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소심 재판 출석하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사진=연합뉴스)
삼성물산은 현재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서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지배력은 삼성물산을 축으로 삼성생명, 삼성전자 등 핵심 계열사로 이어진다. 문제는 구조의 무게다. 삼성물산은 그룹 지배구조를 떠받치는 중심 회사가 됐지만, 정작 그 역할을 감당할 만큼의 재무 체력을 갖췄는지에 대해서는 시장의 시선이 엇갈린다.
이 회장은 삼성전자 직접 지분이 1%대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 지분을 기반으로 삼성생명과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고 있다.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지분 약 19%와 삼성전자 지분 약 5%를 보유하고 있고, 삼성생명 역시 삼성전자 지분 8% 이상을 들고 있어 이 연결 고리가 그룹 지배력의 핵심 축이 된다.
■ 2015년 합병이 만든 ‘지배구조 축’…남은 분쟁의 그림자
이 구조는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을 통해 완성됐다. 당시 이 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을 합치면서 오너 일가의 지분이 집중된 삼성물산이 그룹 지배의 중심으로 올라섰다. 하지만 이 과정은 적지 않은 논란을 남겼다.
합병 비율이 제일모직에 유리하게 설정됐다는 비판이 제기되면서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공개적으로 반대했고 갈등은 국제 분쟁으로 번졌다. 당시 삼성물산 최대주주였던 국민연금공단이 정부 압력 속에 합병에 찬성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며 정치·사법 논란으로 확대됐다.
엘리엇은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로 투자 손실을 입었다며 2018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근거한 투자자-국가 간 분쟁(ISDS)을 제기했다. 2023년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한국 정부가 엘리엇 측에 약 1556억원을 배상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한국 정부는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판정 취소 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영국 항소법원은 정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사건을 1심 법원으로 돌려보냈고, 고등법원은 중재판정 일부를 취소하며 정부 측 주장을 일부 인정했다.
재판부는 국민연금공단이 정부와 별개의 법인격을 가진 기관이라는 점을 인정하며 국민연금을 국가기관으로 전제한 중재 판단 부분을 취소했다. 다만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합병 당시 국민연금 의사결정 과정에 개입한 행위는 FTA상 ‘관련성 있는 조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사건은 다시 중재 절차로 환송된 상태다.
조아라 국제투자분쟁과장이 지난달 24일 경기도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와의 국제투자분쟁(ISDS) 취소판결 선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 남은 사법 리스크…민사 소송 본격화
합병을 둘러싼 법적 리스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연금이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이재용 회장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1심이 이달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는 해당 사건의 첫 변론기일을 19일로 지정했다. 당초 재판은 지난해 6월 시작될 예정이었지만 두 차례 연기 끝에 열리게 됐다.
손해배상 청구 대상에는 이 회장을 비롯해 최지성 전 미래전략실장, 장충기 전 미래전략실 차장, 최치훈 전 삼성물산 사장 등 당시 의사결정에 관여한 인사들과 삼성물산,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 홍완선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등이 포함됐다. 청구액은 약 5억원이다.
이와 별도로 삼성물산 소액주주 32명이 합병으로 손해를 입었다며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도 진행 중이다. 당초 이달 선고가 예정됐지만 변론이 재개되면서 결론은 다시 미뤄진 상태다.
■ 보험업법 변수…삼성물산 향하는 ‘삼성생명법’ 부담
삼성 지배구조를 둘러싼 또 다른 핵심 변수는 이른바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이 법안은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을 평가할 때 기존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을 기준으로 삼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보험사의 자산 건전성을 강화하는 규제지만 시장에서는 사실상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문제를 겨냥한 법안이라는 해석이 많다.
현재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약 8%대를 보유하고 있다. 취득원가 기준으로는 보험업법상 ‘총자산의 3%’ 보유 제한에 걸리지 않지만 이를 시가 기준으로 평가하면 규제 한도를 크게 넘는다. 특히 최근 삼성전자 주가 상승으로 지분 가치가 크게 불어난 점도 부담을 키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삼성전자 시가총액이 커질수록 삼성생명이 보유한 지분 가치 역시 함께 늘어나기 때문이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이 줄어들 경우 현재의 지배력 연결 구조 역시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지분 매각이 현실화될 경우 삼성물산이 일부 지분을 흡수하는 시나리오도 거론된다.
■ 지배구조 중심이지만…재무 여력 제한적
삼성물산의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그룹 지배구조의 핵심 축이지만 실제 재무 체력은 그 역할을 감당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삼성물산의 연간 순이익은 2조~3조원 수준이며 현금성 자산도 수조 원 규모에 머문다. 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수십조 원에 달한다. 지배구조 유지를 위해 지분을 매입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단일 회사가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다.
더욱이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지분을 크게 늘릴 경우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 규제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일정 수준 이상의 지분을 확보하면 지주회사 전환 요건이 적용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자회사 지분 추가 확보 등 또 다른 자금 부담이 뒤따른다.
삼성물산은 ‘지배구조의 중심’이라는 상징적 위치와 달리 구조적으로 복잡한 부담을 동시에 떠안고 있는 회사다. 재계 한 관계자는 “삼성물산은 사실상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사업회사이기 때문에 지배구조 부담을 감당하기에 구조적 한계가 있다”며 “향후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핵심 변수 역시 결국 삼성물산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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