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 산업의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 더 정교한 휴머노이드를 만드는 경쟁에서 다양한 로봇을 현장에서 함께 굴리는 경쟁으로 RX의 큰 그림이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변곡점을 가장 빠르게 포착한 국내 사업자 중 하나가 카카오모빌리티다.
로봇을 직접 제조하지 않는다. 대신 호텔, 병원, 물류창고 안에서 서로 다른 제조사의 로봇들을 한 플랫폼으로 묶어 운영하는 사업자가 되겠다고 선언했다. 택시 호출에서 다듬은 배차 로직을 로봇 운영에 그대로 이식하겠다는 발상이다.
LG CNS의 피지컬웍스, 네이버의 아크마인드와 한 줄에 놓인다. 다만 출발점이 다르다. 로봇 전환(RX) 시장에서 '제조'가 아닌 '운영'에 자기 자리를 잡은 사업자가 한국에서 또 한 곳 나타난 셈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12일 경기 성남시 판교 아지트에서 '로봇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와 플랫폼의 역할'을 주제로 미디어 스터디를 열고 자체 로봇 플랫폼 'KM 오토노머스 에이전트 플랫폼'의 전략과 기술 구조를 공개했다. 강은규 미래사업플랫폼 리더와 오두용 로봇개발 리더가 발표를 맡았다.
강 리더가 가장 먼저 짚은 지점은 산업의 무게추 변화다.
그간 로봇 산업은 '얼마나 정교하게 움직이는 기계를 만드느냐'에 집중해왔다. 하지만 하드웨어 기술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경쟁의 축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그는 "이제 로봇은 제조가 아니라 운영의 시대"라며 "단일 기기의 성능보다 여러 기기를 통합 최적화하는 소프트웨어와 플랫폼이 차별화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카카오모빌리티 자율주행택시. 사진=카카오모빌리티
카카오모빌리티가 제조가 아닌 운영을 택한 배경에는 회사가 보유한 데이터 자산이 자리한다. 카카오T를 통해 축적해 온 모빌리티 운영 노하우와 이동 데이터, 그리고 호텔·병원·복합시설 같은 공간 단위의 운영 경험이 핵심 무기다.
강 리더는 "카카오모빌리티는 그동안 대한민국의 이동을 책임져 온 회사이고 로봇 역시 이동 영역의 확장"이라며 "그 이동이 실내로 들어오고 창고 안으로 들어가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차량을 부르고 배정하고 경로를 관리하던 시스템이 그대로 로봇 한 대 한 대를 배정하고 경로를 관리하는 데 쓰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기술 구조 자체가 택시 배차 로직과 닮았다. 오두용 리더는 "승객이 택시를 호출하면 주변 택시 중 최적의 차를 배정하듯 서비스 요청이 들어오면 현재 가용한 로봇 중 최적의 로봇을 선택한다"며 "카카오모빌리티가 축적한 배차 기술의 DNA가 로봇 플랫폼에 그대로 들어가 있다"고 말했다.
매력적인 가동 로드맵이다. 실제로 호텔 객실에서 수건 배송 요청이 들어오면 플랫폼은 곧장 특정 로봇에 명령을 내리지 않는다. 요청을 로봇이 수행할 수 있는 단위인 '태스크'로 변환한 뒤 현재 대기 중인 로봇의 위치, 배터리 잔량, 이미 수행 중인 작업의 잔여 시간을 종합해 가장 적합한 로봇을 자동 배정한다는 설명이다.
중간에 통신 장애나 경로 차단이 발생하면 다른 로봇으로 업무를 재할당하는 '리얼로케이션' 기능도 작동한다. 오 리더는 "플랫폼의 능력은 실패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실패를 자동으로 다루는 것"이라며 "로봇이 멈춰도 서비스는 멈추지 않는 것이 핵심 가치"라고 강조했다.
여기에 또 하나의 결정적 자산이 더해진다. 건물 인프라 통합 제어다.
로봇이 실제로 일하려면 엘리베이터를 타고 자동문을 통과해야 한다. 기존 방식은 로봇 제조사마다 엘리베이터·자동문과 각각 별도로 연동해야 했다. 로봇이 다섯 종류면 엘리베이터 입장에서 다섯 번의 연동이 필요했던 셈이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를 플랫폼이 직접 제어하는 구조로 풀었다. 제조사는 한 번만 표준 API로 연동하면 되고 엘리베이터 호출과 문 개방, 이동 상태 모니터링은 플랫폼이 담당한다. 공간 데이터를 다루던 회사가 자연스럽게 챙긴 영역이다.
성과는 검증됐다. 가장 두드러진 사례는 신라스테이 서초점이다. 기존에는 룸서비스를 전화로 주문하고 사람이 직접 가져다주거나 특정 시간대에는 손님이 직접 픽업해야 했다. 그러나 카카오모빌리티가 로보티즈 배송 로봇과 QR 주문 시스템을 함께 연동한 뒤 룸서비스 매출이 약 3배 늘었다. 현재 10여 개 호텔에서 같은 모델이 가동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병원 사례도 인상적이다. 포항 세명기독병원에서는 간호사가 한 시간에 두 번씩 지하 약국에서 병동으로 약을 박스째 운반하던 업무를 로봇이 대신한다. 강 리더는 "간호사들이 본인의 시간을 환자 케어에 더 쓸 수 있게 됐고 병원 서비스 품질도 함께 올라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업계에서 주목하는 지점은 카카오모빌리티의 포지션이 LG CNS·네이버와 미묘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실제로 LG CNS는 SI 기업의 본업인 기간계 시스템 연동을 무기로 RX 사업에 진출했다. 네이버는 1784 사옥 전체를 RX 실험장으로 삼고 자체 OS인 아크마인드를 웹 기반 개방형 플랫폼으로 키우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다르다. 무기는 모빌리티 데이터와 공간 운영 경험이다. 차량 배차를 다듬으며 쌓은 실시간 최적화 알고리즘과 카카오T 시절부터 누적된 이동 패턴 데이터가 로봇 배정에 그대로 활용된다. 같은 RX 사업자라도 어떤 자산을 기반으로 들어가느냐에 따라 다른 색깔의 플랫폼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강 리더는 LG CNS의 로봇 전략을 두고 "한편으로는 기뻤다. 로봇 플랫폼이 중요한 산업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 같았다"며 "카카오모빌리티의 강점은 산업 현장에서 사용자들이 로봇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어떻게 써야 하는지에 대한 유스케이스 발굴 능력"이라고 답했다. 정면 경쟁보다 시장 확장을 강조하는 어조다.
다만 로봇 제조사가 직접 통합 플랫폼을 운영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호했다. 강 리더는 "테슬라 휴머노이드와 로보티즈 배송 로봇이 한 공간에 들어와 있다면 통합 플랫폼을 위해 두 제조사가 협업해야 하는 구조가 되는데 그 자체가 어렵다"며 "오히려 로봇을 제조하지 않는 카카오모빌리티 플랫폼에 연동하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다"고 말했다. 제조사들 사이를 매끄럽게 잇는 중립적 플랫폼 사업자가 필요하다는 논리다.
한편 카카오모빌리티는 향후 배송 로봇을 시작으로 청소, 안내, 대형 물류 로봇까지 플랫폼 수용 범위를 확장한다는 방침이다. 건물 인프라 연동을 넘어 기업 ERP와 물류 자동화 설비까지 연결 범위를 넓힐 계획도 잡혀 있다. 글로벌 진출도 모색한다. 강 리더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회사 차원에서 계속 노력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플랫폼이 현장에서 쉽게 활용될 수 있도록 만들어 두면 해외에서도 서비스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고 밝혔다.
오 리더는 "이기종 로봇 연동 API를 통해 하드웨어 파트너들과 개방형 협력을 주도하고 로봇 서비스 생태계의 글로벌 표준을 선도해 나가겠다"며 "현재 배달 로봇은 시작일 뿐이고 청소, 안내, 대형 물류 로봇까지 스스로 움직이는 모든 로봇이 플랫폼 안에서 유기적으로 작동할 수 있게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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