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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강대권의 시시각각] "AI 시대, 공짜는 끝났다"

그런데 이번 기술혁명인 AI는 조금 다르다. 기존 빅테크 서비스의 이용자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정보를 검색하고 소비한다. 한 번 만든 유튜브 영상은 백 명이 보든 천 명이 보든 추가 생산비가 거의 없다. 하지만 AI...

[강대권의 시시각각] "AI 시대, 공짜는 끝났다"

<이미지=챗GPT 생성>

경제학적으로 지난 30년간 인터넷 혁신의 문법은 한계비용 체감과 규모의 경제라는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서버를 깔고 트래픽을 모으는 초기 투자만 감당하면, 한계 생산비용(생산량을 늘리는데 필요한 추가 비용)이 급속도로 떨어지면서 이용자가 더 늘어도 비용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이는 선발 주자의 압도적 규모의 경제로 이어졌고 먼저 시장을 연 기업이 빅테크가 되어 세상을 지배했다. 구글, 메타, 아마존이 그랬다. 모바일도 클라우드도 같은 공식을 따랐다. 선점은 곧 승리였고, 네트워크 효과는 해자였다. 한 번 시장을 장악한 지배자를 후발 주자가 끌어내리기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고, 주식 시장의 승자 독식 구조는 이 문법 위에서 완성됐다.

그런데 이번 기술혁명인 AI는 조금 다르다. 기존 빅테크 서비스의 이용자들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정보를 검색하고 소비한다. 한 번 만든 유튜브 영상은 백 명이 보든 천 명이 보든 추가 생산비가 거의 없다. 하지만 AI 이용자가 원하는 것은 그때그때 따끈따끈하게, 지금 나를 위해 새로 만들어진 맞춤형 결과물이다. 질문 하나가 던져질 때마다 정보의 최소 단위인 ‘토큰’이 새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그 토큰에는 전기가 들고, 반도체가 들고, 돈이 든다. 수요가 늘수록 비용은 비례해 늘어난다. 한계비용 체감의 법칙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한계비용 불변이라는 낯선 곡선이 들어섰다. 쓸수록 저렴해지는 세계가 아니라, 쓸수록 돈이 드는 세계다.

토큰을 아무리 많이 만들어도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남는 경쟁력은 하나뿐이다. 원가를 쥐어짜는 것. 이것은 우리가 익숙한 인터넷 비니지스의 논리가 아니다. 가물가물해지고 있는 구식 제조업의 논리다. 엔비디아 젠슨 황이 AI 데이터센터를 굳이 ‘AI 팩토리’라 부르는 이유가 아마도 이것이 아닌가 싶다. 소프트웨어처럼 한 번 만들어 무한 복제하는 세계가 아니라, 철강·자동차·반도체처럼 한 단위 한 단위 원가를 깎아내며 승부를 겨루는 세계로 기술혁신이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제조업의 문법에서는 ‘먼저 투자한 쪽’이 반드시 이기지 않는다. 생산단가를 내리는 더 효율 좋은 신기술이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뒤늦게 들어와 더 진보한 기술로 더 큰 규모를 투자한 쪽이 원가 우위를 뒤집곤 한다. 20세기 철강과 조선, 반도체 산업의 패권이 미국에서 일본으로, 다시 한국과 대만으로 몇 차례씩 대륙을 옮겨 다녔던 역사가 이를 증명한다. 오래된 설비는 짐이 되고, 새로 찍어 누르는 쪽이 표준이 된다. 선점이 곧 승리였던 지난 30년 IT의 역사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다.

그렇다면 미국과 중국은 왜 사실상 국운을 걸고 선점을 위해 막대한 자본을 쏟아붓고 있는가. 선점이 영구적 해자를 담보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열풍은 과잉투자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이 베팅에도 나름의 논리가 있다. 핵심은 자원의 유한성이다. 전력, 첨단 반도체, 투자 자본. 이 세 가지 생산 요소는 단기간에 무한히 늘어나지 못한다. 새 원전 한 기를 짓는 데 10년, 새 첨단 팹 하나를 세우는 데 5년, 대규모 장기 투자를 감내할 자본 시장의 심리적 인내력은 몇 분기에 불과하다. 그 사이에도 토큰 수요는 천문학적 속도로 팽창하고 있다. 자원이 유한하고 수요가 폭증한다면, 지금 자원을 움켜쥐는 쪽이 적어도 앞으로 몇 년간은 시장을 주도한다. 선점 자체가 영구 해자를 만들지 않더라도, 자원 병목이 해소되기 전까지의 초과 이익만으로도 투자 원금을 회수하고 남을 수 있다는 계산이 선다. 경쟁자에게 자원을 내주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자산이 된다.

‘먼저 선점한다고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는 명제와 ‘그럼에도 선점을 위해 돈을 쏟아붓는 것이 합리적이다’라는 명제는 공급의 제약이라는 전제 아래에서만 동시에 성립한다. 지금의 미·중 경쟁은 바로 이 이중 명제 위에 서 있다. 과잉도 무모함도 아니다. 유한성을 전제로 한 일종의 집단적 보험 계약에 가깝다.

이 같은 이중 구조 위에서 경쟁은 크게 세 갈래 전선에서 펼쳐진다. 품질, 원가, 자원. 각 전선마다 판도를 쥐고 있는 플레이어가 다르고, 승자가 반드시 한 명일 필요도 없다.

품질의 최전선에는 오픈AI와 앤스로픽이 있다. 스타트업이 천조 원 몸값을 향해 질주한다. 불과 3년 전까지만 해도 대화창에 “시를 써 달라”는 주문이 어색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이들이 구축한 기술 격차는 인상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추격이 매섭고, 오픈소스 진영의 약진도 거세다. 무엇보다 ‘AI가 AI를 만드는’ 시대가 오면 이들의 품질 해자가 얼마나 버틸지 장담하기 어렵다. 품질은 가장 값진 프리미엄을 부르는 자산이지만, 동시에 가장 빠르게 복제되는 자산이기도 하다.

원가의 정점에는 엔비디아가 있다. 가장 효율 좋은 칩을 찍어내는 대가로 세계 시가총액 1위 자리를 차지했다. 한때 ‘AI 시대의 지진아’ 취급받던 구글은 자체 칩 TPU로 품질과 원가를 함께 움켜쥐며 무서운 속도로 귀환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아마존은 수십 기가와트 규모의 데이터센터 투자와 장기 전력 계약으로 원가 경쟁에 뛰어들었다. 누가 가장 싼 토큰을 찍어내느냐, 이 단순해 보이는 질문이 향후 10년 AI 산업의 서열을 정할 것이다.

자원의 무대에서 주연은 뜻밖에도 한국이다. 반도체, 전기전자, 전력기계. 지난 3년간 이 기업들의 실적과 주가 궤적을 보고 있으면 정신이 아찔할 정도다. 고대역폭 메모리(HBM)부터 변압기, 전력 케이블, 냉각 시스템, 기판과 소재까지 한국이 수십 년 공들여 온 ‘전통 제조업 포트폴리오’가 AI 팩토리 시대의 핵심 공급망으로 화려하게 떠오르고 있다.

공교롭게도 한국이 가장 잘하는 영역, 즉 대규모 설비를 빠르게 세우고 수율을 끌어올리는 능력이 지금 세계가 가장 아쉬워하는 능력과 정확히 겹쳤다. 하지만 지금은 수요가 워낙 커 가려져 있지만, 같은 자원을 공급하는 한국·중국·대만·일본 사이의 잠재 경쟁이라는 리스크도 있다. 수요의 파도가 잦아드는 순간, 공급자 간 단가 경쟁은 수면 위로 터져 나올 것이다. 지금의 호황을 영구적 승리로 오독하지는 않아야 할 것이다.

최후의 승자는 누굴까. 품질로 이길까, 원가로 이길까, 자원으로 이길까. 아니면 지금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전혀 다른 무엇일까. 다만 분명한 것이 있다. AI 토큰은 지난 30년의 기술혁신과는 경제적 문법이 다르다. 투자자도, 정책 당국도, 기업 경영진도 이 전환의 의미를 직시해야 한다. 기존의 잣대로 AI 산업을 예측하려 들면 번번이 오답에 이를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더 흥미진진하다.

■ 강대권 대표는 현재 라이프자산운용을 이끌고 있다. 서울대 경제학과 및 동대학원 석사(산업경제학 전공)를 마쳤고, 서울대 가치투자 동아리 '스믹(SMIC)' 출신으로도 유명하다. 가치투자 2세대 스타 펀드매니저인 강 대표는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을 거쳐 유경PSG자산운용에서 최고투자책임자(CIO)를 역임했다. 당시 국내 운용사 최연소 CIO다. 지난 2016년, 2020년 국내 주식형 운용사 수익률 1위를 기록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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