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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 시대, ‘산 너머’를 보는 설계자의 리더십

‘탈무드’에는 뱀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앞서겠다고 다투는 우화가 전해진다. 늘 뒤처지는 것에 불만을 품은 꼬리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을 때 비극은 시작되었다. 눈이 없는 꼬리는 방향을 알지 못한 채 구덩이와 불길 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결국 몸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AI 시대, ‘산 너머’를 보는 설계자의 리더십

AI 시대, ‘산 너머’를 보는 설계자의 리더십

이건호 전 능주중학교 교장

2026년 04월 15일(수) 00:05

‘탈무드’에는 뱀의 머리와 꼬리가 서로 앞서겠다고 다투는 우화가 전해진다. 늘 뒤처지는 것에 불만을 품은 꼬리가 주도권을 쥐게 되었을 때 비극은 시작되었다. 눈이 없는 꼬리는 방향을 알지 못한 채 구덩이와 불길 속으로 기어 들어갔고 결국 몸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이 비유의 요지는 명확하다. 리더십은 자격 없는 자의 욕망이나 단순한 순번에 의해 주어지는 권위가 아니다. 미래를 보는 ‘안목’이 결여된 리더십은 공동체 전체를 가시밭길로 유인하는 치명적인 과오를 범할 뿐이다.

리더의 판단은 개인의 선택을 넘어 정책이 되고 제도가 된다. 국가적 결단일수록 오류의 파괴력은 광범위하며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든다. 우리는 2024년 12월 3일 선포된 계엄 조치가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을 통해 위헌으로 판명되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당시 국가는 전혀 위기에 처해 있지 않았으나 권력은 뱀의 꼬리처럼 민주적 통제의 궤도를 이탈했다. 권력에 취한 독단이 헌정 질서에 깊은 자상을 남긴 것이다. 방향 감각을 상실한 리더십은 그 속도나 열정과 무관하게 공동체를 위험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우리는 목도했다.

AI 시대의 리더십 역시 이 ‘방향의 철학’ 위에 바로 서야 한다. 기술은 중립적인 도구이며 알고리즘은 절차를 가속할 뿐이다. 사회적 합의와 철학적 성찰이 결여된 기술 도입은 행정의 효율은 높일지언정 민주주의의 품격까지 보장하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은 현재를 관리하는 ‘행정가’가 아니라 기술이 바꿀 미래 사회의 지도를 그리는 ‘설계자’다.

대한민국은 오랫동안 앞선 모델을 뒤쫓는 ‘모방자’로서 성장해 왔다. 길이 이미 나 있던 시절에는 눈앞의 숲과 나무를 세심히 살피는 지혜로도 충분한 성과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AI 전환, 기후 위기, 인구 구조의 격변이 동시에 몰아치는 지금, 더 이상 베낄 답안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리더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과거처럼 산의 나무와 숲을 보는 수준을 넘어선다. 당장 눈에 보이지 않지만 반드시 도달해야 할 ‘산 너머의 더 높은 산’의 풍광을 상상하고 그 미지의 지형을 현실의 설계도로 변환해내는 혜안이 요구된다.

이 절박한 과제는 2026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둔 지역의 미래에서 더욱 선명해진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칭)의 수장과 시·군·구의 리더를 꿈꾸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성적인 행정 경험이 아니다. 광주의 민주주의 정신과 전남의 생태적 잠재력을 결합해 아직 누구도 가보지 못한 ‘초광역 지방정부’라는 더 높은 산의 풍경을 시민들에게 먼저 보여주어야 한다. 필요한 것은 파편화된 성과의 나열이 아니라 지역의 자산을 하나의 거대한 미래 설계도로 통합하는 통찰력이다.

이제 지방자치 무대에 나서는 이들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나는 여전히 눈앞의 나무와 숲을 살피는 관리자에 머물러 있는가, 아니면 산 너머의 풍경을 그려내는 설계자인가.” 관리는 현재를 지탱하게 하지만 설계는 보이지 않는 미래를 현실로 끌어당긴다. 리더가 보이지 않는 더 높은 산의 풍광을 선명히 그려낼 때 광주와 전남의 통합은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이 나아갈 대전환의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이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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