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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건설 현장의 AX 요원 '로봇개'

이듬해 GS건설은 건설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큐픽스와 협력해 이를 실제 건설 현장에 투입하는 실증시험에 성공했다. 공정 상태와 안전을 동시에 점검하는 '건설 특화 AI 로봇' 개발에 첫걸음을 뗀 것이다. 스팟은 AI와...

건설 현장의 AX 요원 '로봇개'

건설 현장 한복판에서 노란색 로봇개가 작업자들보다 먼저 길을 연다. 사람의 눈과 손에 의존하던 점검 방식은 로보틱스와 데이터, 인공지능(AI) 기반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로봇과 현장 특화 AI가 결합되면서 품질과 안전을 관리하는 방식도 달라지는 추세다. 이제 건설 현장에서 로봇은 실험 대상이 아니라 실제 공정을 함께 수행하는 또 하나의 ‘현장 요원’이다.

지난 4월 2일 서울 마포구 GS건설 마포자이힐스테이트 라첼스 신축 공사장 한가운데, ‘로봇개’ 스팟이 현장 작업자와 함께 건물 내부로 들어설 준비를 마쳤다. 지미연 객원기자

“또 먼저 가네.”

지난 4월 2일 서울 마포구 GS건설 마포자이힐스테이트라첼스 신축 공사장 아파트 101동 1층. 현장 작업자들이 대형견을 닮은 노란색 로봇 한 대를 바짝 따라가며 한마디씩 내뱉었다. 작업자들은 이 로봇개를 ‘스팟(SPOT)’이라 불렀다. 로봇개는 콘크리트 분진이 남아 있는 바닥을 지나 현관문을 통해 세대 내부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사람과 비슷하거나 조금 더 빠른 속도였다. 좁은 복도와 문턱은 로봇개에게 아무런 제약이 되지 않았다. 성인 남성의 무릎높이쯤 되는 몸체 위 머리 부분에는 각종 장비가 장착돼 있었다.

로봇개는 거실과 방을 가로지르며 공간을 훑었다. 특정 지점에서는 잠시 멈춰서 주변을 파노라마처럼 스캔했다. 임무를 마친 로봇개는 몸을 돌려 세대를 빠져나와 또다시 사람들을 앞질렀다. 그러곤 곧바로 계단으로 향했다. 발걸음에는 지친 기색이 없었고 속도도 늦추지 않았다. 로봇개에게 계단은 장애물이 아니라 동선의 일부처럼 보였다. 실제로 30cm 높이 장애물과 ±30도 경사로도 오르내릴 수 있다.

현장 관계자는 로봇개를 두고 “기특한 ‘현장 요원’”이라고 말했다. 그는 “로봇개는 라이다(LiDAR, 레이저로 거리를 측정해 주변을 3D로 파악하는 센서)와 360도 카메라, 열화상 카메라, 유해가스 감지기 등을 활용해 다양한 데이터를 확보한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인공지능(AI) 분석을 거쳐 담당자의 판단과 의사결정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활용된다.

국내 건설 현장에 인공지능 전환(AX) 바람이 일고 있다. 그동안 건설 현장은 고령화에 따른 인력 부족과 안전 리스크, 복잡한 공정 구조 등이 맞물려 운영 부담이 누적됐다. 특히 육안 점검과 수기 기록에 의존하는 탓에 데이터의 일관성을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드론과 로봇을 활용해 외벽과 내부를 각각 점검하는 한편, 이 과정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AI로 분석해 품질과 안전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이날 현장에 투입된 로봇개 스팟은 이러한 변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사례였다.

STEP 1

실험실에서 나온 ‘진짜 현장 로봇’

스팟은 2019년 보스턴다이내믹스가 선보인 사족보행 로봇이다. 이듬해 GS건설은 건설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큐픽스와 협력해 이를 실제 건설 현장에 투입하는 실증시험에 성공했다. 공정 상태와 안전을 동시에 점검하는 ‘건설 특화 AI 로봇’ 개발에 첫걸음을 뗀 것이다. 스팟은 AI와 결합에 앞서 주요 임무를 수행하는데, 육안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이상 징후를 감지해 데이터로 전환하는 것이 핵심이다.

우선 파노라마 촬영으로 마감 상태를 점검하고 누락·오염·균열 등 시공 상태를 확인하는 동시에 공정 진척 상황을 증빙으로 남긴다. 또 열화상 카메라로 전기설비의 과열 여부와 단열재 설치 상태를 확인해 화재 위험을 살핀다. 유해가스 감지기를 이용해 작업 전 구역의 위험 여부를 점검하고 작업자의 진입을 사전에 방지하는 것도 스팟의 역할이다. 스팟의 작업 동선을 따라가봤다.

STEP 2

가파른 계단 OK… 자율주행 한계는 여전

공사장 한가운데, 충전을 마친 스팟이 작업자와 함께 건물 내부로 들어설 준비를 마친 채 대기하고 있다. 이날 점검 대상은 101동 1층부터 3층까지 총 6세대(1세대 당 113㎡)다. 한 층당 약 10분 동안 2세대씩 점검하는 일정이다. 한 번 완충하면 1시간 30분가량 가동할 수 있어 이날 작업을 소화하기에는 충분하다.

물론 스팟의 점검 범위가 101동에 한정된 건 아니다. 스팟은 입력된 도면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동한다. 건축 도면 자체를 지도처럼 활용하는 방식으로, GS건설의 독자 시스템이라는 설명이다. 김태우 GS건설 책임은 “건설 현장은 자재가 쌓였다가 치워지는 등 변화가 빈번한데 기존에 활용된 슬램(SLAM, Simultaneous Localization and Mapping) 기술은 환경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지 못했다”며 “스팟에는 그 한계를 보완하는 시스템이 적용됐다”고 말했다. 이어 “마포자이힐스테이트라첼스 현장에 투입된 스팟은 아파트 10개 동의 1~3층, 각 세대 내부 경로를 사전에 매핑해두었기 때문에 해당 구간까지 점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호이스트(건설용 리프트) 앞에서 스팟이 잠시 멈췄다. 평지에서는 거침없이 이동하던 로봇도 층간 이동 구간에서는 다른 방식이 필요했다. 스팟이 충전·대기하던 지점은 건물 내부가 아닌 외부 구역이었다. 현장에서는 스팟을 바로 들여보내기보다 호이스트를 이용해 정해진 진입 포인트로 투입하는 방식을 택한다.

호이스트 문이 열리자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좁은 공간이 드러났다. 안전모를 쓴 작업자 네 명이 몸을 숙여 35kg에 달하는 스팟을 들어 올려 내부에 실었다. 현장에서 로봇은 스스로 이동하지만 투입과 일부 이동 구간에서는 여전히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AX가 진행되고 있다 해도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는 단계는 아니었다. 오히려 로봇이라는 새로운 장비를 운용하기 위해 인간의 새로운 역할이 추가된 것이다. 다만 스팟은 호이스트에 올라선 뒤에는 흔들림에도 자세를 잃지 않고 안정적으로 균형을 유지했다.

호이스트에서 내려 세대 내부로 진입한 스팟은 도면 정보를 기반으로 설정된 동선을 따라 움직였다. 도면에 없는 장애물이나 작업자도 실시간으로 인식해 경로를 조정했다. 복잡하게 얽힌 구조물 사이도 스스로 판단하며 이동하도록 설계된 덕분이다. 단순히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수준이 아니라 사람이 오가는 복잡한 현장에서도 알아서 동선을 찾아 나갔다.

물론 사람의 개입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자재가 갑자기 앞을 가로막는 등 스팟이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하면 작업자가 개입해 경로를 수정했다. 일시정지와 미션 정지 기능을 포함한 조이스틱 형식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었다. 현장에서 작업자가 스팟과 함께 이동하며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에 설치된 프로그램을 이용해 스팟의 미션·경로를 제어했다. 블루투스나 와이파이를 통해서다.

스팟은 30㎝ 높이 장애물(계단)과 ±30도 경사로를 오르내릴 수 있다. 다만 호이스트(건설용 리프트)의 자율 탑승은 불가능하다. 지미연 객원기자

STEP 3

빠르고 정확하게 이상 징후 포착

스팟은 세대 내부를 이동하며 미리 설정된 지점마다 멈춰 서 데이터를 수집했다. 같은 동선, 같은 위치를 반복하는 식이었다. 스팟이 수집한 데이터는 곧바로 AI로 넘어가 분석되는 구조는 아니었다. 현장에서는 우선 관계자가 태블릿에서 로봇이 전송한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확인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김성헌 전임은 “사람이 점검할 때는 보는 위치나 방식이 조금씩 달라질 수밖에 없다”며 “하지만 스팟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방식으로 기록을 남기기 때문에 점검 기준이 일정하다”고 말했다.

스팟과 사람의 차이는 데이터 확보 방식에서도 드러났다. 그동안 현장 점검은 사람이 직접 이동하며 눈으로 확인하고 스마트폰으로 촬영·기록하는 방식이 중심이었다. 이 과정에서 점검자나 시간대에 따라 결과에 편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스팟은 일관된 방식으로 데이터를 자동 수집해 객관적인 기록을 남긴다. 곽성민 CDO기획팀 책임은 “열화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단열 상태나 시공 이상 징후인 온도 편차를 확인해 육안으로 판단이 어려운 구간을 후속 점검 대상으로 선별할 수 있다”며 “어제는 없었지만 오늘 새로 발생한 변화 같은 초기 이상 징후도 더 빠르게 포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 수집된 데이터는 현장과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플랫폼으로 전달된다. 여기서 세대와 점검 포인트 단위로 정리된 뒤 AI의 1차 분석을 거친다. 이후 데이터는 시점별 비교 자료로 활용된다. 같은 위치를 계속 기록해두면 이전 상태와 현재 상태를 나란히 놓고 변화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백상 AI CoE팀 책임은 “벽면처럼 동일 지점을 계속 기록해두면 균열이나 오염이 언제부터 나타났는지 시점을 짚어낼 수 있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결과만 보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시작된 시점을 따라가며 원인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에는 현장 담당자와 안전·품질 관련 인력이 AI 분석 결과를 바탕으로 정밀 검토를 진행하고 최종 판단을 내린다. 필요할 경우 재시공이나 보수, 안전조치로 이어진다.

STEP 4

로봇개와 AI는 무엇을 어떻게 돕나

로봇개 도입 이후 현장의 점검 방식은 ‘사람의 경험에 의존하는 순회’에서 ‘루틴 기반 데이터 수집과 플랫폼 확인’ 중심으로 바뀌고 있었다. 기존에는 담당자가 직접 각 동을 돌며 촬영하고 내용을 기록한 뒤 사무실로 돌아와 정리하는 방식이었다면, 이제는 로봇이 수집한 데이터가 포인트별로 자동 정리돼 전달된다. ‘촬영→파일 정리→보고서 작성’으로 이어지던 과정이 압축되면서 취합과 보고에 걸리는 시간도 크게 줄었다.

그 결과 현장 작업의 무게중심도 이동했다. ‘순찰·촬영·기록’ 같은 반복 작업은 상당 부분 줄어든 반면, 수집된 데이터를 해석하고 필요한 조치를 판단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김 전임은 “반복 작업이 줄어든 만큼 안전이나 간섭 사항을 한 번 더 점검할 수 있고 시간을 다른 업무에 배분할 수 있어 전반적으로 작업 효율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스팟은 안전관리 측면에서도 효용성이 높았다. 기존에는 유해가스나 고온·밀폐 구간처럼 위험 요소가 있는 공간을 사람이 먼저 확인해야 했고, 그 자체가 리스크였다. 하지만 로봇을 활용하면 로봇이 위험 구역에 먼저 진입해 유해가스 농도와 환경 상태를 점검하고 작업자는 그 결과를 바탕으로 진입 여부를 판단하면 된다.

스팟의 또 다른 이점은 AI와 결합될 때 더욱 뚜렷해진다. GS건설은 스팟과 데이터 플랫폼, AI 분석 솔루션 등을 결합해 ‘건설 현장 특화 AI 시스템’을 구축했다. 단순 영상 분석에 그치지 않고 건설 현장의 구조와 공정 단위를 그대로 반영해 데이터를 해석하도록 만든 시스템이다. 층·세대·부위·포인트 같은 공간 정보와 공정 단계, 현장에서 정의한 결함 유형까지 함께 학습시켜 데이터가 곧바로 ‘업무 단위’로 읽히도록 설계했다는 설명이다.

특히 육안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영역에서 효과가 두드러진다. 건물 외벽 균열처럼 표면만으로는 판단이 애매한 경우에도 비전 AI 기반 분석을 진행해 단순 표면 문제인지, 실제 품질에 영향을 미치는 결함인지 구분할 수 있다. 한 책임은 “건설 현장은 공간 구조와 공정이 복잡해 일반적인 영상 분석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현장 기준에 맞춰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AI를 구축해야 실제 업무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스팟은 머리 위에 장착된 360도 카메라와 유해가스 감지기 등을 활용해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한다. 지미연 객원기자

STEP 5

과연 사람을 대체할까

그렇다고 해서 AI에 판단과 의사결정을 온전히 맡기는 구조는 아니었다. GS건설은 AI와 사람의 역할을 분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AI가 먼저 데이터를 분석해 이상 징후를 선별하고 이후 현장 담당자가 이를 다시 확인해 최종 판단을 내리는 방식이다. 이는 정확도 측면에서도 현실적이라는 설명이다. 곽 책임은 “건설 현장은 조명, 공정 상태, 자재 적재 등 환경 변수가 많아 AI 단독으로는 오탐이나 미탐이 발생할 수 있다”며 “AI가 1차로 범위를 좁히고 현장 맥락을 아는 사람이 최종 판단을 맡으면 실무적으로 가장 안정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로봇개와 AI는 과연 사람을 대체할 것인가. 현장에서는 스팟을 직접 들어 옮기거나 조이스틱으로 제어해야 하는 순간이 여전히 존재했다. 완전한 자율주행과는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로봇에게 모든 과정을 맡기기에는 아직 이른 단계로 보인다. 하지만 기존 산업용 로봇이 물류창고 등 평면적인 공간에 머물렀다면 스팟은 계단을 오르내리며 아파트라는 수직 구조까지 이동 범위를 넓힌 모습이었다. 김 책임은 “건설 현장에서 이제 AX는 실험실에 머무는 기술이나 단순한 시연, 구경거리에 그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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