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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ditor's Letter] 다시, 마트의 새벽을 연다

자동차 산업에서 메르세데스-벤츠가 판매 방식을 바꾸고, 반도체 산업에서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평가를 시도하는 흐름은 각기 다른 영역에 있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산업은 더 이상 제품만으로...

[Editor's Letter] 다시, 마트의 새벽을 연다

김호성 편집인/편집국장.

14년이라는 시간은 산업의 풍경을 바꾸기에 충분합니다. 누군가는 사라지고, 누군가는 독주하며, 또 누군가는 규제라는 이름 아래 제자리에서 버텨야 했습니다.

이코노믹리뷰의 1308호 커버스토리 ‘마트의 새벽’은 바로 그 시간의 무게를 되짚는 데서 출발합니다.

2012년 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은 분명한 목적을 갖고 있었습니다.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보호하고,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겠다는 사회적 합의였습니다.

그러나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법이 만들어낸 결과는 처음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는 평가가 적지 않습니다. 온라인은 규제의 바깥에서 성장했고, 오프라인은 규제 안에서 위축됐습니다. 산업의 균형은 그렇게 조금씩 기울어졌습니다.

이번 호를 준비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표현은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습니다. 실제로 지난 몇 년간 소비의 중심은 빠르게 온라인으로 이동했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장을 보고, 다음 날 새벽 문 앞에서 물건을 받아보는 일이 일상이 됐습니다. 반면 대형마트는 같은 시간, 같은 소비자를 두고도 다른 규칙 속에서 경쟁해야 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마트는 더 이상 강자가 아니다”라는 업계의 자조 섞인 목소리는 이번 이슈를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었습니다.

정치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벽배송 허용을 골자로 한 법 개정 논의가 본격화되면서, 14년 만에 ‘마트의 새벽’이 다시 열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단순한 규제 완화의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 구조의 재설계, 그리고 경쟁의 룰을 다시 쓰는 작업에 가깝습니다.

이 변화의 신호를 가장 빠르게 읽은 곳은 기업들입니다.

이마트는 SSG닷컴을 중심으로 ‘온라인 이마트’를 구축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배송, 신선식품, 멤버십이라는 세 축을 다시 정비하며 ‘장보기 플랫폼’으로의 전환을 선언했습니다. 단순한 채널 확장이 아니라, 소비 경험 전체를 다시 설계하려는 시도입니다.

롯데마트 역시 1조원 규모 투자를 바탕으로 ‘제타 스마트센터’를 구축하고, 네이버와 카카오 등 빅테크와 손잡으며 물류와 유통의 경계를 허물고 있습니다. 과거 ‘매장’이 경쟁력이었다면, 이제는 ‘데이터와 물류’가 경쟁력인 시대입니다.

이번 변화는 단순한 규제 완화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대형마트들은 오랜 기간 제약 속에서도 유통 생태계의 균형을 지키기 위한 방안을 고민해왔고, 이제는 보다 건전한 시장을 만들기 위한 경쟁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습니다.

새벽배송 허용 역시 이러한 흐름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소비자 편의 확대는 물론, 기존 오프라인 인프라를 효율적으로 활용해 물류 비용을 줄이고 유통 구조를 정상화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입니다. 동시에 농가, 협력사, 지역 파트너와의 연계를 강화하며 상생 기반을 넓히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커버스토리는 ‘허용 여부’ 자체보다, 그 변화가 만들어낼 새로운 질서에 주목합니다. 규제가 완화될 경우 어떤 방식의 경쟁이 펼쳐질지, 유통 기업들은 어떤 전략으로 시장을 재편해 나갈지, 그리고 소비자는 어떤 새로운 경험을 얻게 될지를 짚어봅니다.

이번 변화는 누군가의 몫을 나누는 ‘제로섬’이 아니라, 시장 전체의 효율과 선택지를 확장하는 방향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 과정에서 유통 산업이 얼마나 건강한 구조로 진화할 수 있을지도 중요한 대목입니다. 그 출발점이 바로 지금입니다.

이번 호에는 또 하나의 공통된 흐름이 있습니다. ‘경쟁 방식의 전환’입니다.

자동차 산업에서 메르세데스-벤츠가 판매 방식을 바꾸고, 반도체 산업에서 SK하이닉스가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새로운 평가를 시도하는 흐름은 각기 다른 영역에 있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산업은 더 이상 제품만으로 경쟁하지 않습니다. 유통 구조, 자본, 플랫폼, 기술이 얽힌 복합 경쟁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습니다

유통 역시 예외가 아닙니다. 매장에서 물건을 고르던 시대에서, 알고리즘이 장바구니를 완성하는 시대로 넘어가고 있습니다.

그 변화의 출발선에, 다시 ‘새벽’이 놓여 있습니다.

14년 전 꺼졌던 불이 다시 켜질지, 혹은 전혀 다른 형태의 빛으로 바뀔지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변화가 단순한 유통 규제의 수정이 아니라 산업의 판을 다시 짜는 신호탄이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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