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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ICT광장] 또 하나의 '경우의 수'에 걸린 대한민국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내 ICT 핵심 산업은 유황·희귀가스 등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호르무즈 해협 물류에 의존하고 있어, 전쟁 장기화는 단순한 유가 충격을 넘어 공급망 전반의 재편을 강제할 수 있다. 산업...

[ICT광장] 또 하나의 '경우의 수'에 걸린 대한민국

중동의 화약고가 드디어 터졌다. 지난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은 이란 전역의 여러 지점과 도시에 기습 공습을 감행했고,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알리 하메네이와 다수의 관료들이 사망했다. 이에 맞선 이란은 이스라엘과 미군 기지가 있는 주변국들을 향해 미사일과 드론 공격으로 대응하고 있다.

전쟁이 격화되면서 글로벌 금융시장과 에너지 시장은 유례없는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다.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의 급등을 초래했으며, 항공 및 관광업의 중단과 금융시장의 변동성 심화를 불러일으켰다.

개전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전쟁은 4주 이내에 끝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하지만 전쟁 양상은 갈수록 주변국으로 확전 되는 모양새다. 전문가들이 전망하는 ‘경우의 수’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단기전 전망이다. 박현도 서강대 유로메나연구소 교수는 “이란의 미사일 재고 한계와 미군의 지상군 투입 기피를 고려하면 2~3주 내 대화 국면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강력한 협상 인센티브를 먼저 제시하지 않는다면 강 대 강 대치가 이어질 수 있다”라고 단서를 달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인터뷰에서 ‘4주’라는 시간표를 언급한 것 역시 사상자 발생 등을 초래할 장기전을 피하려는 계산이 반영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우리나라에는 매우 희망적인 ‘경우의 수’이지만 낙관하기는 어렵다.

둘째는 통제 불능의 확전과 장기전이다. ‘이슬람 문화 전문가’ 이희수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재래식 저강도 장기전으로 가게 되면 이란에 불리한 전쟁이 아니기에, 출구 없는 지루한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했다. 또한 “미국이 공습으로 이란 지도부를 타격해도, 새로운 후계자가 계속해서 이슬람혁명수비대의 지지를 받아 등장하기 때문에 정권교체는 불가능하다”라고 분석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역시 이란의 보복 대응 시나리오를 분석하면서 “이번 타격이 이란 내 강경파를 결집시켜 미국의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라고 우려했다. 이란 체제가 곧바로 무너지지 않고, 장기화될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두는 것이다.

이란은 정규전에서의 열세를 인정하면서도 드론·기뢰·에너지 봉쇄라는 비대칭 전략으로 미국의 ‘전쟁 비용’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11월 중간선거와 국내 인플레이션 압박을 받으며 자체 종전 선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전쟁의 길이는 군사력보다 정치적 판단과 중동 전체 불안정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우리나라는 증시가 급락과 급반등을 반복하며 반응했고, 코스피 지수가 6300까지 치솟으면 사상 초유의 강세장을 연출한 뒤 급격한 조정을 받고 있다. 원유 수입 의존도가 높은 대한민국 경제에 이번 전쟁은 단순한 외부 변수를 넘어 ‘생존의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다.

현대경제연구원이 지난 3월 3일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이 장기화되면 연평균 유가가 150달러 이상으로 치솟아 성장률이 0.8% 포인트 하락하고 소비자물가는 2.9% 포인트 급등할 것으로 분석했다.

한편, 일본에서 열린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예선에서 한국 야구 대표팀은 바늘구멍 같은 ‘경우의 수’를 뚫고 극적으로 8강에 진출했다. 승률과 최소실점률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상황은, 전쟁과 경제 역시 단순한 힘의 논리가 아니라 복잡한 변수의 함수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의 ‘경우의 수’에 걸린 대한민국. 미국의 이란 공습과 변덕스러운 트럼프 리스크의 결괏값으로 나타난 유가와 환율 상승 그리고 코스피의 폭락은 우리의 체력과 실력이 어느 지점에 있는지 시험대에 올려놓았다.

특히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국내 ICT 핵심 산업은 유황·희귀가스 등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호르무즈 해협 물류에 의존하고 있어, 전쟁 장기화는 단순한 유가 충격을 넘어 공급망 전반의 재편을 강제할 수 있다.

산업 현장의 공사업체들 역시 연초에 계획한 사업계획을 어디서부터 얼마나 수정을 해야 할지 쉽지 않은 과제를 떠안게 되었다.

전쟁은 먼 곳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는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체감된다. 세계가 복잡한 ‘경우의 수’ 속으로 들어가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낙관도 비관도 아닌 냉정한 대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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