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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AI 데이터센터 속도전인데…전력 정책은 '선거 변수'에 묶였다

데이터센터 유치는 건설업과 IT(정보기술) 기기 제조업 등 전방위적인 경제 파급효과를 갖는 만큼 정치적 변수에 묶인 전력 정책 공백이 국가 신성장 동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상준...

AI 데이터센터 속도전인데…전력 정책은 '선거 변수'에 묶였다

AI 데이터센터 특별법 통과…전력 공급 대책은 선거 변수로 지연

HVDC 2단계 준공 6월→내년 12월…송전 지연·출력제어 확대

중앙정부도 한발 후퇴...송전선로 입지 선정 '한 달간 보류' 결정

데이터 수요 8.2→30TWh 전망…전력망 지연에 투자 불확실성

2024년 자급률 경북 228.1%·전남 213.4%·서울 7.5%…격차 심화

국내 전력 수급·계통 인프라 개념도. 사진= 챗지피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를 위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며 산업 전반에 속도전이 붙었다.

하지만 정작 핵심 기반인 전력 공급 정책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 등 정치적 변수에 가로막혀 동력을 잃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산업 진흥을 위한 제도적 빗장은 풀렸지만 전력 인프라 확충과 요금 체계 개편 등 실질 과제는 선거 국면 속 주민 수용성과 정치적 이해관계에 묶여 사실상 추진이 멈춘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는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감당해야 할 국가 전력 수급 계획에 차질을 빚는 것은 물론 지역별 전력 생산과 소비의 불균형을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분석됐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AI 데이터센터 산업 진흥에 관한 특별법’(AI DC 특별법) 통과로 규제는 완화됐지만 변전소 증설과 지역별 요금제 등 전력 사업은 선거를 앞두고 답보 상태이다.

정부가 추진해 온 핵심 에너지 정책들이 선거를 앞둔 시점과 맞물리며 지역 민심 및 정치적 부담을 이유로 뒤로 밀리고 있다는 것이다.

◆ 법안은 '타임아웃' 통과…전력 인프라는 선거에 막혀 답보

지난 7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AI DC 특별법은 황정아 더불어민주당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으로 데이터센터 구축을 촉진하기 위해 인허가 절차를 간소화하고 전력·입지 관련 규제를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법이다.

이 법안은 기업들이 가장 요구해온 신속한 추진과 규제 완화를 제도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관계 기관장이 법정 기한 내에 인허가 여부를 통지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승인이 완료된 것으로 간주하는 ‘타임아웃제’의 도입은 행정 지연으로 인한 사업 차질을 막으려는 강력한 의지로 풀이됐다.

여기에 비수도권에 신축하거나 기존 센터를 전환할 때 10MW 이상의 대규모 전력 사용 시설에 적용되던 전력계통영향평가를 면제해주기로 한 대목은 수도권에 쏠린 인프라를 지역으로 분산시키는 실질적인 유인책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화려한 제도적 진흥책과 달리 실제 전력을 공급할 물리적 현장은 선거라는 거대한 벽에 가로막혀 있다.

수도권 전력 공급의 핵심 거점이자 국가 전략 전력망인 500㎸ 동해안~수도권 초고압 직류송전망(HVDC)의 마지막 관문으로 꼽히는 동서울 변전소 증설 사업이 대표적이다.

이 사업은 동해안에서 생산된 전력을 수도권으로 안정적으로 송전하기 위해 HVDC와 연계되는 변환 설비를 확충하는 핵심 전력 인프라 구축 사업이다.

그러나 경기 하남 지역 주민 반발과 선거 국면이 맞물리며 인허가조차 받지 못한 채 멈춰 서 있다.

인허가 권한을 쥔 하남시가 주민 수용성을 이유로 변환설비 허가를 미루고 있는 데다 선거를 앞둔 정치적 부담까지 겹치며 사업은 좀처럼 진척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정부와 한국전력공사 주민 설득과 보완책 마련을 검토하고 있지만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핵심 전력망 사업이 장기간 표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은 인허가 ‘자동 승인’을 내세우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표심을 의식한 정치적 부담에 밀려 핵심 인프라 사업이 장기 표류하는 극명한 괴리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정부는 최근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공급용 송전선로를 포함, 주민 반발이 거센 전국 27개 초고압 송전망 건설 현장의 입지선정위원회 절차를 한 달간 전격 보류하기로 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용인반도체국가산단재검토와 초고압송전탑건설반대전국행동(전국행동)’ 측과 만나 갈등이 첨예한 사업 부지를 직접 방문해 실태를 파악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송전탑 건설에 민감한 지역 민심을 의식해 국가 전략 산업의 젖줄인 기간망 확충이라는 시급한 과제에서 정부가 사실상 속도 조절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 규제 걷어낸 진흥법의 역설…전력 확보라는 핵심 고리 빠졌다

이번 특별법 통과는 AI 인프라 확장을 위한 제도적 기틀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지만 실질적인 전력 확보 대책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AI 데이터센터는 24시간 중단 없이 가동되는 특성상 간헐성이 큰 재생에너지뿐 아니라 안정적인 기저 전원 확보가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발전사가 생산한 전력을 전력거래소를 통해 한전이 독점 매입한 뒤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단일 구매자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 구조는 전력 공급의 안정성은 높지만 시장 원리에 따른 유연한 가격 형성을 방해하고 기업들의 다양한 전력 확보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를 위해 당초에는 전력 수요자가 전력시장을 거치지 않고 LNG(액화천연가스) 발전사업자와 직접 계약을 맺어 전력을 공급받는 ‘LNG 직접 전력구매계약(PPA) 특례’가 핵심 대안으로 제시됐다.

그러나 해당 특례는 부처 간 협의 과정에서 국가 전력망 운영 부담과 지역 생산·소비 원칙 위배 등을 이유로 최종 삭제됐다.

화석연료 사용에 대한 비판 여론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정부는 현재 전력망 체계로도 GPU 26만 장 규모에 필요한 약 500MW 전력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다만 이는 향후 폭증할 민간 수요를 고려할 때 낙관적인 해석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에 따르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지난해 8.2TWh에서 2038년 30TWh로 약 4배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수요 확대가 예고된 상황에서도 입지 규제만 완화되고 전력 조달 방안은 미흡해 실제 가동 시 전력 부족을 초래할 수 있는 ‘미완의 진흥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표심 앞에 멈춘 에너지 정의…지역별 자급률 격차가 부른 갈등

에너지 정책이 선거 국면에서 공전하는 근본 원인은 전력 생산지와 소비지 간 극심한 불균형 그리고 이를 조율할 정치권의 결단 부족에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같은 구조적 문제는 지역별 전력 자급률에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업계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경북이 228.1%로 가장 높고, 전남도 213.4%로 뒤를 잇는 반면 서울은 7.5%에 그쳐 전력 대부분을 외부에 의존하는 구조이다.

인천 역시 180.6%의 높은 전력 자급률로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발전 여건과 송전 비용 등을 반영해 지역별로 전기요금을 달리 책정하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은 선거를 앞두고 수도권 여론과 지자체 간 이해관계 충돌로 미뤄지면서 생산지 주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는 발전소 인근 산업단지들이 수도권과 동일한 전기요금을 부담하는 것은 명백한 역차별이라며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특히 동서울 변전소 증설 지연은 수도권 전력 공급이라는 국가적 필요보다 지역 민심이 우선되면서 사업 추진 동력을 잃은 사례로 꼽힌다.

결국 선거라는 정치 일정이 요금 체계 개편과 전력망 확충 등 시급한 과제를 지연시키며 정책 마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송전망 도미노 차질과 경영난… AI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

에너지 정책이 멈춰 서면서 국가 전력망 계획 전반에 연쇄적인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동해안~동서울 HVDC 2단계 사업은 준공 시점이 당초 올해 6월에서 내년 12월로 1년 6개월가량 늦춰졌다.

이 여파로 이미 건설된 동해안 민간 발전사들은 생산한 전기를 제때 송전하지 못해 출력제어가 빈번해졌고 경영난도 심화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송전망 구축 지연으로 전력을 수도권으로 보낼 기반이 부족해지면서 예정됐던 복합발전소 착공이 1년 이상 미뤄지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전력 인프라 차질은 신규 발전 사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상황은 결국 한국 AI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에도 부담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으로 이어진다.

주요 국가들이 데이터센터의 재생에너지 사용 의무화와 에너지 효율 규제 강화 등으로 지속가능성 확보에 속도를 내는 것과 달리 한국은 선거 국면마다 전력망 구축과 요금 체계 논의가 지연되면서 기업들의 투자 시점도 늦춰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데이터센터 유치는 건설업과 IT(정보기술) 기기 제조업 등 전방위적인 경제 파급효과를 갖는 만큼 정치적 변수에 묶인 전력 정책 공백이 국가 신성장 동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상준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미국 등 해외 사례를 보면 데이터센터 인근에 전력 설비를 직접 구축하거나 콜로케이션(Colocation)을 통해 전력 수급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전략이 이미 보편화돼 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어 "우리나라는 전력 공급의 자유도가 현저히 낮아 기업들이 스스로 전력난을 타개할 자구책을 마련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AI 데이터센터의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서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전력 설비를 운용하거나 유연하게 조달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반드시 마련해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지자체의 반대가 입지 해결의 한 축이라면 전력 공급 규제 개선은 또 다른 필수 축"이라며 "기업이 스스로 전원(電源)을 확보할 수 있는 협력 모델 등 전력 자율권을 열어주지 않으면 땅 문제가 해결돼도 입지 전략은 절반의 성공에 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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