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S일렉트릭 청주공장에서 작업자들이 UL인증 배전 기기를 점검하고 있는 모습. 사진=LS일렉트릭
LS일렉트릭이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시장에서 대형 수주를 또 한번 따냈다. 고압 배전반 등 핵심 전력기기 공급을 앞세워 북미 데이터센터 전력망 시장에서 입지를 넓히고 있는 모습이다.
LS일렉트릭은 미국 현지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용 마이크로그리드에 들어가는 고압 배전반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고 20일 밝혔다. 계약 규모는 약 6400만달러(한화 약 960억원)다. 사업 기간은 오는 12월부터 내년 8월까지다.
이번에 공급하는 제품은 38kV(킬로볼트)급 고압 배전반 솔루션이다. 배전반은 발전소나 변전소에서 받은 전기를 데이터센터 내부 설비에 안정적으로 분배하고 이상 전류가 발생했을 때 전력 계통을 보호하는 핵심 장비다. 데이터센터는 서버와 냉각 설비가 24시간 가동돼야 하는 만큼 전력 공급 안정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순간적인 정전이나 전압 이상도 서비스 장애와 대규모 손실로 이어질 수 있어 고신뢰성 전력기기 수요가 커지고 있다.
이번 수주는 북미 데이터센터 전력 조달 방식이 바뀌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과거 데이터센터는 대형 전력회사로부터 전기를 공급받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최근에는 AI 데이터센터와 고성능컴퓨팅(HPC) 설비가 늘면서 필요한 전력 규모가 급격히 커졌고, 전력망 접속 대기 시간이 사업 추진의 병목으로 떠올랐다.
실제 미국 일부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를 지어도 전력망 연결까지 수년이 걸리는 사례가 늘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미국 내 전력망 접속 대기 기간이 일부 지역에서 3년에서 7년에 이를 전망이다.
빅테크 기업과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은 전력 확보 전략을 바꾸고 있다. 기존 전력망 연결을 기다리는 대신 데이터센터 부지 안팎에 발전 설비, ESS(에너지저장장치), 배전 설비를 함께 구축하는 온사이트 전력 공급 모델에 관심을 키우는 것이다.
마이크로그리드는 태양광·풍력 등 재생에너지, 가스발전, ESS, 전력변환장치, 배전 설비를 하나의 소규모 전력망으로 묶어 운용하는 방식이다. 외부 전력망과 연계할 수도 있지만 필요할 경우 독립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어 데이터센터의 전력 안정성을 높이는 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국 규제 환경도 데이터센터 전력 조달 방식의 변화를 압박하고 있다. 미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는 대규모 데이터센터가 특정 발전소 전력을 직접 끌어다 쓰는 구조가 일반 소비자 전기요금과 전력망 안정성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주시하고 있다. FERC는 2024년 11월 펜실베이니아 원전과 아마존 데이터센터 간 전력 공급 확대를 위한 계통 연계 변경안을 거부한 바 있다. 당시 쟁점은 대규모 전력 수요자가 기존 전력망 비용을 충분히 부담하지 않은 채 특정 발전원의 전력을 가져갈 경우 계통 신뢰도와 비용 배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이 같은 흐름은 데이터센터 사업자들이 자체 전력 공급 체계를 갖추도록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AI 서버, ESS, 태양광 등은 모두 직류(DC) 기반 설비와 맞물려 있어 데이터센터 내부 전력망의 효율을 높이기 위한 DC 배전 수요도 함께 커지고 있다. 기존 교류(AC) 중심 전력망에서는 전기를 여러 차례 변환하는 과정에서 손실이 발생하는데, DC 배전은 변환 단계를 줄여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차세대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로 거론된다.
LS일렉트릭은 북미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고압 배전반, 차단기, 변압기 등 전력기기 공급 역량을 바탕으로 데이터센터 전력망 고도화 수요에 대응하고 있다. 앞서 북미 데이터센터 전력기기 공급 계약을 잇따라 체결하며 수주 실적을 쌓아왔다. 이번 계약까지 더해지면서 북미 데이터센터 시장에서 배전 솔루션 공급사로서 존재감을 키우는 모습이다.
사업 전략도 기기 납품 중심에서 종합 전력 솔루션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이엔드 전력기기와 배전반 공급에 그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 가스발전, ESS, 직류 배전 등을 연계한 스마트에너지 사업 모델을 강화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전력 인프라 시장이 단순 장비 발주를 넘어 발전·저장·배전·제어를 통합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AI 데이터센터 확산이 전력기기 업체들에 구조적인 성장 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 데이터센터 한 곳에 필요한 전력 규모가 커질수록 변압기, 배전반, 차단기, 전력제어 시스템 등 핵심 장비 수요도 함께 늘어난다. 여기에 미국 노후 전력망 교체와 제조업 리쇼어링, 재생에너지 확대까지 맞물리면서 북미 전력 인프라 투자는 중장기 성장 국면에 들어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LS일렉트릭 관계자는 "AI 데이터센터 전력 공급에는 막대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있는 고효율 전력망과 중단 없는 안정성이 필수"라며 "연속 수주로 입증한 기술력을 앞세워 빠르게 성장하는 북미 마이크로그리드 시장에서 입지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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