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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와 법의 만남, 리걸테크의 부상

[우병오 박사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Oracle, HP, Applied Materials, SAP 등 글로벌 IT 기업에서 30여 년간 컨설턴트와 임원으로 활동했다. 2022년 단국대학교에서 인공지능 기반...

AI와 법의 만남, 리걸테크의 부상

AI 자체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게 아니라,

'AI를 쓰는 변호사'가 변호사를 대체한다.

[우병오 박사가 읽어주는 신기술 이야기 14]

우리가 사는 시대의 변화는 언제나 기술을 통해 가장 먼저 드러난다. 신기술은 미래의 예고편이자,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다. 이 연재는 그 거울 속에 비친 변화의 의미를 하나씩 읽어 내려가는 시도다. 미래는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마주한 신기술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우리가 살게 될 내일을 만들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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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랑 속에서 피어난 '정의의 도구'에 대한 갈망]

오늘날 한국 사법 시스템은 유례없는 신뢰의 위기와 마주하고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는 사법 시스템의 공정성과 투명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검찰 개혁과 법 왜곡죄 입법 논의가 연일 쟁점이 되는 현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정한 법 집행에 목말라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 배경에는 인간 법조인이 지닌 주관성과 편향, 전관예우와 정치적 외풍에 대한 깊은 불신이 놓여 있다.

이런 불신은 이제 기술이라는 새로운 대안을 호출하고 있다. 리걸테크(Legal Tech)로 불리는 인공지능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방대한 판례와 법리를 편향 없이 들여다보는 기술적 감사관(Technological Auditor)으로 주목받고 있다. AI는 십수만 건의 판례 데이터를 객관적으로 분석하며, 인간의 한계를 보완하고 투명한 사법 시스템을 구축할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법률 서비스의 민주화는 더 이상 구호가 아니라 리걸테크라는 실천적 수단을 통해 구현되는 현실이 되고 있다.

[리걸테크의 태동과 역사: 타자기에서 생성형 AI까지]

리걸테크의 진화는 인류가 법률 지식을 저장하고 다루어 온 방식의 변화와 궤를 같이한다. 197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는 렉시스넥시스(LexisNexis) 같은 시스템이 등장하며, 타자기와 종이 서류에 갇혀 있던 정보를 전자 문서로 옮겨 놓은 디지털화의 시대였다. 변호사들은 도서관 서가 대신 검색창을 통해 판례를 찾기 시작했다.

최근 5년 사이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리걸테크를 또 한 번의 도약기로 이끌었다. 자연어 처리와 대규모 언어모델의 발전으로 기계는 단순히 키워드를 검색하는 수준을 넘어 문맥을 이해하고, 판례와 법령 사이의 관계를 분석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여기에 생성형 AI의 등장은 법률 기술의 성격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의 리걸테크가 방대한 법률 정보를 ‘찾아주는’ 도구였다면, 이제는 계약서 초안을 작성하고 판례를 근거로 법률 전략을 제안하는 ‘생성하고 사고하는’ 시스템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검색 증강 생성(RAG, 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기술은 AI가 실제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하도록 만들어 환각(Hallucination) 위험을 크게 줄이며, 실무에서 활용 가능한 ‘디지털 법률 비서’의 등장을 가능하게 했다.

[법조계의 '알파고' 사건: 한국 리걸테크의 전환점]

2019년 열린 '알파로 경진대회(Alpha Law Competition)'는 한국 법조계에 상징적인 전환점을 남겼다. 근로계약서 분석을 두고, 변호사만으로 구성된 팀과 AI를 활용한 변호사팀이 자문 능력을 겨룬 자리였다.

AI 시스템은 계약서를 업로드하면 10초 안팎의 시간에 위험 조항을 짚어내고, 근로기준법 및 시행령 위반 여부, 관련 판례와 행정해석까지 한 번에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중요도에 따라 색상과 리스크 등급을 부여하는 시각화 기능도 제공됐다.

항목                                    인간 변호사                                법률 AI

계약서 분석 시간            20~30분                                     10초 안팎

분석 항목                         수동 검토                                      위험 조항, 법령 위반, 판례 자동 제시

시각화 기능                    없음                                                 색상 및 리스크 등급 부여

대회에서 상위권을 모두 AI를 활용한 팀이 차지했고, 비전문가와 AI가 협업한 팀도 상위권에 올랐다. 이는 AI 보조가 있을 경우 비전문가도 전문가에 가까운 성과를 낼 수 있음을 드러내며, 법률 지식의 독점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회자된다. 이 대회 결과는 리걸테크가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낮추는 결정적 열쇠임을 증명했다. 일반인과 AI가 결합해 베테랑 변호사를 이겼다는 사실은, 더 이상 법률 지식이 소수 전문가만의 전유물이 아님을 의미하는 '법률 민주화'의 서막이었다.

[리걸테크가 가져온 법조계의 지각변동: 데이터 분석]

해외 리포트에서도 AI 도입 여부에 따른 격차는 이미 뚜렷하게 드러난다. 일부 연구에서는 법률 업무의 약 40~45%가 자동화 가능하다는 분석도 제시된다. 최근 Clio Legal Trends Report는 정보 수집과 분석처럼 표준화 가능한 업무의 상당 부분이 AI로 자동화될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기존 시간제 보수 모델이 구조적 압박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특히 국내에서는 엘박스(L-Box), 로앤컴퍼니(슈퍼로이어), BHSN(앨리비), 로폼(LawForm), 로앤비(LAWnB), 로톡(LawTalk) 등 혁신 기업들이 등장하며 시장을 재편하고 있다.

l  성장의 마법: 매출과 효율의 비대칭성

일부 조사에서는 기술을 적극 도입한 로펌이 그렇지 않은 로펌보다 더 빠른 매출 성장과 효율 개선을 경험한다고 보고된다. 단순히 인력을 늘리는 방식이 아니라, AI라는 지렛대를 활용해 건당 부가가치를 키우는 전략이 점차 주류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놀라운 점은 고객 수 증가율보다 매출 성장률이 더 높게 나타나는 경우가 관찰된다는 것이다. 이는 변호사가 단순히 사람을 더 고용해 몸집을 불리는 것이 아니라, AI를 통해 서비스 품질과 효율을 동시에 높이고 있음을 시사한다.

l  세대 간 채택 격차

AI 수용성에서는 세대 간 차이도 관찰된다. 여러 설문 조사에서 젊은 변호사들은 AI 도입과 활용에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반면, 고령 세대는 신중하거나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보고된다. 이는 향후 로펌 내부의 권력 구조와 경쟁 구도에서 'AI를 잘 쓰는 젊은 법조인'이 중요한 우위를 갖게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 기술 숙련도가 곧 경쟁력이 되는 새로운 법조 생태계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l  빌링 시스템의 붕괴와 고정 수수료의 부상

전통적인 '시간제 보수(Billable Hour)' 모델은 이제 기술 앞에서 모순에 직면했다. 과거 16시간이 소요되던 소장 검토가 AI를 통해 3~4분으로 단축되는데, 시간을 기준으로 비용을 청구하는 방식은 더 이상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 지식의 가치와 결과에 기반한 '고정 수수료(Flat Fee)' 모델로의 전환이 가속화되고 있다.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는 예측 가능한 비용 구조를 얻게 되고, 로펌 입장에서는 효율성 향상의 이익을 직접 가져갈 수 있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리걸테크가 제공하는 3대 핵심 이익]

리걸테크는 법조인에게는 생산성과 삶의 질 향상을, 의뢰인에게는 보다 평등한 접근 기회를 제공한다.

l  예방법학(Preventive Law)의 실현

과거 법률 서비스가 분쟁 발생 후 사후 처방에 머물렀다면, BHSN이나 로폼 같은 플랫폼은 계약 체결 단계에서 독소 조항을 즉시 걸러 분쟁 자체를 줄이는 방향으로 기능한다. 의료에서 예방의학이 사회적 비용을 줄이는 것과 유사한 역할이다. AI는 계약서에 숨어 있는 법적 리스크를 실시간으로 분석해 제시함으로써, 문제가 발생하기 전에 이를 차단하는 예방적 법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한다.

l  사법 접근성 향상

일반인이 음주운전으로 적발되었을 때, 혈중알코올농도와 주행 거리 등을 일부 사건분석 서비스에 입력하면 수천 건 이상의 판결 데이터를 바탕으로 예상 형량과 재판 기간을 몇 초 만에 알려준다. 값비싼 수임료 없이도 누구나 자신의 법적 권리와 예상되는 결과를 미리 파악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법률 서비스가 더 이상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만의 특권이 아니라, 모든 시민이 접근할 수 있는 공공재로 거듭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l  법조인의 삶의 질 개선 및 전략적 집중

일부 설문과 연구에서는 AI 도입 이후 단순 반복 업무와 스트레스가 크게 줄었다고 응답하는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이는 리걸테크가 법조인을 단순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있음을 보여준다. 업무 시간의 구조가 바뀌고 있다. 과거에는 자료 수집과 검토에 대부분의 시간을 자료 수집에 쓰던 시간을 전략 수립과 의뢰인과의 정서적 교감에 쏟게 됨으로써, 변호사는 비로소 인간 고유의 '가치 제공자'로 거듭나게 된다. AI가 처리할 수 있는 기계적 업무는 기계에 맡기고,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공감, 협상, 전략적 판단에 집중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한국 리걸테크의 당면 과제: 데이터 개방과 규제의 경계]

하지만 장밋빛 전망 뒤에는 한국 특유의 척박한 현실이 있다. 한국 리걸테크가 글로벌 트렌드에 비해 뒤처진 가장 큰 이유는 '데이터 폐쇄성'이다. 판결문 공개가 극히 제한적인 상황에서 AI 학습을 위한 양질의 데이터 확보는 하늘의 별 따기다.

국내에서도 KAIST 연구진과 여러 기업이 L-Box Open과 같은 공개 코퍼스를 구축하고, 판례 검색과 요약에 RAG와 수작업 검증을 결합하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데이터 접근성 부족은 여전히 혁신의 발목을 잡는 주요 장애물로 남아 있다.

또한, 대한변호사협회와 리걸테크 플랫폼(로톡 등) 간의 직역 갈등은 기술 발전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다. 변호사법 위반 논란과 징계 이슈는 사법의 공공성과 산업적 혁신 사이의 깊은 간극을 드러낸다. 여기에 AI가 존재하지 않는 판례를 만들어내는 '환각 현상'은 법적 신뢰성을 저해할 위험이 있어, RAG 방식과 수작업 검증을 결합한 이중 검증 체계 구축이 필수적이다.

[향후 전망: 'AI 판사'와 '에이전틱 AI'의 시대]

리걸테크의 미래는 단순한 대화형 챗봇을 넘어 '행동하는 지능'인 에이전틱 AI(Agentic AI)로 향하고 있다. 사용자의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소송 스케줄을 관리하고 필요한 서류를 준비하며 외부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독립적인 해결사로 진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AI가 문서관리시스템(DMS)과 연동해 관련 계약서를 자동으로 찾아내고, 일정 관리 시스템과 연결해 법정 출석 일정을 조율하는 수준까지 발전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법부의 디지털 전환도 본격화된다. 법원행정처는 차세대 전자소송 시스템과 빅데이터 플랫폼 구축에 수천억 원대 예산을 투입하고 있다. 가까운 시기에 AI 재판연구관이 도입되어 판사의 하급심 판례 검색과 기록 검토를 보조할 예정이다. 이는 판사 한 명에게 모든 법률 정보를 꿰뚫는 '디지털 연구원'을 붙여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것이다.

결국 미래의 사법 현장은 AI가 변호사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AI를 잘 쓰는 변호사가 그렇지 못한 변호사를 대체하는 구조가 될 것이다. 기술을 도구로 삼아 인간 고유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법조인만이 살아남는 시대가 오고 있다.

[맺음말: 기술로 완성하는 정의의 라스트 마일]

리걸테크는 단순히 로펌의 수익을 높이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사법 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고, 법이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좌절하는 평범한 이들에게 길을 안내하는 '디지털 등대'다. 도입부에서 언급한 검찰 개혁과 법왜곡죄에 대한 뜨거운 논쟁은 결국 '사람의 주관'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가의 문제로 귀결된다.

AI가 제공하는 데이터 기반의 객관성은 사법부의 편향성을 감시하고 투명성을 담보하는 가장 강력한 우군이 될 것이다. 기술이 법률 서비스의 문턱을 무너뜨리고, 사법 정의의 혜택을 모든 국민에게 고루 전달할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법치주의의 완성, 즉 '정의의 라스트 마일'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AI와 법의 만남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숙명이자, 더 나은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진화다.

[Keywords]

l  리걸테크(Legal Tech) - 법률 서비스의 기술 혁신 전반을 아우르는 핵심 개념.

l  인공지능(AI) - 판례 분석부터 소장 작성까지 법조 업무를 변화시키는 주체.

l  알파로 경진대회(Alpha Law Competition) - 2019년 인간 변호사 vs AI 대결로 상징되는 전환점 사례.

l  생성형 AI(Generative AI) - LongForm 기능과 에이전틱 AI로 법률 업무를 행동화.

l  RAG(Retrieval-Augmented Generation) - 환각 현상 완화와 신뢰성 확보 핵심 기술.

l  Clio Legal Trends Report - AI 도입 로펌의 매출·효율성 격차를 보여주는 데이터 출처.

l  시간제 보수(Billable Hour) - AI 효율화로 붕괴 위기에 처한 전통 청구 모델.

l  예방법학(Preventive Law) - 계약 독소 조항 사전 차단 등 사후적 법률 서비스의 패러다임 전환.

l  L-Box - 한국 리걸테크의 판례 데이터 코퍼스 및 RAG 적용 사례.

l  에이전틱 AI(Agentic AI) - 미래 전망에서 소송 관리·서류 자동화까지 독립 행동하는 AI 형태.

[우병오 박사는 서울대학교 산업공학과에서 학사 및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Oracle, HP, Applied Materials, SAP 등 글로벌 IT 기업에서 30여 년간 컨설턴트와 임원으로 활동했다.

2022년 단국대학교에서 인공지능 기반 소프트웨어 의료기기(SaMD)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25년까지 씨젠의료재단 CIO 겸 AI연구소장을 역임했다.

현재 유한대학교에서 인공지능 전공 조교수로 재직 중이며, 인공지능과 디지털 헬스케어, 데이터 기반 산업 혁신을 연구하고 있다.

또한, 2026년부터는 유튜브 채널 ‘우병오 박사가 읽어주는 신기술 이야기’ (https://www.youtube.com/@MrDantzig)를 통해 인공지능, 로봇, 반도체, 우주기술 등 최신 기술 트렌드를 일반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알기 쉽게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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