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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EBN 칼럼] 스타트업 런웨이 설계법(상)…현금보다 선택권이 먼저다

특히 딥테크, 바이오, 헬스케어, 소부장 스타트업은 개발비와 인증비가 상대적으로 크다. 이 비용은 단기 매출과 바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마일스톤 단위로 관리해야 한다. "6개월 내 시제품 완성", "9개월...

[EBN 칼럼] 스타트업 런웨이 설계법(상)…현금보다 선택권이 먼저다

이종익 큐네스티(구 한국사회투자) 이사장 [출처=큐네스티]

스타트업 대표가 투자유치를 마치면 잠시 숨을 돌린다.  회사 통장에 자금이 들어오고, 그동안 미뤄두었던 채용을 시작한다.  개발 일정도 앞당기고, 미루었던 마케팅 비용도 집행하고, 사무실도 조금 넓은 곳으로 이전한다.

해외 진출 계획을 세우고, 새로운 제품 라인업도 준비한다.  투자금이 들어온 직후의 회사는 마치 긴 터널을 빠져나온 듯한 평온함과 함께 활기가 느껴진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나면 대표는 다시 같은 질문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런데 우리 회사는 이 돈으로 몇 개월을 더 버틸 수 있을까?”

스타트업에게 자금 부족은 예외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성장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마주치는 일상에 가깝다.  제품을 설계하고 제조하려면 돈이 필요하고, 고객을 확보하려해도 돈이 필요하다.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고 유지하려면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  문제는 돈을 쓰지 않으면 성장하기 어렵고, 돈을 너무 빨리 쓰다보면 생존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스타트업 경영의 어려움은 바로 이 모순 앞에서 뭔가를 해야한다는 것에 있다.

투자자가 창업자를 만나면 반드시 물어보는 말이 있다.  “회사의 런웨이는 얼마나 되세요?”  이때 창업자가 반드시 알아야 할 개념이 런웨이다.  런웨이는 현재 보유한 현금으로 추가 자금조달 없이 기업이 생존할 수 있는 기간을 의미한다.  비행기가 충분한 활주로를 확보해야 안정적으로 이륙할 수 있듯이, 스타트업도 충분한 런웨이를 확보해야 제품개발, 고객검증, 마케팅, 매출확대로 이어지는 안정적인 이륙 과정을 감당할 수 있다.

그러나 런웨이는 단순히 “남은 현금 ÷ 월 지출액”으로 계산되는 숫자로 보면 안된다.  물론 계산식 자체는 단순하다.  현재 가용 현금을 월평균 순현금소진액으로 나누면 대략적인 런웨이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실제 경영에서는 수입과 지출의 개념이 이보다 훨씬 복잡하다.  계약과 입금의 시점이 다르고, 회계상 매출과 실제 현금흐름이 다르며, 반복적으로 나가는 비용과 갑자기 발생하는 비용도 같지 않다.  그래서 런웨이는 재무팀이 관리하는 숫자라기 보다는 대표가 직접 이해하고 챙겨야 하는 핵심 경영지표라고 말할 수 있다.

런웨이는 회사가 시장에서 버틸 수 있는 시간이고, 투자자와 협상할 수 있는 여유이며, 위기 상황에서 선택권을 잃지 않게 해주는 안전장치다.  결국 런웨이는 남은 현금이 아니라 남은 선택권에 가깝다. 런웨이가 충분한 회사는 기회가 오기를 기다릴 수 있고, 유리한 조건으로 협상할 수 있으며, 설사 기회를 놓쳐도 또 다른 기회를 준비할 수 있다.  반대로 런웨이가 짧아진 회사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당하게 된다.

초기 스타트업은 대개 영업이익으로 성장하기보다는 대표의 돈(가수금 또는 주임종단기채무), 투자금, 정부지원금, (보증)융자, 일부 매출을 조합해 성장한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가 가장 많이 하는 착각은 통장에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돈을 이미 확보한 돈처럼 생각하는 것이다.  계약이 체결되었다고 해서 곧바로 현금이 들어오는 것은 아니다.  투자사의 투자심의위원회를 마치고 긍정적인 피드백이 왔다고 해서 투자금이 입금된 것도 아니다.  정부지원사업에 선정됐다고 해서 그 지원금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타트업의 생존은 회계상의 매출이나 계약금액이 아니라 실제 입금된 현금으로 결정된다.  손익계산서상 매출이 발생했더라도 고객사의 인수 및 검수확인, 내부 결재 절차를 거쳐 세금계산서가 발행되어도 실제 입금은 수개월 뒤가 될 수도 있다.  공공기관이나 대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B2BG 사업은 이와 같은 현금화(유동화) 지연을 더 자주 경험한다.  정부지원금도 용도 제한, 선집행, 후정산, 불인정 비용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그래서 런웨이를 계산할 때는 “받을 돈”과 “받은 돈”을 엄격하게 구분해야 한다.

대표가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돈이 없는 상황만이 아니다.  더 위험한 것은 돈이 있다고 착각하는 상황이다.  매출채권이 바로 유동화 되어 자금이 입금될 것으로 믿고 채용을 늘리고, 마케팅비를 확대하며, 정부지원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고 보고 외주개발을 먼저 시작하면 런웨이는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짧아진다.   대부분의 벤처는 성장이 우선시 되기 때문에 먼저 투자, 개발하고 납품을 하다보니 입금이 늦어지면 흑자도산하는 사례도 발생하게 된다.

이런 사례는 특히 대기업, 공공을 고객으로 하는 경우 자주 발생된다.  필자가 아는 A사는 뛰어난 기술을 바탕으로 대기업으로 부터 수십억원 규모의 주문을 받았다.  계약금을 일부 받았지만 제품을 생산하기 위한 원자재 구매와 외주가공을 위한 선 투입 비용이 없어서 고금리의 단기 대출을 받았고 제품을 제작, 납품했다.  하지만 대기업의 갑작스런 자금 경색으로 잔금의 지급이 예상보다 늦어지면서 결국에는 회사가 자금난에 봉착하게 되었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서 결국 회사의 문을 닫게 되었다.

런웨이 설계의 출발점은 매월 소요되는 자금을 성격별로 구분하는 것이다.  많은 대표가 월 지출액을 하나의 숫자로 본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는 한 달에 1억 원을 쓴다”라는 식이다.  그러나 같은 1억 원이라도 그 성격은 전혀 다르다.  어떤 돈은 줄이면 회사가 건강해지고, 어떤 돈은 줄이면 회사의 핵심역량이 무너진다.  어떤 비용은 당장 중단할 수 있고, 어떤 비용은 한 번 늘어나면 쉽게 줄일 수 없다. 우선 생존비가 있다. 급여, 4대 보험, 임대료, 서버비, 필수 소프트웨어구독료, 회계·세무·법무 비용, 기본 운영비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생존비는 매출이 없어도 계속 발생하는 비용이다.  그래서 고정비라는 말을 사용한다.  회사가 고객에게 약속한 서비스를 유지하고, 핵심 인력을 지키며, 최소한의 운영을 지속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돈이다.  생존비가 지나치게 높으면 회사는 위기 때 몸을 낮추기 어렵다.  초기 스타트업일수록 사무실, 고정 인력, 장기계약, 불필요한 구독서비스 등 고정비를 낮게 유지해야 한다.

두 번째는 성장비다.  광고 마케팅비, 전시회 참가비, 해외출장비, 영업수수료, 고객확보 비용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성장비는 회사의 확장을 위해 필요한 돈이지만, 효율을 측정하지 않으면 가장 빠르게 낭비될 수 있는 비용이기도 하다.  광고선전비를 늘렸는데 고객 전환율이 낮거나, 전시회에 참가했는데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않거나, 해외출장을 반복했지만 파트너십이 구체화되지 않는다면 이는 성장이 아니라 현금 소진이다.  성장비는 항상 고객획득비용(CAC), 계약전환율, 매출기여도와 함께 묶어서 평가해야 한다.

세 번째는 개발비다.  R&D 인력비, 외주개발비, 장비구입비, 데이터 구매비, 인증비, 시험비, 임상비, 특허비 등이 포함된다.  특히 딥테크, 바이오, 헬스케어, 소부장 스타트업은 개발비와 인증비가 상대적으로 크다.  이 비용은 단기 매출과 바로 연결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마일스톤 단위로 관리해야 한다.  “6개월 내 시제품 완성”, “9개월 내 인증 신청”, “12개월 내 유료 PoC 계약 확보”처럼 자금 소진과 기술 진척이 연결되어야 한다.  돈은 썼는데 검증 가능한 결과물이 없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신호가 된다.

네 번째는 금융비다. 대출이자, 원금상환, 보증료, 수수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많은 스타트업이 정책자금이나 기술보증, 신용보증, 금융기관 대출을 활용한다.  CB나 BW도 유사한 성격이다.  이는 지분방어를 할 수 있는 유용한 자금이지만 상환일정이 명확히 존재한다.  매출이 예상보다 늦어지는 상황에서 원리금 상환이 겹치면 현금흐름에 큰 부담이 된다.  따라서 융자를 받을 때는 금리만 볼 것이 아니라 상환시점, 거치기간, 원금상환 규모, 만기연장 가능성, 보증 조건을 함께 봐야 한다.

다섯 번째는 일회성 비용이다.  퇴직금, 세금, 소송비, 장비교체비, 정부지원금 정산 불인정 비용, 해외 송금 수수료, 환율 변동 손실, 갑작스러운 고객사 대응비 등이 대표적이다.  일회성 비용은 평소 월 지출액에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런웨이가 실제보다 더 길어 보이게 만든다.  특히 세금, 4대 보험, 퇴직급여, 연차수당 등은 뒤늦게 한꺼번에 반영하면 현금흐름을 크게 흔들 수 있다.

마지막은 유보비다.  유보비는 비용 집행 시 추가로 들어갈 것을 예상해서 미리 확보하는 예비비와는 다른 개념이다.  일종의 비상금이다.  문제는 많은 스타트업이 유보비를 별도로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장에 돈이 있으면 성장비로 쓰고, 마케팅비로 쓰고, 채용비로 쓴다.  그러나 유보비는 쓰기 위해 남겨둔 돈이 아니다.  쓰지 않기 위해 지켜야 하는 돈이다.  회사가 예상치 못한 위기에도 감정적으로 의사결정하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최소한의 방어선이다.

런웨이를 제대로 설계하려면 최소 안전자금을 정의해야 한다.  최소 안전자금은 회사가 갑작스러운 매출 지연, 투자유치 실패, 고객사 계약 취소, 정부지원금 집행 지연, 핵심인력 이탈 등과 같은 위급 상황을 맞았을 때 사업을 바로 접지 않고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자금이다.  이는 단순한 여유자금이 아니다. 회사의 생존과 협상력을 지키는 방어자금이다.

최소 안전자금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된다. 첫째는 필수 생존자금이다.  급여, 4대 보험, 임대료, 서버비, 회계·세무·법무 비용 등 회사 운영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비용이다.  둘째는 마일스톤 달성자금이다. 다음 투자유치나 매출 확대를 위해 반드시 달성해야 할 기술·제품·영업 성과를 만드는 데 필요한 돈이다.  셋째는 비상 완충자금이다.  매출이 늦어지거나 투자가 지연되거나 고객계약이 취소될 때 최소 2~3개월 정도 버틸 수 있는 자금이다.

초기 스타트업이라면 최소 6개월 이상의 런웨이를 확보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가능하다면 9~12개월이 더 안정적이다.  성장기 스타트업은 사업의 특성에 따라 12개월 이상의 런웨이가 필요할 수 있다. 특히 의료, 바이오, 소부장제조, 글로벌 진출 기업은 인증, 임상, 양산, 해외영업, 현지 파트너십 구축에 시간이 많이 걸리므로 더 긴 런웨이를 전제로 해야 한다.

물론 모든 스타트업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절대적인 현금 규모가 아니라 비용구조와 자금조달 시점을 얼마나 정확히 알고 있느냐다.  현금 20억 원이 있어도 매월 3억 원씩 소진하면 런웨이는 7개월도 되지 않는다.  반대로 현금 5억 원이 있어도 월 소진액을 5천만 원으로 관리하고 명확한 매출 마일스톤이 있다면 10개월의 시간을 확보할 수 있다.

런웨이가 짧아지면 회사는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당하게 된다. 투자자는 더 낮은 기업가치를 요구할 수 있고, 금융기관은 더 높은 보증이나 담보를 요구할 수 있다.  고객사는 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고, 직원들은 불안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런웨이를 충분히 확보한 회사는 투자자와 자신있게 협상할 수 있고, 고객과의 계약에서도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으며, 위기 때도 급하게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결국 런웨이 설계의 출발은 남은 현금을 계산하는 것이 아니다.  매월 나가는 돈의 성격을 명확히 구분하고,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 안전자금을 정하는 것이다.  스타트업은 늘 부족한 자원으로 큰 시장에 도전하는 조직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이 부족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그 부족함을 어떻게 설계하고 관리하느냐다.

런웨이는 남은 돈의 기간이 아니라 남은 선택권의 기간이다.  대표가 이 숫자를 정확히 알고 있다면 회사는 위기 앞에서도 시간을 벌 수 있다.  그리고 스타트업에게 시간은 곧 전략이다.  다음 글에서는 이 런웨이를 실제 경영 시스템으로 운영하는 방법, 즉 누가 자금을 관리하고, 어떤 현금흐름표를 보고, 인력계획과 자금조달을 어떻게 연결하며, 비상상황에서 무엇부터 조정해야 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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