한 것은 이념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이다.

AI는 인류에게 엄청난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질병을 치료하고, 신소재를 개발하며, 산업 생산성을 혁신할 수 있다. 그러나 에너지와 환경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AI는 미래를 밝히는 기술이 아니라 지구를 더 뜨겁게 만드는 역설적 존재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AI 강국이 될 것인가, 아니면 전력과 환경의 한계 속에서 스스로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될 것인가. 미래는 기술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그리고 그 선택의 시간은 생각보다 훨씬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허황 울산대학교 명예교수

경상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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