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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SK하이닉스의 승부수] ① 왜 지금 ADR인가

TSMC와 삼성전자는 해외 투자자 기반을 통해 자본 접근성을 확대해 온 반면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국내 중심의 투자 구조에 머물러 왔다. 글로벌 AI 반도체 경쟁이 대규모 투자 경쟁으로 전환된 상황에서 이 같은...

[SK하이닉스의 승부수] ① 왜 지금 ADR인가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 공장 전경. / 사진 제공=SK하이닉스

SK하이닉스가 미국 주식예탁증서(ADR) 상장을 발표하며 글로벌 자본시장 편입에 나섰다. 인공지능(AI) 반도체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대규모 투자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왕좌를 거머쥐었음에도 투자 경쟁에서 뒤처질 경우 향후 주도권을 내줄 수 있다는 절박함이 반영됐다. 이번 ADR 추진은 단순한 자금 조달을 넘어 10년 후 SK하이닉스의 생존을 가를 승부처가 될 전망이다.

규제 부담 줄이고 자본 접근성 높이고

SK하이닉스는 지난 24일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ADR 상장을 위한 등록신청서(Form F-1)를 비공개로 제출했다. 앞서 지난해 12월 SK하이닉스의 ADR 추진 가능성이 제기된 이후 약 3개월 만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가 약 10조~15조원 규모의 ADR 발행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약 100억달러에 달하는 수준으로, 미국에 ADR을 상장한 국내 기업 가운데 최대 규모다.

회사 측은 "연내 상장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으나 현재 상장 공모의 규모, 방식, 일정 등 세부사항은 확정되지 않았다"면서 "최종 상장 여부는 SEC의 등록신청서 검토, 시장 상황, 수요예측 및 기타 제반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결정될 예정이다"고 밝혔다.

ADR(American Depositary Receipts)은 쉽게 말해 해외 기업의 주식을 미국에서도 사고팔 수 있게 만든 '대신 거래용 증권'이다. SK하이닉스 주식은 한국 증시에만 상장돼 있어 국내에서만 거래할 수 있지만 ADR을 발행하면 미국 투자자도 뉴욕 증시에서 달러로 해당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 이때 미국 투자자는 실제 한국 주식을 직접 사는 대신 그 주식을 맡겨두고 발행한 ADR이라는 증권을 거래하게 된다.

SK하이닉스가 직접 상장이 아닌 ADR 방식을 택한 것은 미국 증시 직접 상장에 따르는 절차와 규제 부담을 완화하는 동시에 기존 주주 보호를 고려한 전략으로 해석된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이 25일 이천 본사에서 열린 제78기 정기주주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 사진 제공=SK하이닉스

직접 상장의 경우 미국 회계 기준과 공시 체계에 맞춘 추가적인 대응이 필요하고 기업 구조와 내부 통제 시스템 전반을 이에 맞게 정비해야 하는 부담이 뒤따른다. 반면 ADR은 기존 상장 주식을 기반으로 발행되는 만큼 절차적 부담을 상대적으로 줄이면서도 미국 투자자 접근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빠르게 대규모 자금이 투입돼야 하는 반도체 산업 특성상 효율적인 선택이라는 평가다. 동시에 기존 주주 입장에서도 국내 상장 체계가 유지되는 만큼 거래 환경이나 지분 구조에 급격한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 낮아 부담이 제한적이다.

미국은 글로벌 반도체 투자 자본이 집중된 시장이자 SK하이닉스의 주요 고객사인 빅테크 기업들이 포진한 지역이다. ADR을 통해 미국 투자자들의 접근성을 높일 경우 만성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안정적인 자금 조달 창구를 확보할 수 있게 된다. 업황에 관계없이 지속적이고 꾸준한 투자가 가능해진다는 말이다. 게다가 고금리 기조가 장기화되는 가운데 국내 회사채 시장에 의존하기보다 AI 섹터에 대한 프리미엄이 붙어 있는 미국 시장에서 직접 자금을 수혈하는 것이 조달 비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

결국 ADR은 국내 시장을 이탈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기반을 유지하며 글로벌 자본시장과 물리적으로 연결되는 교량을 만드는 데 목적이 있는 셈이다.

AI 칩 시대 '쩐의 전쟁'…자본 없인 경쟁 불가

그렇다면 왜 지금일까. SK하이닉스가 현시점에 ADR 상장을 추진하는 일차적 배경은 반도체 투자 사이클의 가속화다. 현재 반도체 산업은 범용 D램 중심에서 HBM 등 맞춤형 제품 중심으로 체질이 변하고 있다. 특히 HBM4(6세대) 양산 체제 전환을 앞둔 현시점의 설비투자(CAPEX) 규모는 과거와 궤를 달리한다.

실제 SK하이닉스의 최근 CAPEX 규모를 보면 투자 사이클의 가속도가 뚜렷하다. 2023년 업황 침체기에도 조단위 투자를 단행했지만 2024년부터는 AI 반도체 수요 급증에 대응해 전년 대비 약 90% 늘어난 약 16조원 수준까지 늘렸다. 지난해에는 당초 22조원 안팎으로 추정되던 계획을 HBM 수요 가시성 확대에 맞춰 약 30% 증액해 29조원 수준으로 상향 조정한 것으로 알려진다.

올해는 이보다 더 공격적인 투자가 예상된다. 업계에서는 SK하이닉스의 올해 설비투자가 30조원을 넘어 많게는 40조원 안팎까지 확대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HBM4 양산을 위한 청주 M15X와 용인 클러스터 1단계, 미국 인디애나 고급 패키징 공장 등 동시에 추진되는 대형 프로젝트를 감안하면 향후 몇 년간 연간 수십조원 단위의 설비투자가 반복될 전망이다.

SK하이닉스 충북 청주 소재 팹 'M15X' 조감도. / 사진 제공=SK하이닉스

이 같은 상황에서 영업활동으로 벌어들이는 현금만으로는 투자 속도를 맞추는 데 한계가 있다. AI 투자 사이클이 본격화되는 현시점에서 선제적인 투자 여부는 향후 5~10년의 시장 지위를 좌우하는 핵심 변수다. 기존 내부 유보금이나 국내 조달 방식만으로는 속도전을 뒷받침하기 어렵다는 위기감이 ADR 추진의 동력이 된 셈이다. 곽노정 SK하이닉스 사장도 최근 주주총회에서 100조원 이상의 순현금을 확보해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를 지속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TSMC와 삼성전자는 해외 투자자 기반을 통해 자본 접근성을 확대해 온 반면 SK하이닉스는 상대적으로 국내 중심의 투자 구조에 머물러 왔다. 글로벌 AI 반도체 경쟁이 대규모 투자 경쟁으로 전환된 상황에서 이 같은 자본 조달 구조의 차이는 곧 투자 속도 격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SK하이닉스가 글로벌 플레이어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자본 조달 구조 역시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다변화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ADR은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수단으로 단순한 선택을 넘어 글로벌 리더로 생존하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라는 평가가 나온다. 하반기 상장이 성사될 경우 SK하이닉스는 글로벌 투자자 기반을 확보하며 자본 접근성을 한층 강화하게 된다. 이는 곧 투자 여력 확대로 이어져 생산능력과 점유율 경쟁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SK하이닉스의 ADR 상장은 국내 기업이 글로벌 AI 반도체 경쟁에서 자본 격차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하나의 해법이 될 수 있다"면서 "하반기 상장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유지 측면에서도 의미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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