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경법은 승가의 질서와 청정을 지키고 여성 수행자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수행하도록 마련된 제도적 장치다. [AI생성이미지]
붓다의 성도 이후 언제쯤 비구니 승가가 처음 성립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대략 20년 정도가 지난 뒤의 일로 보인다. 붓다에게 여성의 출가를 처음 청한 이는, 어머니를 잃은 싯다르타를 정성껏 길러준 이모 마하파자파티 고타미였다. 붓다가 석가족의 카필라성 니그로다 원림에 머물고 있을 때, 고타미는 붓다를 찾아와 출가를 청하였다. 이 무렵 그녀는 이미 일흔 전후의 고령이었다. 당시 코살라국 위두다바왕의 침략으로 거의 쇠멸 상태에 놓여있던 석가족의 상황을 고려할 때, 각자(覺者)가 된 위대한 아들이 그녀에게 얼마나 큰 의지처였을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붓다는 이러한 모든 사정을 알면서도 고타미의 청을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두 번, 세 번에 걸친 간곡한 청에도 붓다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 후 붓다가 카필라성을 떠나 웨살리로 가자, 고타미는 많은 석가족 여성과 함께 그 뒤를 따라갔다. 먼 길을 걸어온 탓에 두 발은 심하게 붓고, 온몸은 먼지로 뒤덮인 채 눈물을 흘리며 붓다의 처소 앞에 서 있었다. 이를 본 아난다가 놀라 연유를 묻자, 고타미는 지금까지의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였다. 측은한 마음이 든 아난다는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붓다를 찾아가 상황을 아뢰며,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주실 수 있는지 여쭈었다. 하지만, 붓다의 대답은 이전과 같았다. 그러자 아난다는 다시 붓다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성이 출가하여 수행한다면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있습니까?” 붓다는 가능하다고 답하였다. 이에 아난다는 어머니를 여읜 붓다에게 젖을 먹여 길러준 양모 고타미의 은혜를 생각하시어, 여성의 출가를 허락해 달라고 다시 간청하였다.
여성의 출가를 단호하게 거부하던 붓다였지만, 고타미의 은혜를 헤아려 달라는 아난다의 거듭된 간청에 결국 여성의 출가를 허락했다. 다만 그 허락은 ‘팔경법(八敬法)’을 지켜야 한다는 조건으로 이루어졌다. 팔경법은 “비구니는 법랍 100세라 하더라도 오늘 구족계를 받은 비구에게 예를 갖추고 공경해야 한다.”는 조항을 비롯하여, 안거와 포살, 자자, 구족계 의식, 그리고 승잔죄를 범한 자에게 부과되는 마나타 등의 실행은 비구니 승가에서 하되 반드시 비구 승가의 지도와 승인을 동반해야 한다는 내용, 나아가 비구니는 어떠한 경우에도 비구를 비난하거나 잘못을 지적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아난다가 이 조건을 고타미에게 전하자, 그녀는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며 팔경법을 평생 지키겠다고 대답하였다.
붓다가 왜 여성의 출가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는지, 그 이유는 붓다의 말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고타미가 팔경법의 수지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은 붓다는 천 년 동안 지속될 정법이 여성의 출가로 오백 년밖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며, 마치 잘 자란 벼밭에 병충해가 생기면, 그 벼밭이 오래 유지되지 못하는 것처럼, 여성이 출가하게 되면 범행(梵行, brahmacariya)은 오래가지 못한다고 걱정하였다. 그리고 큰 연못에 둑을 설치하여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하듯이, 미리 ‘비구니를 위해’ 팔경법을 제정하여 평생 지키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붓다가 여성의 출가로 인해 발생할 범행의 단절과 그로 인해 비구니가 겪을 고통을 우려했음을 알 수 있다. 범행이란 광의로는 석자사문으로서 해야 할 청정한 수행을, 협의로는 음욕행을 저지르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성불 가능성은 인정하지만, 이미 남성 위주의 공동체 생활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음욕의 대상인 여성을 받아들는 것에 붓다가 느꼈을 부담감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붓다는 음욕행을 수행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악행으로 규정하고, 저지르면 그 즉시 비구 또는 비구니의 신분을 박탈하도록 하였다. 율장 소품 ‘비구니건도’를 보면, 여성의 출가 이후 육군비구들이 비구니들에게 진흙물을 끼얹거나, 허벅지나 음부 등을 드러내어 보이며 관심을 끌려 하고, 음란한 말을 하거나 서로 가까이 어울리는 등의 일이 발생하였다. 반대로 육군비구니들이 비구들에게 같은 행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여성의 출가가 허용될 경우 범행이 오래 지속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던 붓다의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사례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남녀평등의 시각에서 보면 팔경법은 여성 차별을 대표하는 규정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음욕을 수행의 가장 큰 장애로 간주하는 불교의 입장에서, 음욕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여성이 승가에 합류한다는 사실은 승가의 청정성 유지라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였을 것이다. 더 나아가 뒤늦게 승가의 구성원으로 합류한 여성 출가자들이 이미 실행되고 있던 여러 규범과 의식 절차를 신속히 습득하고, 승가 생활에 원활히 적응하여 자치적으로 공동체를 운영해 가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점을 종합해 보면, 팔경법은 여성 출가자를 제약하려는 규정이라기보다, 여성 출가를 허용하는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 문제들을 고려하면서 승가의 질서와 청정을 지키고, 동시에 여성 수행자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하여 수행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적 장치였다고 이해할 수 있다. 여성 출가자의 탄생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의 이면에는, 새로운 구성원의 합류로 인해 흔들릴 수 있는 승가의 질서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를 두고 고심했던 붓다의 깊은 숙고가 자리하고 있었다.
이자랑 동국대 한국불교인문학과 부교수 jaranglee@hanmail.net
[1818호 / 2026년 3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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