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이후로 달라진 게 별로 없네요. 매해 지적해도 큰 변화가 없어 답답합니다.”
최근 경기 시흥시 SPC그룹 계열사 삼립 시화공장에서 작업 중이던 노동자 2명이 손가락 절단 사고를 당한 가운데, 이를 지켜본 국회 기후에너지환경노동위원회 소속 한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SPC 대응을 지켜본 그는 반복되는 사고 양상에 대해 “새삼스럽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2022년 평택 SPL 공장 내 20대 근로자 끼임 사망사고 이후 SPC 계열사에서는 해마다 유사한 산업재해가 이어지고 있다. 2022년부터 2024년까지 삼립·SPL·샤니 등 SPC그룹 주요 사업장에서 끼임과 절단 사고로 현장 노동자들이 중상을 입거나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고, 2025년 시흥 시화공장 사망사고에 이어 2026년에는 같은 공장에서 화재와 절단 사고가 발생했다. 최근 5년간 확인된 사고만 10건에 달한다.
비슷한 사고가 반복된 이후 SPC의 대응 방식도 비슷한 패턴을 보였다. SPC는 사고 이후 대표이사 교체와 조직 정비로 대응해 왔지만, 유사한 사고는 계열사를 달리하며 지속됐다. 사후 조치는 있었지만, 현장의 안전 수준을 근본적으로 바꿨다고 보기는 어려운 이유다.
잇따른 산재로 전 국민의 공분을 사면서 SPC는 올해 초 지주사 체제로 전환하며 파리크라상 사명을 ‘상미당홀딩스’로 변경했고, 지난 3월에는 주력 계열사 SPC삼립에서 ‘SPC’ 명칭까지 떼내며 조직 쇄신과 안전 문화 강화를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가 발표된 지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산재 사고가 발생했다.
반복된 사고의 배경으로는 부실한 안전 관리와 투자 집행의 불일치가 지적된다. 2022년 사고 이후 약속했던 1000억원 규모의 안전 투자에도 불구하고 산업재해는 계속됐고, 실제 설비투자 규모는 다시 감소했다. 또한 사업보고서만으로는 안전 관련 예산의 구체적 집행 내역도 확인하기 어려워, 안전 강화가 선언에 그친 게 아닌가 하는 의심도 든다.
이 같은 한계는 책임 구조와 맞닿아 있다. 사고가 발생하면 책임은 개별 계열사 대표와 현장에 집중된다. 반면 그룹 차원의 투자와 인사, 생산 방향에 영향을 미치는 오너의 역할과 책임은 상대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계열사 대표들이 주로 증언대에 섰고, 오너는 반복되는 사고에 대해 직접 설명하는 경우가 드물었다. 게다가 등기이사가 아닌 허영인 SPC그룹 회장은 반복된 사망사고와 관련해 법적 처벌을 받지 않았고, 대신 별도 안전 책임자를 두는 방식으로 책임이 분산됐다. 이는 노동자 보호를 위해 도입된 중대재해처벌법이 실제 적용 과정에서 책임의 범위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현행 법은 ‘경영책임자’를 처벌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현실에서는 등기이사인 대표이사가 책임의 중심에 선다. 반면 오너가 등기이사가 아닐 경우 법적 책임에서 벗어날 여지가 있다. 그 결과 핵심 의사결정 권한과 법적 책임이 분리되면서, 사고가 반복돼도 책임은 현장과 개별 경영진에 머무르고 오너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위치에 놓이게 된다.
이러한 현상은 SPC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HDC현대산업개발의 광주 화정 아이파크 아파트 붕괴, GS건설의 인천 검단 지하주차장 붕괴, DL이앤씨 여천공장 사망사고, 포스코이앤씨 내 잇따른 산재 사망사고 등에서도 유사한 양상이 반복됐다. 사고는 반복됐지만 책임의 범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근본적인 개선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결국 반복되는 산업재해는 현장 관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안전 투자와 인사, 생산 방식에 대한 결정이 어디에서 이뤄지는지, 결정에 대한 책임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법이라면 효과는 현장에서 입증돼야 한다. 사고가 반복되고 있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이 의도한 방식으로 작동하고 있는지 점검해야 한다. 무엇보다 실질적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이 일치하도록 제도를 보완하고, 총수 역시 책임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법 전반에 대한 재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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