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 제18회 학술심포지엄서
조광철 전 市 학예관, 일제강점 섬유산업사 분석
지역 제사공장 등 철도·탄광 연계 거대한 시스템
가혹한 여공 착취 등 지역 수탈 자행 역사적 현장
90년 세월을 지켜온 광주 임동 방직공장 터가 대부분 철거되면서 근대 산업유산의 보존과 기억을 둘러싼 논의가 뜨거운 가운데, 일제강점기 전남광주 섬유산업시설을 단일 공장이 아닌 농촌·철도·광산·행정이 얽힌 ‘공간적 수탈 시스템’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지역문화교류호남재단은 17일 오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미로센터에서 제18회 학술심포지엄 ‘가려진 광주의 산업사, 오늘의 자산으로 꺼내다’를 개최했다.
이날 발표자로 나선 조광철 전 광주시 학예연구관은 발표문을 통해 일제강점기 광주와 목포, 화순을 잇는 근대 섬유산업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조 전 연구관은 1935년 들어선 광주 임동 방직공장과 화순탄광, 목포의 면화 가공 공장군(群), 그리고 이들을 잇는 80㎞ 호남선 철도망이 서로 톱니바퀴처럼 연결돼 작동한 하나의 산업 유기체로 분석했다.
일제는 쌀·목화·누에고치를 수탈의 3대 표적으로 삼아 전남을 ‘삼백(三白)의 고장’이라 부르며 곳곳에 수탈 기지를 조성했다.
조선 생사(누에고치에서 뽑은 실)를 미국 시장에 수출해 전함을 건조할 만큼 막대한 부를 챙긴 일제는 원료 조달과 물류에 유리한 곳에 공장을 세웠다. 생사를 뽑는 제사공장(삼공·도시·종방·약림제사 등)은 용수 확보를 위해 광주천 등 하천변과 부산항 이출을 위한 철도망(광주~송정리) 주변에 집중됐다.
반면 목화 꼬투리에서 솜을 분리하는 조면공장은 최대 이출항인 목포 해안가에 밀집해, 1920년대 목포는 인구 1천 명당 1개꼴로 조면공장이 들어설 정도였다. 특히 목포에는 씨에서 기름을 짜내는 제유공장과 함께 직포공장도 들어섰으나, 목화 최대 수출항이면서도 정작 일본산 면사를 들여와 직물을 생산하는 파행적 구조를 보였다.
임동 방직공장이 가동된 이후에는 목포에서 광주로 조면(씨를 뺀 솜)이 역류하고, 화순탄광의 석탄과 영산강의 공업용수가 동원되는 등 지역 전체의 물류와 산업 지도가 재편됐다.
이번 발표에서는 행정당국과 공장의 유착 실상도 드러났다.
1930년대 전남도는 종방 방직공장 유치를 위해 파격적인 특혜와 기만을 마다하지 않았다. 목화 매수권을 주려다 반발에 부딪히고, 총독부를 설득해 형무소농장 토지까지 제공했다. 또 토지 수용이 지연되자 언론을 이용해 지주를 ‘돈 욕심에 지역 사업을 망치는 인물’로 모함했고, 압박을 견디지 못한 지주는 땅을 사실상 강제로 기증해야 했다.
공장 운영 초기 모집 방식에서 후기 징용(근로정신대) 방식으로 전환된 여공들의 노동 환경 역시 12시간 2교대의 가혹한 노동과 저임금, 영양실조, 면폐증 등 참혹한 인권 침해로 얼룩졌다.
조 전 연구관은 “일제강점기 공장은 단순한 산업시설이 아니라 관권 유착의 폐단과 지역의 수탈이 자행된 역사적 현장”이라며 “광주 3대 제사공장 터가 아파트와 병원으로 바뀌며 풍경 속에 역사가 가려졌듯, 근대 산업유산의 연관된 공간 맥락을 올바르게 읽어낼 때 과거의 유산이 비로소 오늘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또 다른 발표자로 나선 김덕진 광주교육대학교 명예교수는 ‘광주의 전통수공업과 근대 산업의 여명’을 주제로 부채 생산 중심의 전통수공업 생산·유통 및 상품화 과정을 다뤘다.
이어 신웅주 조선대학교 교수는 ‘산업이 만든 도시, 광주’를 주제로 철도·하천·시장·공장·주거지 등이 산업을 축으로 연결되며 광주의 도시공간이 변화해 온 과정을 발표했다.
김현주기자 5151khj@mdilbo.com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