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글로벌 규범 필요성 강조
국가별 규제론 문제대응 한계
EU AI법 실험적 모델로 평가
책임 공백 구조적 문제 제기
AI 권력집중… 민주주의 위협
인간 중심 AI 전환 필요 강조
벨기에 출신의 앤디 버마웃(Andy Vermaut)은 EU 기후협약 대사이자 세계공공외교위원회 의장을 맡고 있는 국제 공공외교 전문가로 기후변화 대응과 글로벌 협력 확대를 위한 민간외교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출처: 앤디 버마웃 EU 기후협약 대사 페이스북)
오는 6월 12일 천지일보가 서울에서 개최하는 글로벌 인류공영 AI 포럼(GAFH) 2026을 앞두고, 본지는 주요 발제자들을 릴레이 인터뷰 형식으로 조명한다. ‘인류공영을 위한 신뢰 가능한 AI’를 주제로 열리는 이번 포럼은 인간 중심 가치와 윤리, 글로벌 거버넌스의 방향을 심도 있게 다루는 자리다. 각 분야 전문가의 통찰을 통해 AI 시대의 방향성을 입체적으로 짚고, 기술을 넘어 인간과 사회를 위한 AI의 미래를 모색한다.
[천지일보=정다준 기자] “인공지능(AI)은 권력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책임을 물을 대상을 찾기 어렵게 만듭니다.”
AI가 사회 전반의 구조를 빠르게 바꾸는 가운데 권력 집중과 책임 공백 문제가 동시에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오는 6월 열리는 ‘글로벌 인류공영 AI 포럼 2026’에 패널로 참여하는 앤디 버마웃 EU 기후협약 대사는 서면 인터뷰에서 AI 확산 속도에 비해 제도적 대응이 뒤처지고 있다고 진단하며 글로벌 차원의 규범 정립 필요성을 강조했다.
◆국가별 규제 한계와 파급효과
버마웃 대사는 “각국 정부는 국민을 보호하고 권리를 지켜야 하는 책임이 있지만 서로 다른 규칙을 만들 경우 혼란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제는 서로 맞지 않게 되고 그 사이에 빈틈이 생기며 기업은 가장 규제가 약한 곳으로 이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러한 현상의 진짜 문제는 ‘파급효과’라고 진단했다. 특히 AI 시스템의 영향력에 대해 “이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다”며 “사람들에게 무엇을 보여줄지 결정하고 실제 삶에 영향을 주는 판단을 내리며 감시를 확대하는 역할까지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러한 영향은 동의하지 않은 국가에까지 확장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버마웃 대사는 민주주의 구조와의 충돌 문제도 지적했다. 그는 “민주주의에서 권력은 감시와 견제를 통해 정당성을 확보한다”며 “하지만 AI는 권력을 집중시키는 동시에 책임을 물을 대상을 찾기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국가 단위 규제만으로는 이러한 문제를 충분히 대응하기 부족하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거버넌스 필요성 부각
그가 제시한 해법은 글로벌 거버넌스다. 다만 이는 중앙집중형 통제기구를 의미하지 않는다. 그는 “글로벌 거버넌스는 어떤 거대한 세계 규제기관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는 뜻이 아니다”라며 “안전, 권리, 책임성과 같은 기본 원칙을 국제적으로 공유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업이 어느 지역에서 활동하든 동일한 기준을 따르도록 하고 이를 실제로 점검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기준이 마련되지 않을 경우 왜곡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진단도 내놨다. 그는 “그렇지 않으면 경쟁은 속도와 규모 중심으로 흐르고 인간의 가치와 같은 요소는 선택사항으로 밀려난다”며 “기술은 이미 글로벌하게 작동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럽연합(EU)이 도입한 AI법에 대해서는 시작점이자 실험 사례라고 했다. 버마웃 대사는 “EU AI법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한 정치적 선언이 아니라 실제 위험과 피해를 기준으로 규제를 설계하려 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어 “AI가 사람의 건강, 안전, 권리에 미치는 영향을 기준으로 접근한 것은 실리콘밸리 중심의 기술 낙관론과는 다른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이 접근의 장점으로는 확장 가능성을 꼽았다. 그는 “기술은 빠르게 변하지만 피해의 유형은 비교적 일관성을 가진다”며 “이 때문에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규칙을 다시 만드는 비효율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윤리 세탁’에서 벗어난 점도 강조했다. 그는 “그럴듯한 자발적 약속이 아니라 실제 책임을 요구하는 구조가 중요하다”며 “개발, 문서화, 검증, 사고 발생 시 책임까지 포함하는 체계가 ‘인간 중심 AI’를 실질적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메커니즘 역시 중요한 변수로 언급했다. 그는 “4억 5000만명 규모의 EU 시장에 접근하려면 기업은 해당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다”며 “결국 비용 효율성을 위해 글로벌 차원에서 동일 기준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그는 EU 규제가 곧 글로벌 표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진정한 국제 규범은 전 세계의 참여와 공동 소유를 전제로 한다”며 “EU는 하나의 시작점이자 실험 사례”라고 평가했다.
앤디 버마웃(Andy Vermaut). (출처: 앤디 버마웃 EU 기후협약 대사 페이스북)
◆책임성·추적성 등 원칙 제시
버마웃 대사는 향후 국제 AI 규범이 갖춰야 할 핵심 원칙으로 세 가지를 제시했다. 먼저 ‘추적 가능성’이다. 그는 “시스템의 목적, 사용된 데이터, 테스트 방식, 한계, 감독 주체 등에 대해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며 “답할 수 없다면 통제도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다음으로는 ‘책임성’이다. 그는 “기계가 했다’는 변명은 허용될 수 없다”며 “개발자, 판매자, 운영자 모두가 책임을 져야 하고 사고 보고와 외부 점검은 필수”라고 강조했다. 또한 ‘상호운용성’도 제안했다. 그는 “글로벌 규칙이 작동하려면 기준과 측정 방식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며 “그렇지 않으면 대기업만 살아남고 문제는 규제의 빈틈을 따라 이동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AI가 인권과 민주주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도 명확한 기준을 제시했다. 그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존재한다”며 “대규모 무차별 감시는 금지돼야 하고 필요성·비례성·합법성 원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적 점수 시스템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는 “이러한 시스템은 프라이버시를 침해하고 평등을 훼손하며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킬 수 있다”며 “허용되더라도 엄격한 조건과 투명성, 그리고 구제 수단이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의 권리 보장 역시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그는 “중요한 결정이 자동화된 시스템에 의해 내려질 경우 당사자는 이를 인지할 권리가 있으며 설명을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며 “궁극적으로 인간이 개입해 결과를 변경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민주주의 보호를 위한 장치도 강조했다. 그는 “정치적 조작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하며 합성 콘텐츠에 대한 기준과 공개 의무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협력 구조와 韓 역할 부각
‘인류공영’이라는 개념에 대해서는 기술 발전의 방향성을 바꾸는 질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 개념은 속도와 효율이 아니라 기술이 실제로 인간의 삶을 개선하는지 묻는다”며 “이익이 일부 기업이나 국가에 집중될 경우 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동번영은 참여 기회를 보장하고 교육과 접근성을 확대하며 데이터와 노동에 대한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며 “AI는 의료, 재난 대응, 공공 서비스 등 실제 문제 해결에 활용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간 정책 차이가 존재하는 상황에서의 협력 방식에 대해서는 현실적인 접근을 제시했다. 그는 “모든 국가가 동일한 입장을 취할 필요는 없다”며 “공통의 위험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이어 “소규모 국가 그룹이 먼저 실질적인 안전 기준을 만들고 이를 국제기구가 확산시키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경쟁과 협력의 균형도 강조했다. 그는 “경쟁은 필요하지만 시스템 전체가 위험해질 경우 협력은 필수적”이라며 “제품과 전략에서는 경쟁하되 안전 기준은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항공 산업처럼 안전은 경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다자 협력 구조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그는 “정부, 기업, 학계, 시민사회가 모두 참여해야 한다”며 “공통 기준, 독립적인 감사 체계, 사고 기록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문제를 조기에 발견하고 평가할 수 있는 국제적 상설 기구도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미디어와 공공외교의 역할에 대해서도 견해를 밝혔다. 그는 “가짜 정보가 넘치는 시대일수록 속보 경쟁보다 출처 검증이 중요하다”며 “신뢰는 투명성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이어 “민주주의는 공통된 사실 인식 위에서만 작동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끝으로 그는 이번 포럼과 한국의 역할에 기대를 나타냈다. 그는 “거버넌스는 발전을 막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며 “한국은 기술력과 글로벌 연결성을 바탕으로 국가 간 입장을 조율하는 중재자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신뢰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경쟁력”이라며 “이제는 슬로건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하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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