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조 복합개발 앵커로 현대차 R&D 거점···포스코도 위례 비즈밸리에 둥지
강남 접근성·대형 부지 희소성 맞물려···‘제조 기반 R&D 벨트’ 부상
고도제한 완화에 교통망 확충까지···개발 여건도 갖춰
[시사저널e=길해성 기자] 성남 복정역 일대가 초대형 산업 거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포스코홀딩스의 글로벌 R&D센터 착공에 이어 현대자동차그룹이 8조원 규모 연구개발(R&D) 통합 거점 조성을 공식화하면서다.
강남과 판교 사이에 남은 대형 개발 가능 부지가 대기업 수요와 맞물리며 복정역이 수도권 동남권의 새 성장축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 복정역 일대 현대차·포스코 R&D 거점으로 부상
29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최근 이사회를 열고 복정역 일대에 ‘HMG 퓨처 콤플렉스’를 조성하기 위한 출자를 결정했다. 투자 규모는 약 8조원이다. 현대차·기아·현대모비스·현대제철·현대로템 등 주요 계열사가 참여한다.
이곳에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 로보틱스 등 미래 모빌리티 핵심 기술을 담당하는 연구 조직이 들어설 예정이다. 그룹 내 흩어져 있던 기술 조직을 한곳으로 모아 미래 사업의 통합 거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이다. 착공은 올해 상반기, 완공은 2030년이 목표다.
이번 투자 결정은 복정역 개발 분위기를 바꾸는 계기가 됐다. 복정역세권 개발은 한때 현대차그룹 내부 전략 변화와 일부 조직 이전 재검토로 철수설이 제기됐다. 하지만 현대차그룹이 대규모 출자를 공식화하면서 사업 불확실성은 상당 부분 걷혔다.
이번 결정은 현대차그룹이 단순 업무시설이 아닌 R&D 통합 거점을 복정역에 배치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복정역 개발이 단순 부동산 개발을 넘어 산업 전략과 맞물린 사업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복정역 일대 개발은 하나의 축으로 보면 이해가 쉽다. 중심에는 총사업비 10조원 규모 복정역세권 복합개발사업이 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도시지원시설용지를 민간에 매각해 추진하는 프로젝트로 업무·상업·주거·문화 기능을 결합한 자족형 도시를 조성하는 것이 목표다. 부지 면적은 21만9681㎡로 축구장 약 30개 규모에 달한다. 개발업계에서는 규모가 삼성동 코엑스의 2배 안팎에 이른다고 본다.
/ 그래픽=시사저널e
해당 개발사업을 따낸 곳은 현대건설 컨소시엄이다. 컨소시엄은 2023년 LH로부터 해당 부지를 약 3조2498억원에 매입하는 조건으로 사업권을 확보했다.
복합개발사업 안에 들어가는 핵심 시설이 HMG 퓨처 콤플렉스다. 복정역세권 개발이라는 큰 틀 안에 현대차의 R&D 거점이 들어가는 구조다. 단순 입주가 아니라 전체 개발을 이끄는 앵커(핵심 시설) 역할을 맡는다. 대기업 연구시설을 중심으로 협력사와 관련 산업이 함께 유입되는 구조다. 연구 인력과 상주 인구가 늘어나면서 상업·주거 수요까지 동반 확대되는 효과가 기대된다.
포스코홀딩스의 글로벌 R&D센터도 복정역 일대 개발의 또 다른 핵심 축이다. 포스코홀딩스는 복정역과 인접한 위례 비즈밸리 내 약 1만7000평(축구장 8개 규모) 부지에 이차전지 소재, 수소, AI를 아우르는 미래 기술 연구 거점을 조성 중이다. 해당 사업은 복정역세권 복합개발사업과는 별도로 추진되는 프로젝트다.
포스코 글로벌 R&D센터는 지하 5층~지상 12층 규모로 조성된다. 글로벌 대학·연구기관과 협력해 이차전지, 수소, 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 연구개발을 수행할 예정이다. 성남시는 해당 시설이 완공될 경우 향후 10년간 약 16조원 경제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단일 연구시설 기준으로도 상당한 규모다.
두 개발 사업은 별도로 추진되지만 입지상 사실상 한 권역으로 볼 수 있다. 복정역 바로 옆에 위례신도시가 붙어 있고, 도로와 대중교통·상업·주거 시설도 함께 쓰는 구조다. 현대차그룹이 복정역세권 안에서 중심을 잡고, 포스코가 위례 비즈밸리에서 또 하나의 거점을 만드는 형태다. 두 축이 나란히 자리하면서 이 일대 전체에 기업과 연구 인력이 함께 모이는 효과가 기대된다.
교통 기능도 함께 확장되고 있다. 복정역 북측 장지동 일대에는 DL이앤씨 컨소시엄이 지하 4층~지상 15층 규모의 복합환승센터 조성을 추진해 왔다. 해당 사업은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공공 시행 역할을 맡고 민간 컨소시엄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계획됐다. 공동주택과 업무·판매시설이 결합된 복합개발 구조다.
/ 그래픽=시사저널e
다만 사업은 현재 표류 가능성이 제기된다. 토지매매 계약을 둘러싼 이견으로 SH가 사업협약 해제를 통보했고, DL이앤씨 컨소시엄이 이에 반발해 가처분 신청을 내며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향후 재공모 가능성도 거론되면서 사업 일정 지연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복정역은 서울 지하철 8호선과 수인분당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이다. 향후 위례선 트램 개통도 예정돼 있다. 현재도 잠실까지 약 11분, 선릉까지 약 16분이면 이동 가능하다. 수서역도 한 정거장 거리다. 강남과 판교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는 입지라는 점이 기업 입주 수요를 끌어들이는 배경으로 꼽힌다.
◇ 강남·판교 사이 마지막 대형 부지···대기업 유입 확대
복정역에 대기업이 몰리는 이유는 결국 입지와 부지의 희소성 때문이다. 강남은 이미 개발이 완료돼 대기업이 새로 대형 연구 거점을 만들 수 있는 땅이 부족하다. 판교도 1·2테크노밸리에 이어 제3테크노밸리까지 개발이 진행되며 포화 상태에 가깝다. 반면 복정역 일대는 위례신도시 개발 과정에서 확보된 도시지원시설용지와 역세권 개발 부지가 남아 있었다. 강남 접근성과 대규모 개발 가능 부지를 동시에 갖춘 곳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복정역의 가치가 부각된 것이다.
이번 개발의 핵심은 ‘사옥’이 아니라 ‘연구 기능’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일반 업무시설이 들어서면 상업·업무지 성격이 강해지지만 R&D센터가 들어서면 지역 성격은 달라진다”며 “연구 인력이 유입되고 협력 기업이 따라붙게 되면 관련 서비스와 주거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고 말했다. 이어 “판교가 IT 기업과 스타트업, 연구 조직을 기반으로 성장한 것처럼 복정역도 기업 R&D를 중심으로 도시 성격이 바뀔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복정역은 판교와 결이 다르다. 판교가 IT·플랫폼·게임 중심의 산업도시라면 복정역은 제조 기반 미래 산업에 가깝다. 현대차그룹은 AI, SDV, 로보틱스를 중심으로 한 미래 모빌리티 연구 조직을 배치한다. 포스코홀딩스는 이차전지, 수소, AI 연구 기능을 넣는다. 자동차와 철강이라는 전통 제조업이 AI와 결합하는 형태다. 이에 따라 복정역은 ‘제2 판교’라기보다 제조 기반 R&D 벨트의 새 축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 고도 완화·교통 변수···복정역 개발 향방 좌우
개발 여건도 좋아지고 있다. 복정동 일대는 최근 비행안전구역 규제가 완화됐다. 기존에는 최대 45m 수준의 높이 제한을 받았지만 완화 이후 최대 154m까지 건축이 가능해졌다. 고층 업무시설과 주거시설을 지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완화 대상 면적도 약 42만㎡로 작지 않다. 대형 업무시설과 주거시설을 함께 넣어야 하는 복합개발 입장에서는 개발 밀도를 높일 수 있는 중요한 변화다.
복정역 환승센터 복합개발사업 조감도. / 사진=서울주택도시공사
고도 제한 완화는 복정역 일대 스카이라인 변화로도 이어질 수 있다. 그동안 성남 수정구 일대는 군 공항과 관련된 규제로 개발 밀도에 제약이 있었다. 하지만 규제가 일부 풀리면서 복정역 주변에 고층 업무·상업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커졌다. 기업 입주와 고층 개발이 동시에 진행되면 복정역 일대는 현재의 저층·중밀도 생활권에서 업무·연구 중심의 고밀도 거점으로 바뀔 수 있다.
부동산 시장도 이미 기대감을 반영하고 있다. 복정동이 포함된 성남 수정구는 최근 수도권 평균보다 높은 아파트값 상승률을 보였다. 복정1지구 등 신규 분양 단지도 강남 접근성과 개발 기대감을 앞세워 관심을 받고 있다. 전용 84㎡ 기준 분양가가 12억~13억원 수준으로 거론되며 인근 위례신도시 주요 단지 시세와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개발 기대감이 먼저 가격에 반영되는 만큼 단기 과열 가능성은 변수다.
복정역 일대 변화는 기업 입주와 개발 속도에 달려 있다. 현대차그룹의 HMG 퓨처 콤플렉스와 포스코 글로벌 R&D센터, 복정역세권 복합개발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구조다. 기업·교통·상업·주거 기능이 단계적으로 맞물리며 도시가 형성될 전망이다.
서진형 광운대 부동산법무학과 교수는 “복정역 개발은 단순 부동산 사업이 아니라 산업 거점 재편 성격이 강하다”며 “대기업 R&D 시설이 들어오면 연구 인력과 협력 기업이 함께 유입되면서 지역 구조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 속도와 교통 인프라 구축이 맞물려야 효과가 나타나는 만큼 실제 변화는 단계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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