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AI·반도체 시대, 국가 수요예측을 다시 묻다’를 주제로 물·에너지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사진제공=에너지전환포럼
[환경일보] AI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클러스터에 필요한 전력·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발전소와 댐부터 늘리는 공급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불확실한 기업 수요를 국가계획에 그대로 반영하기보다 에너지 효율과 물 재이용을 강화하고, 극한가뭄과 온실가스 배출 등 사회·환경적 한계 안에서 산업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왕진 조국혁신당 의원과 염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정혜경 진보당 의원을 비롯해 기후대응물정책연구단, 기후변화행동연구소, 기후적응사회포럼, 물개혁포럼, 에너지전환포럼, 환경운동연합은 1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AI·반도체 시대, 국가 수요예측을 다시 묻다’를 주제로 물·에너지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참석자들은 정부 메가프로젝트와 국가 전력·물 수급계획 사이에 전망치 차이가 크고 산정 기준도 충분히 공개되지 않았다며, 국가정책을 공급 확대에서 수요관리와 효율 향상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염태영 의원은 “전력과 물의 수급계획은 국민의 삶과 지역의 미래를 좌우하는 국가계획”이라며 “공급 확대에 앞서 수요관리와 에너지 효율 향상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왕진 의원은 “고도성장기에 만들어진 공급 중심의 계획체계가 기후위기와 산업 전환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며 “국가계획 간 전망치와 기준의 혼선에서 벗어나 수요관리와 유연성 중심의 체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혜경 의원도 “국가계획은 기업의 수요를 무한정 받아 적는 것이 아니다”라며 “발전소와 댐을 맹목적으로 늘리기보다 한정된 전력과 물을 책임 있게 사용하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데이터센터 수요를 과도하게 전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환경일보DB
전기본 밖 대규모 전력수요, 예측 신뢰성 논란
석광훈 에너지전환포럼 전문위원은 정부의 전력수급기본계획이 데이터센터 수요를 과도하게 전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성능과 에너지 효율이 빠르게 개선되고 컴퓨팅 방식도 분산형으로 변화하는 상황에서 기업이 제시한 최대 수요를 전제로 발전·송전설비를 늘리면 비용과 환경 부담이 국민에게 전가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발표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공개된 제12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수요 전망에는 첨단산업과 데이터센터의 추가 수요가 각각 4GW씩 반영됐다. 그러나 정부가 6월 말 발표한 메가프로젝트에서는 AI 데이터센터 18.4GW와 반도체 9.3GW 등 총 27.7GW의 수요가 제시됐다. 이는 12차 전기본에서 제시된 2040년 최대 전력수요 132∼138GW의 약 20%에 해당한다.
최기원 녹색전환연구소 경제전환팀장은 이 가운데 신규 시설로 제시된 AI 데이터센터 18.4GW와 서남권 반도체 팹 6.3GW를 분석해 2035년 추가 전력소비량이 연간 169.5TWh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제11차 전기본의 2035년 예상 전력소비량 697.6TWh의 24.3%에 해당하는 규모다. 다만 부하율 등 가정에 따라 실제 수요는 141∼198TWh 범위에서 달라질 수 있다.
반면 제11차 전기본에 반영된 첨단산업·데이터센터 추가 수요는 16.6TWh로, 메가프로젝트 추산치의 약 10%에 그쳤다. 참석자들은 대규모 추가 수요의 산정 근거와 실현 가능성, 전원 조달 계획을 공개하고 국가계획 간 정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언 기후넥서스 대표는 “전기본 수요 전망이 공개된 지 불과 두 달 만에 최대 전력수요의 20%에 달하는 계획이 추가됐다”며 “불확실한 수요를 이유로 LNG와 원전 등 전통 전원을 확대하면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충돌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물 분야에서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하루 65만톤의 용수를 공급한다는 정부 계획이 극한가뭄 상황에서도 가능한지 검증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사진=환경일보DB
하루 65만톤 용수, 극한가뭄에도 가능한가
물 분야에서는 서남권 반도체 클러스터에 하루 65만톤의 용수를 공급한다는 정부 계획이 극한가뭄 상황에서도 가능한지 검증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최동진 기후변화행동연구소장은 정부 공급안이 평상시 여유량을 중심으로 마련돼 기후위기로 심화하는 가뭄 위험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대규모 신규 물 수요는 개별 사업의 필요량이 아니라 유역 전체의 공급 가능량과 생활·농업용수, 환경유량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복댐과 주암댐 등이 2022∼2023년 극심한 가뭄 당시 저수율 20% 아래로 떨어졌다는 점도 제시됐다. 평상시 사용되지 않는 ‘여유량’도 기후 조건과 기존 수리권, 생활·농업용수 수요, 가뭄 단계별 운영 기준에 따라 실제 이용 가능량이 달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기영 전 경기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 공급 인프라를 검토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량 소비 시설이 들어서면 극한가뭄 때 생활용수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며 기존의 ‘선 개발계획, 후 인프라 지원’ 방식을 ‘선 인프라 검토, 후 개발계획’으로 전환하고 대규모 개발사업의 사전 검토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참석자들은 새로운 댐이나 발전소를 건설하기 전에 기존 시설의 효율을 높이고 재생 수자원을 우선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사진제공=에너지전환포럼
댐 증고보다 재이용·수요관리 우선
참석자들은 새로운 댐이나 발전소를 건설하기 전에 기존 시설의 효율을 높이고 재생 수자원을 우선 활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동률 건화 부사장은 분산된 댐과 보, 농업용 저수지를 AI와 디지털 트윈으로 연계해 수자원 운영을 최적화하고, 하루 30만톤 규모로 제시된 광주 하수재이용 사업을 동복댐 증고 사업과 함께 비교·평가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노태호 강원대 교수는 AI·반도체 기업이 용수 공급의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취수량 감축과 공정용수 재이용, 유역 복원에 참여하는 ‘워터 포지티브(Water Positive)’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별 재이용률과 취수 원단위, 가뭄 시 감축계획을 공개하고 제3자 검증을 받는 방안도 제시했다.
김종원 환경운동연합 선임활동가는 “용수 65만톤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결론만 반복할 것이 아니라 수리권 조정으로 확보한 물을 특정 산업에 배분하는 근거와 농업·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공개해야 한다”며 “산업 수요에 공급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유역의 생태적 한계 안에서 산업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토론에서는 AI·반도체 산업의 지역 분산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사업 규모와 추진 속도, 에너지 조달 방식을 전력·용수 공급 능력과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에 맞춰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됐다. 국가 물관리계획과 전력수급계획을 연계하고, 수요예측에 활용한 모형과 기업 자료, 산정 기준을 공개해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