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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PO, 우리가 가진 모든 걸 쏟아부을 시간

“사실 심플할 수도 있다. 우리는 플레이오프에 오면 버릴 건 버리고 집중해야 할 것만 집중한다. 그런 방식이 작년이나 올해나, 정규 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력이 좋아지는 이유인 것 같다.”

KT 고동빈 감독. 라이엇 게임즈 제공

“사실 심플할 수도 있다. 우리는 플레이오프에 오면 버릴 건 버리고 집중해야 할 것만 집중한다. 그런 방식이 작년이나 올해나, 정규 시즌보다 플레이오프에서 경기력이 좋아지는 이유인 것 같다.”

KT 롤스터 고동빈 감독의 말이다. 그는 30일 2026 LoL 챔피언스 코리아(LCK)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경기에서 디플러스 기아를 3대 0으로 꺾은 직후 기자회견에서 “KT는 작년부터 플레이오프에 접어들면 경기력이 향상되는 것 같다”는 평가에 대해 이처럼 답했다.

플레이오프는 한 시즌의 마무리 단계다. 한 번, 두 번 지면 그대로 1년 농사가 끝난다는 압박감이 선수들에게 무겁고 크게 다가온다. 신체 능력보다 집중력과 연산 능력에 더 많이 기대는 e스포츠인 만큼 그런 정신적 과부하는 기성스포츠보다 더욱 큰 영향을 미친다.

여기에 평소 겪어보지 못한 BO5, 5판3선승제 경기 방식도 ‘맞으면서 배워야만’ 한다. 다전제 경험이 적다면 선수든, 코칭스태프든, 팀이든 반드시 한번은 걸려 넘어진다. BO5 방식은 밴픽뿐 아니라 실제로 플레이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게 여러 선수의 공통된 증언이다.

그래서 경험 많은 선수나 지도자라면 KT의 고동빈 감독처럼 자신만의 플레이오프·BO5 노하우가 있다. 가령 고 감독의 ‘선택과 집중’ 노하우는 그가 오랜 선수 생활을 포함해 여러 번 플레이오프와 LoL 월드 챔피언십을 겪으면서 스스로 체득한 것들일 터다.

BLG ‘바이퍼’ 박도현. 라이엇 게임즈 제공

다른 선수나 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바이퍼’ 박도현은 2023년 인터뷰에서 “결승 같은 큰 무대에서는 후반 밸류를 챙긴 조합으로 게임하는 게 심리적으로 안정되고 상대의 실수도 유발하는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박도현은 “플레이오프는 분위기부터 다르다. 나는 플레이오프를 보기도 하고 치르기도 하는데 정규 리그 경기보다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한다고 느낀다. 예를 들어서 상대가 근처에 정글러 있는 척을 하거나, 오브젝트 싸움을 포기하지 않은 척 블러핑을 하면 당하는 선수나 팀으로선 한 번 더 고심하게 된다”고 말했다.

“변수를 없애고 싶은 마음, 안정된 선택을 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상대가 도박수를 던지면 잘 당한다. 오히려 반대로 묵직하게 게임하는 선수들한텐 이런 게 잘 안 통하기도 한다. 사람마다 다르긴 할 것이다. 정규 리그와 플레이오프를 똑같이 플레이하는 선수도 분명 있다고 생각한다.”

박도현은 ‘똑똑하게 게임하는 선수’의 대표적인 예다. 2018년부터 산전·수전을 다 겪어본 그는 지난 경기들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의 플레이가 BO5의 첫 세트부터 5세트까지 어떻게 변하는지까지도 분석해놨다. 아는 게 힘이라는데, 그는 그 힘을 누구보다 잘 이용해 여러 차례 우승했다.

“개인적으로는 경기가 진행될수록 평소와 비슷한 플레이를 하게 된다. 첫 두 세트는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평소와) 비슷한 플레이를 할 수는 있는데 ‘여기서 이런 플레이를 해도 될까?’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시리즈가 3~5세트에 다다르면 평소처럼 손이 가는 대로, 눈에 보이는 대로 게임하게 된다.”

JDG 시절 ‘룰러’ 박재혁. 라이엇 게임즈 제공

마찬가지로 베테랑인 ‘룰러’ 박재혁도 2023년 인터뷰에서 비슷한 의견을 낸 적이 있다. 그는 그해 LPL 서머 시즌 결승전 5세트에서 리닝 e스포츠(LNG)가 원거리 딜러로 직스를 고른 것을 두고 “직스는 고를 만한 챔피언이 맞다. 하지만 5세트에서는 꺼내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5세트일수록, 중요한 경기일수록 후반 밸류 픽을 뽑아야 한다”고 말했다.

“플레이오프나 결승전같이 중요한 경기 5세트가 되면 게임이 길어지기 마련이다. 사람이 하는 게임이다. 아무리 유리해도 안전하게 하려는 마음이 생긴다. 불리한 팀한테 기회가 올 수밖에 없다. 평소보다 파밍 시간 1분, 코어 아이템 1개가 더 생기게 된다. 그래서 (스노우볼을 굴려야 하는) 직스는 5세트에 꺼내면 안 된다.”

물론 그때의 직스와 지금의 직스는 다르다. 드래프트 진행 방식이 다르고, 메타가 다르다. 하지만 박재혁이 월즈 선발전을 비롯해 여러 차례 노 코인 풀 세트 승리를 거뒀던 역사를 떠올린다면, 그리고 그 경기들이 대부분 장기전이었던 것까지 고려한다면 당시 그의 게임론(論)은 제법 설득력이 있게 다가온다.

“담원 기아와의 2022 LCK 스프링 시즌 플레이오프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LNG와의 결승전보다 불리한 게임이었는데 결국 내가 성장할 기반이 마련되더라. 나는 작년부터 ‘5세트는 밸류 픽이 정답’이라는 게임론을 세웠다.”

T1 ‘케리아’ 류민석. 라이엇 게임즈 제공

T1과 ‘케리아’ 류민석은 왜 29일 BNK 피어엑스와의 플레이오프 1라운드 경기 5세트에서 1픽으로 레나타 글라스크를 뽑았을까? 이 역시 지난해부터 피어리스 5세트를 여러 번 치러 보며 류민석이 자신만의 피어리스 드래프트에서의 밴픽 철학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류민석은 “피어리스로 5세트를 많이 치러본 결과 라인전을 리드하는 픽을 먼저 고르기보다는 (라인전을) 어느 정도 버티면서 조합의 완성도를 높이는 조합을 짜는 게 더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5세트까지 갈 때마다 피부로 느꼈다. 그런 점을 고려했을 때 레나타가 더 조합을 짜기 편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플레이오프 무대부터가 진짜들의 시간이요, 영웅호걸들의 시간이다. 베테랑들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들을 조금씩 녹여내는 것을 보는 재미가 있다. 신인급 선수들이 미지에 대한 공포와 떨림을 이겨내는 걸 지켜보는 재미도 있다. 리그 오브 레전드(LoL) e스포츠는 늘 이 즈음부터가 제일 재미있다.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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