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AFEELA 전면 중단, 전기차 전략 전면 수정
'소프트웨어 전환'에서 드러난 레거시 OEM의 한계
변화의 속도 앞서가는 현대차, 성과로 역량 검증해야
챗GPT로 생성한 AI 이미지입니다.
[오피니언뉴스=박정훈 기자] 전기차 경쟁의 승패를 가르는 기준이 전동화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의 단면은 일본을 대표하는 완성차 업체 혼다(HONDA)의 전략 후퇴에서 드러났다. 최근 혼다는 소니와 함께 추진해온 'AFEELA 프로젝트'의 중단을 선언하고 전기차 전략의 속도 조절에 나섰다. 이번 결정은 단순한 사업 실패가 아니라, 레거시 완성차 업체들이 SDV 전환 과정에서 직면한 구조적 한계를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
동시에 경쟁 구도가 재편되는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빠르게 전환을 추진 중인 현대자동차(이하 현대차)에게는 새로운 기회의 창이 열리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전략 수정의 배경, 흔들리는 EV 시장과 정책 리스크
혼다의 결정을 단순한 개별 프로젝트 실패로 보기는 어렵다. 이미 회사는 북미 시장을 겨냥했던 EV 라인업 계획을 대거 철회하며 전동화 전략 전반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미국 내 정책 환경 변화는 주요 변수로 작용했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 축소 가능성과 보호무역 강화 움직임은 일본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업체들에게 불리한 조건으로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외신에서는 북미 EV 시장이 정책 의존도가 높은 '인위적 성장 구간'에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아울러 금리 상승 기조는 소비자들의 고가 전기차 구매 심리를 위축시키고 있다는 점에서도 부담 요인으로 지목된다.
여기에 글로벌 수요 둔화도 영향을 미쳤다. 최근 북미와 유럽 주요 시장에서는 전기차 성장률이 둔화되는 흐름이 뚜렷하며, 가격 경쟁이 심화되고 있다.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와 테슬라의 공격적인 가격 전략은 기존 완성차 업체들의 수익성 구조를 압박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혼다는 약 2조 엔이 넘는 손상차손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이는 60년대 이후 처음으로 연간 적자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배경이 됐다. 특히 중국 OEM들은 내수 시장에서 확보한 규모의 경제를 바탕으로 글로벌 시장까지 가격 경쟁력을 확장하고 있다. 이로 인해 전통 OEM들은 단순한 기술 경쟁을 넘어 ‘원가 구조 경쟁’까지 요구받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혼다의 전략 수정은 "수익성이 담보되지 않는 전환을 중단한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이는 단기적인 시장 대응이라기보다 중장기 투자 우선순위를 재조정하는 성격이 강하다. 실제로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혼다가 하이브리드 중심 전략으로 일시 회귀할 가능성도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전동화 전환이 단일 경로가 아닌 ‘복수의 과도기 전략’을 필요로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AFEELA 1' 모델과 함께 자사의 SDV 계획을 소개하고 있는 카와니시 이즈미 소니 혼다 모빌리티 대표. 사진= AFEELA 공식 홈페이지
SDV 전환의 벽, 레거시 OEM의 공통된 한계
AFEELA는 차량을 단순 이동수단이 아닌 콘텐츠와 서비스를 결합한 SDV(소프트웨어 정의 차량) 플랫폼으로 구현하려는 혼다와 소니의 전략적 합작 프로젝트다. 프로젝트 중단의 진짜 의미는 전기차 자체보다 SDV 전략의 난항에 있다. 해당 프로젝트는 단순한 전기차가 아니라, 소니의 콘텐츠와 차량을 결합한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구현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혼다는 자체 차량 OS와 새로운 전자 아키텍처 개발에 투자해왔다. 이는 차량을 단순 이동수단이 아닌 디지털 플랫폼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의 일환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기존 제조업 중심 조직에게 매우 높은 기술적·조직적 허들을 요구한다.
그러나 글로벌 경쟁 환경은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중국의 신흥 전기차 기업들은 차량 개발 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하며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기반의 제품 경쟁력을 확보했고, 테슬라는 이미 차량을 하나의 플랫폼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레거시 OEM들은 복잡한 공급망 구조와 조직 체계로 인해 소프트웨어 중심 개발 체제로의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차량 전장 구조를 통합하는 '존 아키텍처'(Zone Architecture, 차량을 물리적 위치 단위로 분리해 각 영역에 전용 컨트롤러와 고성능 컴퓨팅을 배치하고 연결하는 설계 방식) 전환에서 큰 기술적 격차가 발생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니라 조직 문화와 개발 방식 전반의 변화를 요구하는 영역이다.
이러한 문제는 혼다만의 사례가 아니다. 포드는 차세대 전기차 아키텍처 프로젝트를 중단하며 전략을 수정했고, GM 역시 자율주행 및 전동화 투자에서 대규모 손실을 반영했다. 폭스바겐 또한 자체 소프트웨어 개발 조직 운영에 난항을 겪으며 외부 협력 확대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은 ‘내재화 실패 이후 협력 확대’라는 전략 수정이다. 이는 기술 주도권 확보와 개발 속도 사이에서 균형을 찾지 못한 결과로 해석된다.
결국 산업의 경쟁 축은 전동화에서 소프트웨어로 이동했지만, 기존 완성차 업체들은 이 전환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더 이상 엔진이나 플랫폼만으로 경쟁력을 설명하기 어려운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차량 판매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수익을 창출하는 '서비스 기반 모델'로의 전환 역시 중요한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완성차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 자체를 재정의하고 있다.
사진= IM증권
현대차, 기회의 창 앞에 서다?
이처럼 다수 레거시 OEM들이 전환 과정에서 구조적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이 바로 현대차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몇 년간 SDV와 자율주행을 핵심 축으로 조직과 전략을 재편해왔다. 글로벌 반도체 기업과의 협력 확대, 차량 소프트웨어 통합 플랫폼 개발, 자율주행 기술 내재화 등은 모두 이러한 흐름의 일환이다. 특히 내부적으로는 소프트웨어 인력 비중을 빠르게 확대하며 체질 개선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조직 구조 자체를 변화시키는 시도로 평가된다.
특히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변화의 속도 측면에서 경쟁사 대비 앞서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차세대 SDV 아키텍처를 적용한 시험 차량 공개 계획과 함께, 차량과 서비스를 통합하는 방향성 역시 글로벌 트렌드와 궤를 같이한다는 분석이다. 이는 하드웨어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 경쟁사들과 대비되는 지점이다. 일부 글로벌 모빌리티 매체들은 현대차를 '가장 빠르게 전환 중인 레거시 OEM' 중 하나로 평가하기도 했다. 이는 과거 대비 브랜드 위상이 변화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다만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은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신사업 가치가 빠르게 반영되며 밸류에이션 부담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결국 향후 관건은 기술 방향성이 아니라 실제 성과다. 투자자들은 자율주행과 SDV 전략이 구체적인 수익 모델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주목하고 있다. 특히 단기적으로는 기술 시연이 아닌 상용화 수준의 결과물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시장은 더 이상 가능성이 아닌 실행력을 평가하기 시작했다.
혼다의 후퇴는 단순한 실패 사례가 아니다. 그것은 전기차 시대의 경쟁이 얼마나 복잡해졌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그리고 동시에, 그 경쟁에서 앞서 나갈 수 있는 기업에게는 예상보다 빠르게 기회가 열리고 있음을 시사한다. 현대차가 그 기회를 현실로 만들 수 있을지, 이제 시장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향후 몇 년간 글로벌 완성차 산업은 ‘속도의 격차’가 ‘경쟁력의 격차’로 고착화되는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누가 '플랫폼 기업'으로 더 빨리 진화할 수 있을지가 승부를 가를 핵심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