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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갑을' 바뀐 배터리 동맹…수입차 업체가 셀 3사에 러브콜 보내는 속사...

차량 내 인공지능(AI) 연산량이 급증하고 고성능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됨에 따라, 이를 뒷받침할 안정적인 고출력 전력 공급원이 필수적이다. 한국 배터리사들은 단순 셀 공급을 넘어, 완성차 설계 초기 단계부터...

'갑을' 바뀐 배터리 동맹…수입차 업체가 셀 3사에 러브콜 보내는 속사...

"배터리가 곧 브랜드"…검증된 하이니켈 기술의 '희소성'

IRA·CRMA 파고 속 '유일한 탈출구'…지정학적 전략 자산

SDV 시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결정한다

포르쉐코리아가 지난 19일 열린 '신년 기자 간담회'에서 올해 하반기에 출시될 예정인 '카이엔 일렉트릭'을 국내 최초로 소개했다. 카이엔 일렉트릭에는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 셀이 탑재된다. [사진=포르쉐코리아]

과거 완성차 업체와 부품사 사이에는 공고한 '갑을 관계'가 있었다. 완성차 업체가 규격을 정해 하청을 주면, 부품사는 이에 맞춰 최저가를 입찰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이 공식이 깨지고 있다. 특히 2026년 대대적인 차세대 전기차 라인업 출시를 앞둔 BMW,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포르쉐 등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한국 배터리 셀 제조 3사(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를 고객사로 확보하기 위해 유례없는 구애 작전을 펼치고 있다.

단순한 부품 공급을 넘어, 완성차의 성능과 브랜드 신뢰도를 좌우하는 '핵심 파트너'로 한국 배터리사가 급부상한 이유는 무엇일까.

22일 업계에 따르면 수입차 브랜드와 국내 배터리 셀 제조사 간의 협상 주도권이 변화하고 있다.

예전에는 수입차 브랜드가 주도권을 잡았다면, 최근에는 핵심 부품의 기술력 발전 등으로 동등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배터리사가 우위를 점하고 있다.

전기차 성능의 핵심인 배터리 공급량 부족과 완성차 업체의 내재화 기술 한계로, 수입차 브랜드들이 한국 부품 기업과의 협력을 강화하는 등 파트너십 형태의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 "배터리가 곧 브랜드"…검증된 하이니켈 기술의 '희소성'

프리미엄 수입차 브랜드들이 한국 배터리에 목을 매는 첫 번째 이유는 기술적 신뢰도다.

최근 저가형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의 공세가 거세지만, 주행거리와 출력, 안전성이 담보돼야 하는 프리미엄 세그먼트에서 하이니켈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의 대안은 사실상 한국 업체뿐이다.

실제로 BMW가 'i4', 'i5', 'i7', 'iX' 등에 하이니켈 기술이 적용된 삼성SDI 각형 배터리를 채택했고, 포르쉐가 지난 19일 국내에 최초로 공개된 '카이엔 일렉트릭'에 LG에너지솔루션 제품을 탑재한다고 밝힌 것은 "배터리의 품질이 곧 차량의 프리미엄 이미지를 결정한다"는 전략적 판단이 작용한 결과다.

검증되지 않은 배터리로 인한 리콜 리스크를 감당하기보다, 다소 높은 단가를 지불하더라도 확실한 품질의 'K셀'을 택해 브랜드 가치를 지키겠다는 계산이다.

이밖에 메르세데스-벤츠는 LG에너지솔루션과 미국(벤츠 계열사, 2029년 7월 30일~2037년 12월 31일), 유럽(벤츠 AG, 2028년 8월 1일~2035년 12월 31일)에서 총 107GWh(벤츠 계열사 75GWh, 벤츠 AG 32GWh) 규모의 배터리 공급에 대해 지난해 9월 계약한 바 있다.

계약 당시 LG에너지솔루션은 세부 내용을 밝히지 않았으나, 업계에서는 계약 제품이 차세대 원통형 배터리인 '46시리즈'인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2024년 10월 벤츠와 북미 및 기타 지역에서 50.5GWh 규모의 전기차 배터리 공급 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 LG에너지솔루션은 벤츠와 총 150GWh 이상의 '배터리 혈맹'을 구축했다.

벤츠 CLA, CLC EV, EQC 등이 대표적인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한 차량이다.

아우디는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배터리를 채택해왔고, 볼보는 'XC40 리차지', 'C40 리차지'에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를 탑재했다.

◇ IRA·CRMA 파고 속 '유일한 탈출구'…지정학적 전략 자산

글로벌 공급망의 지정학적 변화는 한국 배터리 셀 메이커들의 몸값을 더욱 높였다.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유럽의 '핵심원자재법(CRMA)'은 중국산 배터리 및 소재 의존도를 낮출 것을 강제하고 있다.

글로벌 수입차 업체 입장에서 중국 배터리사는 '가성비'는 좋지만 '리스크'가 크다.

반면 한국 배터리 3사는 이미 북미와 유럽 현지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확보하고 있으며, 소재 공급망 다변화에도 가장 앞장서 있다.

완성차 업체들로서는 규제 장벽을 넘기 위해 한국 업체와의 합작법인(JV) 설립이나 장기 공급 계약 체결이 선택이 아닌 '생존 전략'이 된 셈이다.

◇ SDV 시대, 하드웨어가 소프트웨어를 결정한다

2026년은 본격적인 'SDV(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의 원년이 될 전망이다. 차량 내 인공지능(AI) 연산량이 급증하고 고성능 자율주행 기능이 탑재됨에 따라, 이를 뒷받침할 안정적인 고출력 전력 공급원이 필수적이다.

한국 배터리사들은 단순 셀 공급을 넘어, 완성차 설계 초기 단계부터 협업하며 '시스템 최적화'를 지원한다. 차량의 운영체제(OS)와 배터리 관리 시스템(BMS)이 유기적으로 연동돼야 하는 SDV 구조상, 풍부한 협업 경험을 가진 한국 엔지니어링 인력과의 파트너십은 수입차 브랜드들이 놓칠 수 없는 핵심 자산이다.

이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과 한국 배터리사의 관계는 단순한 구매자와 판매자를 넘어섰다. 공장을 함께 짓고(JV), 수조원대 선급금을 지급하며 공급권을 확보하는 모습은 과거 부품사 대우와는 천양지차다.

물론 중국 업체들의 기술 추격과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내재화 시도는 여전한 변수다.

그러나 당분간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주도권은 '누가 더 안정적이고 고성능의 배터리 셀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26년 도로 위를 달릴 수입 신차들의 심장에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배터리가 탑재되는 비율이 높아질수록, K배터리 셀 제조사들의 위상은 단순한 제조업을 넘어 글로벌 모빌리티 생태계의 '게임 체인저'로 굳건해질 전망이다.

이호근 대덕대학교 미래자동차과 교수는 "완성차 업체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어떻게든 배터리를 내재화하기를 원할 것"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배터리 셀 제조사로부터 기술을 이전받거나 노하우를 알기 위해 합작법인 설립을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장기적으로 보면 미래차는 IT 기반이기 때문에, 반대로 배터리 회사들 입장에선 '우리가 배터리에 대한 키(key)만 쥐고 있으면 자동차는 언제든지 파운드리 회사를 통해 만들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다"며 "이런 역학관계가 있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와 배터리 셀 업체가 과거 '갑과 을' 관계에서 '합작법인을 만드는 관계'로 진화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는 "전기차에서 배터리를 제외한 나머지 부품들은 어느 회사에서든 다 만들 수 있다. 기술이 평준화돼 있다"며 "전기차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이 배터리에 집약돼 있으니, 이런 측면에서 배터리 셀 메이커들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굿모닝경제 이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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