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양자컴퓨터 하드웨어와 순다르 피차이 CEO (사진=구글)
| 이코노미사이언스 박성현 기자 |
금융 시스템은 자본과 규제 위에 세워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계산’ 위에서 작동한다. 위험을 확률로 환산하고, 가격을 수학적 모델로 산정하며, 보안을 연산 난이도에 의존하는 구조다.
이 계산의 전제가 최근 빠르게 흔들리고 있다. 인공지능(AI)은 공격의 비용을 낮추고 있고, 양자컴퓨터는 계산 자체의 난이도를 변화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금융권이 주목하는 변화는 해킹 기술의 고도화보다 ‘공격 비용의 하락’이다. 생성형 AI는 코드 작성과 취약점 탐색, 공격 시나리오 구성까지 자동화하면서 기존에 전문가 중심이던 사이버 공격의 진입 장벽을 낮추고 있다. 이는 보안 체계의 핵심 전제였던 ‘공격은 어렵고 비용이 높다’는 가정을 변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금융권 보안은 그동안 높은 공격 비용을 전제로 설계돼 왔기 때문이다.
여기에 양자컴퓨터가 더해지면서 변화는 계산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양자컴퓨터는 ‘양자 중첩’과 ‘얽힘’ 현상을 활용해 방대한 경우의 수를 동시에 계산할 수 있는 구조를 가진다. 이론적으로는 기존 컴퓨터로 수백 년 이상 소요되는 계산을 단시간에 처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제시되고 있다.
이러한 특성은 암호 해독, 최적화, 시뮬레이션 등 복잡한 연산이 필요한 분야에서 활용 가능성이 높다. 특히 금융은 포트폴리오 최적화, 파생상품 가격 산정 등 계산 집약적 업무 비중이 높아 영향이 클 것으로 분석된다. 보고서는 글로벌 양자컴퓨팅 시장이 2026년 11조원에서 2035년 46조원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며, 금융 산업이 가장 큰 경제적 효과를 창출할 분야로 제시했다.
문제는 이 두 변화가 동시에 진행된다는 점이다. AI는 공격 비용을 낮추고, 양자컴퓨터는 계산 난이도를 변화시킨다. 이는 금융 시스템이 의존해온 보안과 리스크 모델의 전제를 다시 설정해야 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 사이버 보험은 해킹 가능성과 피해 규모를 확률적으로 계산해 보험료를 산정한다. 하지만 공격 비용이 낮아질 경우, 기존 확률 모델의 전제가 달라질 수 있다. 자산 가격 역시 마찬가지다. 금융 전반이 복잡한 수학적 모델과 시뮬레이션을 기반으로 움직이는 만큼, 계산 환경 변화는 가격 형성 방식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국내 금융권도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 중이다. NH농협은행은 전사적 ‘AX(Agentic AI)’ 전환을 선언하며 리스크 관리 자동화를 추진하고 있고, 신한금융그룹과 KB금융그룹 역시 AI 기반 이상거래 탐지와 보안 체계를 고도화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여기에 하나금융그룹도 AI 도입과 동시에 리스크 대응 체계를 병행 구축하는 방향을 택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전담 조직을 중심으로 AI 거버넌스를 정립하고, 모델 검증과 운영 전 과정에서 리스크 관리 체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는 금융권이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리스크 대응 방식을 구조적으로 재설계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호성 하나은행장이 생성형 AI 기반 ‘HAI 상담지원봇’을 활용해 고객 상담 업무를 시연하는 모습 (사진=하나은행)
수도권 한 IT금융경영학과 교수는 “금융 시스템은 결국 계산 능력과 가정 위에서 작동하는 구조”라며 “AI와 양자는 각각 공격 비용과 계산 난이도를 변화시키는 기술로, 기존 리스크 모델을 재설정해야 하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IT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보안이 ‘어렵기 때문에 안전한 구조’였다면, 앞으로는 ‘얼마나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가’가 핵심 경쟁력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현재 단계에서 금융 시스템이 급격히 붕괴하는 시나리오는 현실적이지 않다. 양자컴퓨터는 여전히 오류율과 비용 측면에서 한계를 가지고 있으며, AI 역시 방어 기술과 함께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방향은 분명하다. 보안은 고정된 장벽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갱신되는 체계로 변화하고 있으며, 금융 모델 역시 정적인 공식이 아닌 동적인 구조로 전환되고 있다.
AI는 공격의 비용을 바꾸고, 양자는 계산의 방식을 바꾼다. 금융은 그 두 변화가 만나는 지점에 있다. 문제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금융을 떠받쳐온 ‘계산의 전제’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느냐는 점이다.
아주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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